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법인 우리땅 걷기 /신정일 대표님 글 모음12

가을 강에 내리는 안개,

산중산담 2016. 11. 30. 20:10

 

가을 강에 내리는 안개

 

 

새벽에 신선한 강이나 호수 가까이에 깔린

희끄무레한 안개는 그날 날씨가 좋다는 확실한 징조이고,

안개가 보이지 않을 때는 밤이 오기 전에 비가 내리리라고 짐작해야 한다.“

뉴햄프셔 주의 역사가인 벨크냅의 말이다.

 

가을 강을 거닐다 보면

아침은 항상 안개와 함께 열린다.

자욱한 안개 속을 거닐고 있을 땐

이 안개가 어쩌면 영원히 걷힐 것 같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어느 새 걷히는 안개,

불과 몇 미터도 보이지 않는 그 안개 속 같은 인생의 길을

헤매고 헤매다가 사라지는 것이 곧 삶이라는 것을

강을 따라 걸으며 깨닫는다.

이상하다, 안개 속을 헤매는 것을!

숲과 들은 모두가 외롭고

나무들은 서로를 보지 못해

모두가 다 혼자다.

 

내 인생이 아직 밝았을 때엔

세상은 친구들로 가득했었는데

그러나 이제 안개가 내리고 나니

그 누구 한사람 보이지 않는다.

(...)

 

이상하다, 안개 속을 헤매는 것은

인생이란 야릇한 존재

누구 한사람 타인他人은 알지 못하나니

인간은 모두가 혼자다

 

독일의 문호 헤세가 노래한 것처럼

인간은 언제나 혼자이고, 그래서 항상 외로움을 느끼는 것이다.

 

그 안개 자욱한 가을을 두고

조선 후기의 실학자인 이덕무는

다음과 같은 글을 남겼다.

 

저물녘의 시냇물 십리 밖까지 울리고

들려오는 맑은 소리는 한결 시원하구나.

단풍나무 숲속으로 그대 집 찾아갈 때

하얀 안개 헤치며 징검다리를 건넜지

반가운 손들이 달빛 받아 오신다고

어진 그대는 서리 쓸고 맞이하네.

잠도 잊으며 오순도순 나누는 이야기 깊어 가는데,

등불 심지 돋우자 더욱 곱게 피어나누나.”

 

자욱한 저녁 안개 헤치며 찾아간 친구가 얼마나 반가웠겠는가?

등불 심지 돋우고 나누는 이야기의 성찬,

무르익은 가을의 아름다운 풍경이다.

이덕무가 체험한 안개의 추억과 달리

금나라 때의 시인이자 화가인 왕정균의 안개는

사뭇 쓸쓸하고 외롭다.

 

옅은 안개 끼고 성근 비 내리는 초가을(담연소우신추淡煙疎雨新秋)

근심 금할 길 없어​​ (불금수不禁愁 )

그대와 만나던 강가 주점 찾아갔지만 푸른 깃발만 드리워져

(기득청염강산주루記得靑帘江山酒樓)

사람은 간 곳이 없네. (인부주人不住)

꽃은 말이 없고 (화불어花不語)

강물은 부질없이 흐르는데, (수공류水空流)

다만 돛대 위엔 한 쌍의 제비가 있어 (지유일쌍장연只有一雙檣燕)

서로가 즐기며 나를 머무르라 하네. (긍상유肯相留)

 

지금 이 새벽, 이 세상엔 안개가 내리고

안개는 제 나름대로의 슬픔과 기쁨의 축제를 벌인 뒤에

언제 간다.’는 말도 없이 슬그머니 사라질 것이다.

 

그리고 안개 자욱한 강 길을 걸어가는 우리들,

이번 주말 걷게 될 금강은 어떤 안개를 예비해 놓고

우리들을 기다리고 있을지,

 

20161019(수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