시간이 ‘금金’이다. 그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그 시간을 정말로 금처럼 여기는 사람은 많지 않다.
특히 내가 정해진 어떤 시간을 지키지 못함으로 인하여
다른 사람이 고스란히 입을 피해에 대해 생각은 할지라도
그 사람들이 입는 피해를 온전히 보상해줄 수는 없기 때문이다.
나는 어떤가?
그 시간의 소중함을 알아서라기보다 내가 편하기 위해서
나는 시간을 잘 지키는 편이다.
그 이유 중의 하나는 내가 운전을 못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자동차도, 열차도, 하늘을 나는 비행기까지도 연착을 곧잘 하는데,
두발로 가는 길은 그 시간이 일정하기 때문이고,
행여나 늦을 세라 조금 일찍 출발해서 도착한 후에
책을 보거나 여러 가지를 생각하며 하염없이 기다리는 일에
익숙해졌기 때문이다.
“나는 시간을 지킬 수가 없다.
왜냐하면 기다리는 고통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나는 소처럼 기다린다. 나는 자신의 존재에서 매우 불확실하게나마,
어쨌든 그것이 하나의 목적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을 깨달으면,
자신의 약점으로 아주 허세를 부리며 일단 정한 그 목적을 위해서
무엇이든 기꺼이 참아 버리는 것이다.
이러다가 여자에게 반하기나 하면 어떻게 될까?
광장 아케이드 밑에서,
나는 M이 지나갈 때까지 얼마나 오래 기다리고 있었는지 모른다.
심지어 그녀가 연인과 함께 나타날 때까지 말이다.
나는 일부는 등한한 탓으로, 일부는 기다리는 고통을 모르는 탓으로,
약속한 상면시간에 늦어서 갔지만,
그것은 또한 내가 시간 약속을 한 사람을 만날 수 있을지
어떨지를 불확실하게 하여, 오래 기다릴 수 있는 가능성을
손에 넣기 위한 것이기도 한 것이었다.“
프란츠 카프카의 글이다.
나와 달리 카프카는 시간을 잘 지키지 못한 모양인데,
기다림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은
조금만 늦어도 안절부절 못하는 경향이 있다.
나는 성질이 몹시 급한 편인데도 그 점에 있어서만은 그렇지 않다.
삶이 운명적으로 너무 고단했던 탓에 늦어도 너무 늦게 출발했고,
어떤 눈에 보이는 기다림도 없었기 때문인지, 애가 타게 기다렸던 적이 없다.
결국 시간이 해결해줄 것이라는 생각,
그래서 조금 늦는 사람을 기다릴 때
‘한 마리 잃어버린 양을 찾아 헤매는 목동의 마음’을 예로 들어서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눈총을 맞기도 한다.
하지만 돌이켜 보면 모든 것은 시간이 해결해주는 것,
우리가 설정하고서 우리가 지켜야하는 시간을
기다리는 것도 조바심을 내며 다가오는 시간 속에서 몸달아하는 것도
결국 나이고 당신이다.
시간은 그렇게 누구에게나 공평한 세월을 각인시킨다.
“시간은 가장 아름다운 것들을 모욕하기 좋아한다오.
내 얼굴에 주름살을 그려 놓은 시간은
당신의 장미도 시들게 할 것입니다.“ 라고 말한 코르네유의 말과 같이,
어차피 오고 가는 그 시간 속에서, 가끔은 해찰도 하고,
무심결에 보내기도 해야 하는데,
정확한 시간에 길들여져서 이렇게 저렇게 조바심 내며, 허둥대며,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2016년 10월 18일 (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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