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법인 우리땅 걷기 /신정일 대표님 자료 모음

설악산 자락의 두 호수와 하조대 일대를 걷는다.

산중산담 2019. 6. 26. 14:02


설악산 자락의 두 호수와 하조대 일대를 걷는다.

설악산 자락의 두 호수와 하조대 일대를 걷는다.

 

겨울의 한 복판에 설악산 자락의 청초호와 영랑호, 그리고 하조대 일대를 찾아갑니다.

흰 눈에 덮힌 설악을 보며 동해 바닷가에 자리 잡은 하조대와 속초 바닷가 그리고 영랑호와 청초호를 걷게 될 이번 기행에 참여바랍니다.

 

아바이 마을이 있는 속초

 

신흥사를 품에 안은 설악산 자락에 속초가 있다. 원래 양양군 도천면의 작은 포구였던 속초가 속초면으로 이름을 바꾼 것은 1937년이었다. 1942년에 읍으로 승격한 속초는 한국전쟁 이후 인구가 비약적으로 늘어났다. “눈보라가 휘날리는 바람찬 흥남부두에라는 노랫가락 속에 나오는 흥남 철수 작전이란 군사작전 때문에 미군의 함정을 타고 부산으로 내려갔던 피난민들이 피난살이를 하다가 이곳 속초로 몰려왔다. 그 이유는 이곳 속초가 함경도와 인접해 있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속초는 실향민들이 이루어낸 도시라고 할 수 있으며, 지금도 고향을 그리워하는 아바이마을이 남아 있다.

 

2-4청초호 영랑호 또는 속초관련-추가

설악산에서 바라보면 바다를 사이에 두고 두 개의 호수가 보이는데, 그 호수가 청초호와 영랑호이다. 또한 이곳의 특이한 수산물은 도루묵이다. 7080년대 군대생활을 했던 사람들은 도루묵이라 하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이 고기의 원래 이름은 묵이었다고 한다.

임진왜란 때에 왜군에 밀려 함경도 의주지방까지 피난을 간 선조의 밥상에 이 고기가 올랐다고 한다. 피난살이에 지친 선조는 묵이 맛은 좋았으나 그 이름이 마땅치 않게 여겨져 맛도 좋고 빛깔도 은빛이 도는 생선이니 앞으로는 은어라고 부르라고 했다고 한다. 그 뒤로 피난살이가 끝나 서울로 돌아온 선조는 피난 시절에 맛 본 그 생선이 생각나서 은어, 즉 묵을 다시 찾았으나 그 맛이 그 전만 못하자 은어를 도루 묵, 곧 다시 묵으로 부르도록 했다고 한다. 한때 맛이 없다고 푸대접을 받았던 이 도루묵이 일본사람들에게 고혈압에 좋다고 알려진 뒤 전량 수출되면서 서민들의 밥상에서 사라지게 되었다.

 

간성의 화담花潭은 달이 맑은 샘에 떨어진 것 같다. 영랑호永郞湖는 큰 못에 구슬을 감추어 둔 것 같으며, 양양의 청초호(현재는 속초시)는 그림 경대를 열은 것과 같다. 이 세 호수의 기이하고 훌륭한 경치는 위에 말한 세 호수 다음으로 아름답다.

우리나라 팔도 중에 다 호수가 있는 것은 아니나, 오직 영동에 있는 이 여섯 호수는 거의 인간 세상에 있는 것이 아닌 듯싶다. 한편 삼일포의 호수 복판에는 사선정(四仙亭)이 있다. 곧 신라 때 영랑(永郞)?술랑(述郞)?남석랑(南石郞)?안상랑(安祥郞)이 놀던 곳이다. 네 사람은 벗이 되어 벼슬도 하지 않고 산수를 벗하며 놀았다. 세상에서는 그들이 도를 깨우쳐 신선이 되어서 갔다고 한다.“ 이중환의 <택리지>에서

 

한편 속초시에 있는 청초호는 둘레가 5km에 이르는 큰 호수로 술 단지처럼 생겼다. 어귀는 동해 바다에 잇대어 있어서 조선시대 수군 만호영을 두었으며 병선을 정박하기도 하였다. 경치가 매우 아름다워서 이중환은 이곳을 두고 거울을 펴 놓은 듯이 맑다.”고 한 뒤에 낙산사 대신에 관동팔경의 한 곳으로 들었었다. 한겨울에는 얼음이 마치 갈아놓은 논두렁처럼 되는데 이를 두고 용갈이, 또는 용정이라고 부르며 얼음이 어떻게 어는가를 보고서 그 다음 해의 길하고 흉함을 점쳤다고 한다.

특히 청초호는 내항으로 500톤 급의 선박들이 자유롭게 입출항할 수 있고 태풍이나 해일이 몰아올 때 어선들이 대피 할 수 있는 정박지로 이용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