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법인 우리땅 걷기 /신정일 대표님 자료 모음

통영 사랑도, 칠현산. 지리망산, 그리고 만지도와 연대도를 가다.

산중산담 2019. 6. 26. 14:03


한려수도의 절경 통영의 사량도의 칠현산과 지리망산을 가다.

한려수도의 절경 통영의 사량도의 칠현산과 지리망산을 가다.

 

봄의 끝자락에 한려수도의 보석 같은 섬 사량도를 간다. 한 번 가면 다시 가고 싶지 않은 곳이 있는 반면, 몇 번이고 다시 가고 싶은 곳이 있다.

그것도 계절에 따라 다시 가고 싶은 곳, 섬이 바로 그러한 곳인데, 통영의 사량도가 다시 가고 싶은 섬 중의 한 곳이다.

사량도에는 지리산을 바라보는 지리산과 칠현산七鉉山이 있는데, 칠현산은 높이 가 349m로 사량면 하도(아랫섬)에 있다. 상도(윗섬)의 지리산·불모산·옥녀봉 등에 가려 덜 알려졌지만 바위능선이 마치 성을 쌓아 놓은 듯한 모습이 볼만하다.

 

통영시에서 사량도를 관광섬으로 개발하기 위해 등산로를 잘 정비해 두었기 때문에 길을 잃을 염려 없이 누구나 오를 수 있는 산이다. 조선시대에 수군의 망루였을 정도로 정상의 전망이 좋아 섬 전체가 한눈에 들어오고 멀리 한산도와 고성까지 바라보인다.

 

산행을 하려면 덕동항에서 왼쪽 길을 따라가다 등산입구 표지판에서 비탈진 숲길을 따라 오른다. 넓은 공터 이정표에서 서쪽으로 주능선에 올라 첫 번 째 봉우리를 지나면 바위 능선이 나오는데 산성길을 걷듯 힘들지 않다.

 

바위 능선에 올라서면 상도의 지리산에서 옥녀봉으로 이어지는 주능선이 한눈에 들어오고 발아래로는 금평포구가 내려다보인다. 봉수대와 몇 개의 봉우리를 지나면 정상이 나온다. 정상에는 산 이름이 적힌 기념비가 있다.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져 있지 않은 산이지만 한려수도의 한 복판에 있기 때문에 한려수도의 진면목을 다 느끼고 볼 수 있으며, 능선길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걸음걸음마다 경탄을 금하지 못하며 걸을 수 있는 길이 칠현산이다.

 

지리산이 있는 상도와 칠현산이 있는 하도가 다리로 연결되어 또 다른 풍경들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가을의 끝자락 남도의 섬에서 아름다운 늦 단풍을 바라보며 한려수도를 조망하게 될 이번 여정은 사량도의 상도와, 하도, 찾는 여정으로 진행될 것이다.

옥녀의 전설 안고 오르는 한려수도의 조망대라고 소개되는 통영의 사량도에는 지리망산(398m)과 불모산(399m), 두 개의 산이 솟아 있다. 이 두 산은 높이가 비슷한데다 주릉 좌우로는 천 길 낭떠러지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한 가지 더 보태자면 정상에서 맛보는 탁월한 조망이 최고라고 일컬어진다. 특히, 지리망산은 맑은 날이면 지리산 천왕봉이 보인다고 해서 이름이 지어졌을 만큼 조망이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지리망산 정상 위에서 내려다보면 마치 바다로 다이빙을 하는 것처럼 가파른 산이 지리망산이다.

이 때문에 지리망산을 아는 산행객들은 전문 산악인처럼 등반의 묘미를 느껴보기 위해 천 리 길을 마다하고 이 산을 찾고 있다,

그래서 예전에는 산악인들만 찾았던 산이었으나 지금은 조성이 잘 되어서 누구나 다 오를 수 있는 산이 지리망산이다.

지리망산보다 더 아름다운 산이 하도를 형성하고 있는 칠현산이다. 천천히 오르면서 한려수도의 아름다운 풍경을 다 볼 수 있는 이 산을 오르고 나면 한국의 섬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새삼 깨달을 수 있다.

 

사람 사이에 섬이 있다. 나도 그 섬에 가고 싶다.” 라고 노래한 정현종 시인의 시와 바다야 나는 왜 너를 보면 맨발로 파도를 달리고 싶니라고 노래한 박두진 시인의 시를 떠올리며 그리운 사람을 찾아가듯 섬으로 가고 싶은 분들은 동참하십시오.

이번 여정은 통영에서 배를 타고 사량도를 거쳐 삼천포항으로 갈 예정입니다.




새해 첫 기행 통영의 섬, 만지도와 연대도를 가다.

새해 첫 기행 통영의 섬, 만지도와 연대도를 가다.

 

통영에는 학림도, 만지도, 연대도, 오곡도, 비진도, 추도, 매물도, 욕지도, 노대도, 두미도 등의 섬이 있고 그곳에서 일몰의 장관을 볼 수 있습니다. 남해 바다에 그림처럼 펼쳐진 섬들 중, 미륵도 달아공원에서 한 눈에 내려다뵈는 섬이 만지도와 연대도입니다. 이 섬은 한해를 마무리하는 1230()과 한해가 시작될 201911(화요일)일 찾아갑니다.

이만지도와 연대도를 잇는 연도교가 20151월에 개통되어 명품 중에 명품으로 등장하였는데, 만지도와 연대도를 연결하는 출렁다리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13이 다리는 길이 98.1m, 2m 규모로 사람만 건널 수 있고, 차는 다니지 못합니다. 2010년 연대도가 전국적으로 명품섬 10’에 선정되면서 건설계획이 확정된 뒤 설계를 마친 후 201310월에 착공하여 14개월 만인 20151월에 완

30여 명의 주민들이 살고 있는 만지도는 전혀 개발되지 않는 원시적인 섬으로 자연미가 두드러집니다. 다리 수십 미터 아래의 짙푸른 바다는 현기증이 날 정도로 아찔하고 잔잔한 감동과 전율마저 가져다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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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이 이처럼 잘 개발된 요인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가장 큰 장점은 바람이 불어도 영향을 받지 않고 접근성이 뛰어나기 때문입니다.

민지도와 연대도에서 한해를 마무리하고 한 해를 시작하고 나와서 미륵섬 일대를 거닐다가 돌아올 예정입니다.

 

한국의 섬-통영시에 따르면 면적 0.233km2, 해안선 길이 2km의 만지도(晩地島)는 통영시에서 남서쪽으로 15km, 산양읍 달아항에서 3.8km 떨어진 해상에 위치한 섬으로, 인구는 15가구 33(2015)이다.

동쪽에는 연대도와 자란목도라는 암초로 연결되고, 북동쪽에는 곤리도(昆里島), 서쪽에는 추도, 남쪽에는 내외부지도 등이 있다. 서쪽의 만지산을 중심으로 산지가 발달하였다. 만지산을 큰산이라고 부르는데 만지마을에서 하나밖에 없는 가장 큰 주산이다.

 

풍수지리설에 의하면 바로 앞에 있는 저도는 닭, 연대도는 솔개, 만지도는 지네에 비유되어 서로 먹이사슬로 돼 있기에 함께 번성할 길조라고 전해진다. 만지도는 약 200년 전 박씨, 이씨가 처음으로 입도하여 정착하였으며 주변의 다른 섬보다 늦게 주민이 정착하였다 하여 만지도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일제강점기인 1914, 큰 마을 저도동과 학림동을 병합하면서 저도동의 자와 학림동의 자를 따서 저림리(楮林里)라 칭한 것에서 유래했다.

 

배에서 바라보는 섬은 동서로 1.3km 정도 길게 뻗은 형태이며, 서쪽의 만지산을 중심으로 산지가 발달하였다. 동쪽의 반도부는 암석해안을 이루고 있다.

 

방파제에서 바라보는 마을은 작고 아담하다. 오른쪽으로는 대부분의 집들이 드러나 있지만, 왼쪽의 집들은 높은 곳에 위치한 탓에 나무들로 가려진 상태다. 이 섬에는 마을이 하나뿐이다. 주민들은 대부분어업에 종사한다. 마을 앞에는 가두리 양식장이 있다. 멸치와 참돔, 갈치 등이 많이 잡히고, 굴양식이 활발하다.

 

배가 정박하는 선착장 부근 물양장에서 주민들이 가두리 그물을 손질하고 있다. 섬의 주민들은 상주하는 사람이 보통 5-10명 정도이고, 수시로 통영에 드나드는 분들이 10명 정도 된다고 한다.

 

두 개의 방파제 사이의 계류장에는 자갈해변이기 때문에 호안이 없다. 물론 물이 빠져서이기도 하겠지만 물이 들어와도 배를 접안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실제로 배 접안은 두 개의 방파제에 한다. 해안도로를 따라 조금 가면 왼쪽으로 가정집 같은 마을회관이 있고 그 앞에 만지마을이라는 마을표지석이 있다. 여기서 조금 오른쪽으로는 서쪽으로 이어지는데 산으로 올라가는 길이다.

 

높지 않는 산 정상쪽으로 난 길이 있고, 여기서 남서쪽으로 보이는 섬들이 연화도와 욕지도이다. 정면을 보면 동쪽에 연대도가 암초로 연결되고, 북동쪽에 학림도와 저도, 북쪽에 대소장도와 곤리도, 서쪽에 추도, 남쪽에 내외부지도 등이 자리한다. 만지도와 연대도 사이로 넘어가는 아름다운 일몰을 구경할 수 있다. 통영의 아름다운 해넘이는 통영의 남쪽 미륵도의 산양 일주로에 위치한 마을 어디서든 볼 수 있다.

 

통영의 한산도에서 전라남도 여수에까지 이르는 뱃길이 한려수도이고 그 뱃길이 이 나라에서 남국의 정취를 즐길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뱃길이다. 뿐만 아니라 통영 일대는 중앙기상대의 통계에 의하면 한 해 365일에서 250일 쯤이 맑기 때문에 가장 날씨가 좋은 지방이라고 한다.

그래서 조선 후기 삼도수군 통제영의 통제사로 와 있던 벼슬아치가 정승으로 벼슬이 올라 이곳을 떠나게 된 것을 섭섭히 여겨 강구안 파래야, 대구, 복장어 쌈아, 날씨 맑고 물 좋은 너를 두고 정승길이 웬 말이냐라고 탄식하였고, 일제시대에는 이곳의 풍부한 수산물과 좋은 날씨를 좆아 많은 일본 사람들이 몰려와 살았다고 하지 않은가?

또한 바라보이는 저 한산도 일대에서 선조 25(1592) 7월에 조선 수군이 싸울 힘을 잃고 퇴각하는 것으로 착각하고 추격한 왜군을 이순신이 거느린 조선 함대가 학이 날개를 편 모양의 진을 치고 왜군 70여척 가운데 59척을 격파하였고, 그 싸움이 행주대첩, 진주대첩과 함께 임진 3대첩에 들지 않았던가? 그 뒤 이순신이 설치했던 통제영이 줄여져서 통영이 된 이 곳을 이 고장 사람들은 토영 또는 퇴영이라고 하는데 평양 사람들이 피양 또는 폐양으로 부르는 것과 같은 현상이다. 그러나 통제영 시대부터 이 나라에서 으뜸으로 꼽히던 통영 갓은 무형문화재 제 4호라는 것이 무색하게 그 쓰임새가 줄어들었고, 무형문화재 제 10호로 지정되어 있는 통영자개 즉 나전칠기도 기능보유자가 옻칠을 구하기 쉬운 원주로 옮겨가는 바람에 그 의미가 퇴색하고 말았다. 그뿐인가. 1930년대까지만 해도 이 노래를 모르면 한산도 사람이 아니라고 할 정도로 널리 불렸던한산가라는 노래마저도 사라져가고 있다. “미륵산 상상봉에 일지맥이 떨어져서 / 아주 차츰 내려오다. 한산도가 생길 적에 / 동서남북 다 들러서 위수강을 돌아드니 / 해 돋을 손 동좌리라 / 라는 그 노래는 한산도 각 마을의 지명 유래와 그 아름다움을 표현한 가사체의 노래였다.

서쪽으로 멀리 남해의 금산이 그림처럼 보이고 비진도, 매물도, 학림도, 오곡도, 연대도 등의 섬들이 꿈길에서처럼 달려들고 뒤질세라 저도 연화도, 욕지도, 추도, 사량도, 곤지도 등의 섬들이 내 가슴에 파고든다. 문득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 나도 그 섬에 가고 싶다.”라는 정현종의 시 구절이 떠오른다.

신정일의 <두 발로 만나는 우리 땅 이야기, 경상도 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