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삶도 제대로 모르는데, 죽음을 어찌 알리.
지난 가을 석양녘에 찾아갔던 고령의 지산동 고분군을 다시 찾아갔다.
고령읍 뒤편 산에 봉긋 봉긋 줄 지어 늘어선 무덤 들,
대 가야 왕들의 무덤이 무려 7백 몇 십 개,
말하자면 왕들의 공동묘지인 무덤을 오르기도 하고,
탑돌이처럼 돌기도 하며
이런 저런 생각에 잠겼었다.
삶, 이후에 다가오는 죽음,
도처에, 아니 내 곁에 도사리고 있는 죽음,
그 죽음이란 무엇인가?
삶에서 무로 돌아가는 것이 죽음이다.,
그 죽음의 표시가 바로 이런 무덤들이고,
프랑스 역사가 피에르 구베르는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마을 한 가운데 묘지가 있듯이,
삶의 한 가운데는 죽음이 있었다.”
그렇다. 나도 그대도 살아 있으면서
매 순간 죽음의 한 가운데를 거니는 것이고,
어떤 공부보다도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여
죽음 학(死學)을 공부하고 있는 것이다.
평생을 인간이란 무엇인가? 앎과 모름,
그리고 앎의 실천을 위하여 탐구한 공자였지만
죽음에 대해서만큼은 아주 진솔한 표현을 남겼다.
“아직 삶도 제대로 모르는데, 죽음을 어찌 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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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누구도 가본 적이 없고,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죽음이
인간에게 가장 친근한 벗이라는 것을
나중에야 깨닫게 된다.
그런 연유로 철학자 허버트 스펜서는
“인간은 삶이 두려워서 법률을 만들었고,
죽음이 두려워서 종교를 만들었다“ 고 하였고,
니체는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약한 자가 강한 자를 제어하기 위해서 신을 만들었다’
그렇다면 종교란 무엇일까?
“신들이 인간을 창조했을 때,
그들은 인간의 몫으로 죽음을 주었으며,
생명은 자신들이 가졌다 .”
<길가메시> 서사시에 나오는 글이며,
그보다 더 나아간 말을 남긴 사람은 사셰베렐 시트웰이었다.
“모든 종교의 전 체계가,
우리 들 머리 위에 떠도는 신기루에 지나지 않으며,
죽음의 공포에 의해서 야기되는 망상에 지나지 않는다.”
이 말은 얼마나 지당한 말인가?
그러한 세상의 이치를 너무도 잘 알면서
사람들은 그래도 벗어나지 못하는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나기 위해
종교를 택하는 것이다.
삶이란 무엇인가? 죽음이란 무엇인가?
한 시도 떠나지 않는 그 의문 속에 사는 삶,
그것이 인간을 겸손하게 하고 욕심을 버리게 하면 좋을 것인데,
오히려 더 삶에 집착하면서 살다가 보니
세상이 난장판이다.
“생에 관심을 갖는 자는 특히,
죽음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는다.”
토마스 만이 <마의 산>에서 토로한 말이
지산동 고분군을 거니는 내내 내 마음속에 맴돌았다.
죽음은 항상 내 곁에 그대 곁에 있는 것을 그대는 아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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