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50온누리 산악회 백두대간 3기 37차 구룡령에서 조침령까지
언제 : 임진년 누리달 아흐래 흙날 23시 ~ 해날
누구랑 : 대간3기 산우님들
어딜 : 구룡령에서 조침령까지 (산행시간은 사진속에 있습니다)
온 누리에 생명의 소리가 가득차 넘치는 달 6월, 우리는 구룡령을 향해 출발하고...
이제 얼마 남지 않은 대간길이라는 현실에 다들 아쉬움 반 서운함 반.....
말로는 표현하지 않지만 눈에서 눈으로 느껴지는 아쉬움은 이번 대간길의 소중함을 한번 더 생각하는 계기가 되기를....
구룡령
원래 지명은 장구목이다. 도로가 나기 전 강원도 홍천 내면에서 속초로 넘어가던 고개이다.
일만 골짜기와 일천 봉우리가 일백 이십 여리 고갯길을 이룬 모습이 마치 아홉 마리 용이 지난듯하다 하여 구룡령이라는 이름을 얻었다고 한다.
하지만 아쉽게도 우리가 서 있는 이 구룡령이라고 알고 있는 56번 국도가 지나는 고개는 원래의 구룡령이 아니다.
이 도로는 일제 강점기 때 일본인들이 자원 수탈 목적으로 원래의 구룡령 옛 고개에서 1km 가량 떨어진 곳에 개설한 비포장도로이다.
그 후 1994년 이 도로를 포장하여 오늘에 이르는 것이다.
일제 당시 일본인들이 지도에 원래 구룡령의 위치를 표기하지 않고 자신들이 만든 비포장도로를 구룡령으로 표기하면서 위치가 잘못 알려지기 시작한 것이다.
더욱이 1994년 이후에는 모든 지도와 행정 표기에서 구룡령의 위치가 현재의 고개로 표시되었으니 원래의 구룡령을 찾지 않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 아니할 수 없다.
김희석님의 체조로 몸을 풀고 오늘의 대간길을 위한 여정을 준비하고
본격적인 산행은 시작되고
이제 도로 절개로 끊긴 마루금은 여기부터 본격적으로 마루금 산행을 시작하고
곧이어 구룡령옛길을 만나다
최근에는 한계령이나 미시령을 주로 이용하지만 예전에는 구룡령이 영동, 영서를 잇는 주요 통로였다.
산세가 험한 진부령, 미시령, 한계령보다 길이 완만하여 동해안 사람들이 한양을 오갈 때 주로 이용하던 길이었다고 한다.
등짐장수들이 영동의 해산물과 영서의 농산물을 부지런히 져 나르던 길이기도 하다
구룡령 옛길은 최대한 경사를 뉘여 자연스럽게 만들어져 있어 노새에 짐을 싣고 오르면서도 그저 숲길을 걷는 듯 숲을 느끼며 여유롭게 걸을 수 있는 길이다
하지만 일제강점기 말 신작로가 생기고 1990년대에 이 길이 아스팔트로 포장되자, 이 자그마한 산길은 그토록 오래 사람들과 함께했음에도 기억에서 잊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