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법인 우리땅 걷기 /신정일 대표님 글 모음15

집이란 풍경보다는 한 영혼의 상태라는데,

산중산담 2018. 4. 26. 23:48

 

집이란 풍경보다는 한 영혼의 상태라는데,

집도 길이고, 길도 집이다. 내가 사는 고장만이 아니라,

내가 속한 나라만이 아니라, 온 지구,

온 우주가 내가 살아가는 동안의 내 집인 것이다.

그렇게 살고자 했고, 그렇게 살았다.

잘 살았는지, 못 살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다만 그렇게 사는 동안 내 마음이 편했다는 것이다.

어린 시절부터 오랜 세월 동안 집은 나에게 있어서

주눅 든 영혼의 허물이었고, 그 허물에서 벗어난 순간부터

나는 집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가 있었다.

누군가는 말했다.

집이란 풍경보다는 한 영혼의 상태이다.”라고,

그럴 수도 있고, 그보다 더 한 표현이 있다면 그 이상 일수도 있어서

황지우 시인은 <>이라는 시를 남겼는지도 모르겠다.

불 켠 창을 바깥에서 보면,

나는 세상에서 쓸쓸하여,

저녁이 이렇게 몸서리칠 일일 줄이야,

집이 내 육체였을 줄이야.“

(.....)

집을 나와서 보면

세상은 외등外燈 하나에

목숨을 켜 놓고 저렇게 가물가물 깜빡거리고 있다.“

(.....)

<!--[if !supportEmptyParas]--> <!--[endif]-->

내 어린 시절과 소년 시절의 집들을 떠올리면

눈자위에 이슬처럼 눈물이 맺히는 그 집은 사진 속에도 없고,

추억 속에만 있으니,

어느 날 우리는 우리의 목적지에 도달한다.

그런 뒤부터 우리가 거쳐 온 먼 길을 가리키며 자랑스러워한다.

실제로는 여행을 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채지 못했다.

그러나 어디서나 집에 있는 줄로 생각했기에 먼 길을 지나 올 수 있었다.”

니체의 <즐거운 지식>에 실린 글이다.

나도 그랬다. 내가 가는 곳, 내가 머무는 곳을 집이라여겼기 때문에

그 많은 길을 떠돌 수 있었다.

, 내가 사는 집은 도심 속의 아파트,

내리는 눈과 빗방울이 창문너머로 펄펄 내려서 아파트 사이로 수직 낙하하는

풍경을 볼 수 있는 고층 아파트 중에서도 8,

8충 아파트에서 내가 꿈속에서도 살고자 했던 집을 짓고자 한

시인의 시를 떠올린다.

날만 밝으면 외할머니는 문이란 문은 있는 대로 열어두셨습니다. 햇살과 바람과 소나기와 구름이, 땅강아지와 풀벌레 소리와 엿장수와 똥개들이 제멋대로 드나들었습니다. 탄천장에서 강경으로 옮아가는 장돌뱅이들이 등짝이 축축하거나 목이 컬컬해지면 지게를 받쳐 놓는 그런 집이었습니다.

문설주를 지나 더러더러 거렁뱅이들이 희멀거니 웃으며, 걸어 들어와도 내 집 문턱 넘어선 사람 어찌 빈 입으로 보내겠냐며, 펄펄 끓는 시래기 국에 시뻘건 깍두기를 멍충이처럼 마당에 내오셨습니다.

이 담에 들어가서, 살다 살다 죽으려고, 내가 마음속에 지어둔 집이 바로 그런 집입니다. 문이라고 생긴 문이란 문은 있는 대로 처닫고 사는 이웃들을 만날 때면 더더욱 외가집이 생각납니다. 더 늙기 전에 그런 집 한 채 장만하고 싶어집니다.”

이관주 시인의 <마음에 지은 집>이다.

온다는 기별도 없이 오고, 간다는 기별도 없이

가는 그런 길갓집에서 살았던 나는

누가 오더라도, 가더라도

아무렇지도 않은 그런 집에서 살기를 바라고,

그래서 길도 집이고, 집도 길이라고 생각하면서 살았던 것은 아닌지,

하여간 내 지난날들의 집들은 지금도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는 슬픔의 원천이다.

 

 

2018112, 금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