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유餘裕 있는 길은 지혜의 궁전에 이른다. 이른 새벽부터 먼 길을 가고 왔다. 늦게 도착해 새벽에 일어나 밀린 일을 처리하고, 문을 열고 나서자 내리던 눈발, 이미 내린 눈들이 소복하게 대지를 덮고 있었고, 여섯 시 반 고속버스에 실려 대전으로 가서, 여덟시 40분 강릉행 버스에 몸을 실었다. 열두 시 정각에 강릉에 도착했지만 양양으로 가는 버스는 한 시 반에 있고, 열두시 38분 속초행 버스를 탔다. 한 시간 십 분에 속초 고속버스터미널에 도착해서 양양으로 가는 버스에 올라탔고, 이십 여분이 걸려 낙산사 입구에 도착했더니 솔비치리조트는 낙산사 관광단지가 아니었다. 다시 택시를 타고, 솔비치에 도착하여 오지 않는 일행들을 기다렸고, 해파랑 길과 울진 바닷가 길에 대한 강연을 마치고, 마무리하고 서울에서 심야버스 열한 시차를 타고 오니, 한 시 30분 오늘 하루, 나는 고속과 일반버스, 그리고 시내버스와 택시까지 탈 것을 다 타고, 나라 곳곳을 누볐다. 잠시의 여유가 없이 돌아다니다가 돌아오니,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돌아다녔는지, 정리가 안 된다. ‘세상은 한가한 사람의 것’이라고 말은 잘 하면서 한가하지 못한 삶을 사는 나, 내 삶은 과연 무엇인가?
“내가 느끼는 바를 말하자면, 난 아무 것도 아닌 사람으로서 태어나 그렇게 살아가고 있고, 앞으로도 얼마간은 그렇게 살다가, 결국, 아무 것도 아닌 사람으로서 죽어간다는 거야. 내가 어디까지나 보통의 머리로 생각하고 있는 건 말이지. 자신을 어떠한 소소한 것에도 특권화하지 않고, 아무 것도 아닌 인간으로서 살아가고 있는 한, 여유가 있다는 거야. 그런 후에 나름대로 힘을 쏟으면 되는 거야" 일본의 작가인 오에 겐자부로의 말이다. 내가 아무 것도 아니라는 생각, 그 생각 속에 살아야 티가 없고, 여유 있는 삶을 산다는 말이 맞을 것 같다. 그렇다면 자금의 나의 삶은 무언가 핀트가 어긋난 삶일 수도 있다, 문제의 핵심은 바로 그것이다. 내 삶, 그것을 약간 바꿔야 한다. 한가하고 여유가 있는 삶으로, “여유餘裕 있는 길은 지혜의 궁전에 이른다.” 블레이크가 <천국과 지옥의 결혼>에서 한 말인데 내가 가는 길은 너무도 바빠서 여유가 없었구나, 좀 더 천천히 걸어 갈 것을 다짐하고 또 다짐하는 이 한 밤,
| | | 세계는 꿈으로 되고, 꿈은 세계로 된다. 오래 사는 것이 좋은 것인가? 나쁜 것인가? 알 수도 없고 정의할 수도 없다. 분명한 것은 오래 살았다고 해서 세상에 더 많은 것을 남겨두고 가는 것도 아니고. 일찍 세상을 떠났다고 해서 세상에 많은 것을 남기지 못하고 가는 것도 아니다. 사람마다 다른데, 노발리스나 일찍 작고한 기라성 같은 작가들을 보면 오래 사는 것이 능사는 아닌 것 같다. 불꽃같은 삶을 남김없이 연소하고 사라져 간다는 것은 어쩌면 진정한 축복이 아닐까? <푸른 꽃>이라는 기막힌 작품을 남기고 스물아홉이라는 나이에 이 세상을 하직한 노발리스의 글을 읽다가 보면, 오래 사는 것이 한 없이 버겁다고 느낄 때가 있다. ”단 한 번만이라도 예술의 가장 깊은 곳에 있는 가장 달콤한 과즙을 맛 본 사람은 활동적이며, 생생한 세계에서 활동하기에는 이미 돌이킬 수 없이 쓸모없는 존재가 되어 있다.“ 그는 다음과 같이 문학을 이야기하고 있다. “문학이야말로 절대로 허위가 없는 진정한 것이다. 그것이 나의 철학의 핵심이다. 시적이 되면 될수록, 그만큼 더욱 더 진실해지는 것이다.” 노발리스와 같은 순수한 시인의 눈에 비친 문학과 달리 오늘날의 문학은 너무 많이 퇴폐 화 되었고, 진정성이 결여된 문학과 글들이 세상을 떠들썩하게 하고 있다. 작금의 문학 판을 노발리스가 살아 돌아와 본다면 어떻게 자기 스스로가 한 말을 수정하게 될까? “우리들이 꿈꾸는 것은 우주 편력이다. 도대체 우주는 우리들의 내부에 있는 것이 아닐까? 우리 정신의 깊숙한 곳을 우리들은 알지 못하고 있다. 내부로 향하여 통해 있는 비밀을 가득 간직하고 있는 길은, 우리들의 내부에 있든지, 그렇지 않으면 어느 곳에도 없다. 여러 세계를 포용하고 있는 저 영원한 것, 과거의 미래는 문학이며, 그것은 인간 정신의 진정한 행동 방식이다.” 라고 노발리스는 말하면서 그가 갈망했던 꿈, 그리고 이상인 푸른 꽃에 대해 말하고 있다. “저 푸른 꽃에 나는 연연하고 있다. 단 한 번 보았을 뿐인데, 저 꽃에 대한 생각이 염두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저 꽃을 제외하고는 시작詩作도, 생각도 할 수가 없다.” 푸른 꽃, 바라보기도 애잔한 푸른 꽃들을 보면, 젊디젊은 나이에 세상을 다 살아버린 사람처럼, 그 가슴 에이는 글을 쓰고 이 세상을 떠나간 그가 떠올라 가슴이 막막할 때가 있다. 노발리스는 <푸른 꽃>에서 “우리들은 도대체 어디로 가는가?” 라는 질문에 “언제나 집으로 향하여” 라고 말했다. 왜 그랬을까.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여러 세계를 포용하고 있는 영원한 것과 과거와 미래는 우리들의 내부에 있거나 그렇지 않으면 어디에도 없기 때문이다.“ 우리들은 지금 없는 것을 그리워하고, 그 막막한 그리움 때문에 사는 것인지도 모른다. 노발리스는 철학을 “향수” 그리고, “어디에서나 집처럼 느끼고 싶은 충동”이라고 라고 정의했고 ‘동화’를 “어디에나 있으면서 아무데에도 없는 고향적인 세계에 대한 꿈”이라고 정의 했다. 또한 그는 낭만주의 시를 “쾌적한 방식으로 사물을 소외시키는 예술, 즉 사물을 낯설게 만들면서도 동시에 친숙하고 매력 있게 만드는 예술” 이라고 정의하였는데, “세계는 꿈으로 되고, 꿈은 세계로 된다.“ 고 말한 노발리스가 꾸었던 <푸른 꽃>의 세계는 과연 어떤 세계였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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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지금 이 시대에 나는 어떤 부류의 사람인가? 세상에는 여러 부류의 사람들이 살고 있다. 책을 한 권 읽지 않고도 아주 행복하게 살고 있는 사람이 있고, 음악을 듣지 않거나 영화 한 편을 보지 않아도 아주 행복하게 사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모든 것을 다 갖춘 것 갖지만 모든 것이 부족한 듯 더 많은 것을 갖기 위해 불철주야 안간힘을 다해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다. 또한 세상이 어떻게 되어가든 간에 나만 편하고 행복하면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고, 또 한 부류는 모든 것을 부정적으로 보면서 인류의 고민을 다 자기가 짊어진 듯 고뇌하고 아파하면서 살아가는 사람도 있다. 헤르만 헤세의 자전적 소설이라고도 부르는 <황야의 이리>의 주인공은 후자의 삶을 사는 사람이다. “몹시 불안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드물게 찾아오는 행복의 순간에 이따금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강렬한 아름다움을 체험하고, 그 순간적인 행복의 물거품이 때로 고통의 바다를 넘어 눈부시게 뻗어 올라 불꽃처럼 짧게 타오르면서 찬란한 빛을 발하여 다른 사람들을 감동시키고 매료시킨다. 그리하여 모든 예술 작품은 고통이 바다 위를 떠도는 소중하고 허무한 행복의 거품이 된다. 고통 받는 개개인간은 예술작품을 통해 자신의 운명을 넘어 고양되어서, 행복은 벽처럼 빛나고,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들은 이 행복을 어떤 영원한 것으로, 그들 자신의 행복의 꿈으로 느끼게 된다. 이 사람들의 행위와 작품이 무어라 불리든 간에, 이들에게는 본래 삶이란 것이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다시 말하면 이들의 삶은 존재가 아니고 형태도 없다. 이들은 다른 사람들이 판사, 의사 구두장이, 교사인 것처럼. 그렇게 영웅이거나 예술가이거나 사상가인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이들의 사람은 파도가 해안에 부딪치듯이 영원하고 덧없는 운동이어서 불행하고 고통스럽게 분열되어 있다. 그래서 사람들이 이러한 삶의 카오스 위에서 빛나는 저 희귀한 체험과 행위와 사상과 작품에서 그 의미를 찾으려고 하지 않는 한, 이들의 삶은 끔찍스럽게 무의미하다. 인간의 삶이란 모두 태초의 어머니의 엄청난 착각이요, 실패한 유산流産의 결과이며, 완전히 잘 못 그린 자연의 서투른 습작품일지도 모른다는 위험하고 무시무시한 생각도 이런 부류의 사람들에게서 나온 것이다. 그러나 인간이 절반 밖에 이성적이지 못한 동물이지만, 그래도 신의 아들이며, 불멸이 예정되어 있다는 생각 또한 바로 이런 사람들에게서 생겨난 것이다.“ 헤르만 헤세의 <황야의 이리>에 실린 글이다. 이런 사람들이 어느 시대에나 존재하고, 이런 사람들이 세상을 사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면서 슬픈 일이다. 그러나 그는 이 세계에서 스스로 도태되지 않는 한 살아 남아야 하고, 이 세계는 그들에게 어둡고 쓸쓸하다. 그렇다면 지금은 어느 시대인가? 인간의 사람이 정말로 고통으로 변하는 것은 두 시대. 두 문화, 두 종교가 교차할 때뿐입니다.(...) 지금은 한 시대 전체가 두 시대 사이에, 두 개의 생활양식 사이에 끼여, 어떤 자명한 이치도, 도덕도, 어떠한 안정감도, 순수함도 상실해 버린 시대입니다.“ 헤르만 헤세가 <황야의 이리>에서 예언한 것과 같은 이 시대, 두 갈래, 세 갈래, 아니 다섯 갈래도 아니고, 수 십, 수 백 갈래로 나뉘고 나뉘어 어떤 통합을 꿈꿀 수고 없는 이 시대에도 모든 만물을 비추이는 여명은 서서히 밝아올 것인가? “사실 세상이 옳다면, 다시 말해, 카페의 음악이나 대중의 향락이나 값싼 만족에 길들여진 이런 미국식 인간들이 옳다면, 내가 틀렸고, 내가 미친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정말로 말 그대로 황야의 이리인 것이다. 나야말로 고향도, 공기도, 양식도 찾지 못하는 짐승, 낯설고 알 수 없는 세상에 길을 잘 못 들어선 짐승인 것이다.” 헤세가 <황야의 이리>에서 말한 사람들, 내 편인 것도 같다가 적의 편인 것도 같다가 도저히 알 수 없는 오리무중 같은 사람들이 여기도 저기도 널려 있는데, 내 인생의 색깔은 과연 백색인가, 검은색인가, 회색인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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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인간의 한 생애가 한 밤중에도 흘러가고,. ““인간의 한 생애란 그물그물 바람 앞 촛불인 것을 부귀를 탐하여 살아생전, 어느 뉘 족한 줄을 알더뇨? 신산 되기야 애당초 기약이 없고, 세상 길 엎치락뒤치락 변덕뿐이니, 어쩌랴 잔 들고 노래 부르며 멀거니 집 마루나 바라보노니,“ 고려 명종 때 사람, (1095~1174) 최유청崔惟淸의 <인간의 한 생애란>이라는 시를 읽다가 보니, 이런 저런 생각이 파노라마처럼 스치고 지나간다. 명리名利를 쫓아서 산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내 몸 하나 잘 건사하겠다고 산 것은 더더구나 아니고 글(書) 따라 길(道)따라 한 평생 살았는데, 지내놓고 생각하니, 이런 회한, 저런 회한 가슴이 무너지는데, 세월은 재촉을 안 해도 쏜 살 같이 흘러간다. 그래, 이런 삶도, 저런 삶도, 세월 속에 손바닥에서 자꾸 새어나가는 모래알처럼, 사라져 가는 것만이 진실인 것을, 하지만 어쩌랴, 하고 뒤돌아보니 이 쪽 저쪽, 나를 바라보는 수많은 책들, 그래, 다시 보니 오랜 친구들의 눈빛은 예나 지금이나 그윽하구나. 그 눈빛에 금세 쓸쓸했던 마음이 봄바람을 맞은 듯, 훈훈해 진다. 이런 땐 깊은 밤 아니라면 술 꾼이 아니라도 술 한 잔 기울인다면 안개가 풀리듯 마음이 스르르 풀리련만, 술 찾아 술 권할 이 없으니, 아서라, 말아라, 모든 생각 내려놓고, 석주 권필의 술 노래로 적적한 마음을 달랠 뿐이다. “벗 만나 술 찾으면 술을 못 얻고, 술 대해 벗 그리면, 벗이 안 오네. 한 평생 이내 일이 매양 이러니, 허 허 웃고 기울이네, 혼자 서너 잔,“ 밤은 이렇게 저렇게 흐르고 흘러, 또 새벽이 올 것인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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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눈은 말할 수도 있고, 이해할 수도 있다. 아직도 다행인 것은 기억력이 그다지 쇠퇴하지 않았다는 것, 그리고 매일 책을 읽고 글을 써야 하는데, 아직도 눈이 그다지 나쁘지 않다는 것, 귀가 아프지 않아 소리를 잘 들을 수 있고, 그리고 다리가 아프지 않다는 것, 병원에 하루도 입원하지 않고 여태껏 잘 살았다는 것, 여러 가지가 있지만 제일 중요한 것은 눈이 아직도 나쁘지 않다는 것이리라. 눈이 나쁘게 되면 책을 못 읽을 것이고, 바라보는 사물들, 그것이 사람이거나 어떤 풍경이거나 희미하게 보일 것이고, 언제나 안경에 의지하고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태어서 19개월 만에 시각과 청각을 잃고서 평생을 살다간 사람이 헬렌 켈러였다. 그는 보지도, 듣지도, 말하는 것조차 불편한 삶을 살면서도 수많은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삶을 살았고, 그리고 훌륭한 문장가로 오늘날에도 수많은 사람들을 감동시키는 삶을 살았다. ‘사흘간만 세상을 볼 수 있다면 내 눈을 어떻게 써야 할까?“ 눈이 건강한 사람들에게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간절한 글을 남긴 헬렌 컬러의 글을 읽다가 보면 세상의 모든 것을 볼 수 있는 ‘눈’이 얼마나 인간에게 중요한가를 뼈저리게 느낄 수가 있다. “‘눈은 ’영혼의 창‘이라지만. 나는 친구의 마음을 눈을 통해 볼 수 없습니다. 그저 손가락 끝으로 더듬어 만져지는 얼굴의 윤곽을 느낄 뿐입니다. 웃음과 슬픔, 그리고 그 밖의 많은 감정들도 손으로 감지할 있습니다. 나는 친구들의 얼굴을 만져서 그가 누구인지 알아냅니다. 하지만 표정으로 드러나는 그들의 생각이나 내게 취하는 행동만을 가지고는 그들의 성격을 도무지 파악할 수가 없습니다. 또한 그들을 지켜보고, 여러 가지 표현이나 상황에 대한 반응을 관찰하고, 그들의 눈빛이나 안색이 돌변하는 것을 주시해서 그들을 더욱 깊이 이해할 수 있는 기회가 내겐 없습니다.” 눈을 뜨고 살아도 제 앞의 것도 보지 못하고 살아가는 사람이 있는 반면, 눈이 보이지 않아도 마음의 눈으로 세상의 모든 것을 보고, 이해하고, 사랑하고, 보듬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어떤 사람이, 어떤 삶이 이 세상에 등불이 되고, 나침반이 되는지는 단정지을 수는 없다. 하지만 이 세상에 ‘우연’인지 ‘필연’인지 왔다는 것은 이 세상에 어떤 쓰임새가 되기 위해서 왔을 것이고, 크든 작든 이 세상에서 한 줄기 빛으로, 한 송이 예쁜 꽃으로 비치고 피어서 열매를 맺는 것이 우리가 이 땅에 온 소명이 아닐까? “예로부터 눈은 사람의 거울이라고 했다. 눈은 가슴속에 담긴 생각을 반영한다. 사랑하는 사람들은 상대방의 눈에서 상대방의 마음을 읽으려고 한다. 눈은 입이 말하지 않으려는 것을 말한다.” O.F.쇼이엘의 말인데 채프먼도 눈에 대한 한 마디를 남겼다. “눈은 말할 수도 이해할 수도 있다.” 눈을 뜨고 세상을 보고, 눈을 감고 세상을 음미할 수 있다는 것은 지상에서 인간이 누릴 수 있는 축복중의 축복이 아닐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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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삶은 바람처럼 문득 스치고 지나간다. “속된 사람이 오지 않는 곳, 올라와 바라보면 마음 트인다. 산의 모습은 가을에 더욱 좋고, 강물 빛깔은 밤에도 밝다. 흰 물새는 높이 날아 사라지고, 외로운 배는 홀로 가니 가볍다. 부끄러워라. 달팽이 뿔 우위에서 반평생 동안 공명功名 찾아 허덕였으니,‘김부식 <감로사차운,甘露寺次韻 이 시는 오랫동안 권력의 핵심부에 있으면서 세상을 쥐었다 폈다 했던 <삼국사기>의 저자 김부식이 쓴 시다. “마음과 세상 일이 어긋나니, 시를 짓지 않고서는 즐길 일이 없다네. 술에 취한 즐거움도 눈 깜빡 할 새의 일, 잠자는 즐거움도 다만 잠깐 사이라. 인연 없어 나라 일에 몸 바칠 수도 없으니, 눈물 닦으며 탄식이나 하리라.“ 김시습 <번민을 서술하다.敍悶> 이 시는 평생 동안 권부를 ‘나 몰라라’ 하고 하늘을 지붕 삼아 이 땅을 떠돌았던 시인 김시습이 쓴 시다. 세상에 살았던 사람, 대부분이 다 그렇다. 인생의 길을 거의 다 걷고 나면 행복했던 시절도, 불행했던 시절도 지나간 추억이 되어 회한만 남는 것, 나 역시 그래서 그런지 괴테의 글 몇 소절이 가슴을 치고 지나간다.
“폭풍의 가슴을 지녔던 그 시절을 돌려 달라. 환희에 깊이 속에 자리 잡은 고뇌 증오의 힘, 그리고 사랑의 동요. 아, 내게 그 젊음을 돌려 달라.“ <파우스트>에 실린 몇 소절이다. “지나고 나서야 안다. 산다는 것은 마음의 행로를 따라 육체가 간다는 것을, 가는 길에 만나는 산과 강 그리고 양양한 바다, 안개와 구름, 비바람 눈보라, 꽃피고 지는 것이, 바로 정해진 삶의 면면面面이다. 는 그 사실을...‘ “산중의 적은 물리치기 쉽지만 마음속의 적은 물리치기 힘들다.“ 왕양명의 말과 같이 변하고 변하는 마음 때문에, 삶이 매 순간 전쟁터였고, 삶이 끝나는 순간 그 때서야 평화가 온다는 것을,
내 삶의 가장 절실했던 시절을 찾아 떠나는 여행, | |
| | | 내 삶의 가장 절실했던 시절을 찾아 떠나는 여행, 한 사람의 삶에서 어느 한 순간이 한 생애를 결정지을 때가 있다. 그 때를 자신의 영혼에 ‘한 점‘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이 있는 반면, 어떤 사람은 그 때를 인식하지도 못하고 보내버리기도 한다. 그 때가 내 나이 열일곱이었고, 그 때 나는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들을 여럿 만났다. 카프카, 니체, 도스토예프스키, 알베르 카뮈, 사르트르 등, 그들이 살아 있을 당시에 나는 태어나기 오래 전이었고, 그래서 그들을 책을 통해서 만난 것이다. 그리고 이십 대 중반을 넘어선 1981년 봄, 우연치 않게 빌려다 본 책(사돈이 서점을 하고 있었고, 책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서점 책을 빌려다 읽었다. 하루에 다섯 권에서부터 아홉 권까지 읽었다.) 이 <그리스인 조르바>였다. 제목만으로는 그렇고 그러리라 생각하고 빌려온 열권 중 한 권, 그런데 그 책의 첫 소절에 나는 밑줄을 긋고 말았다. “나는 피라에우스에서 조르바를 처음 만났다. 크레타 섬으로 가는 배를 타려고 항구에 나가 있었을 때였다.” 그리고 페이지를 넘기면서 내 가슴은 한 없이 뛰어놀았고, 그 때마다 밑줄을 그어, 그 책을 살 수 밖에 없었다.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 돌멩이 하나에도 다 영혼이 깃들어 있다.” 그렇구나. 내가 그걸 여태껏 몰랐구나. 조르바는 어느 날 카잔차키스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들려준다. 까마귀에게 일어났던 일이 당신에게도 일어나고 있는 겁니다.“ 까마귀에게 일어난 일이라니, 그게 뭡니까. 조르바” “말씀드리지요. 원래 까마귀는 까마귀답게 점잖고 당당하게 걸을 줄 알았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이 까마귀에게 비둘기처럼 거들먹 거려보겠다는 생각이 난 거지요. 그날로 이 가엾은 까마귀는 제 보법步法을 몽땅 까먹어 버렸다지 뭡니까. 뒤죽박죽이 된 거예요. 기껏해야 어기적거릴 수밖에는 없었으니까 말입니다.” 그랬구나. 그래서 내 삶이 그렇게 어설펐구나. <그리스인 조르바>에서 조르바는 화자인 카잔차차키스에게 말하는 것이 아니라. 내게 말하는 것이었다. 그래, 내 삶, 엉망진창인 내 삶에 한 줄기 빛으로, 돌파구로 내 영혼을 파고든 책이었다. 물론 그 때 만난 카잔차키스만, 내 영혼을 송두리째 후비고 지나갔던 것은 아니다. 열일곱, 그 새 푸른 나이에 절망과 슬픔에 엉망이 된 채 읽었던 카프카가 먼저였다. “나는 얼마나 비참한 인간인가! ....아무것도, 아무것도, 아무것도 아닌 것, 허약함, 자기 파멸, 바닥을 꿰뚫는 불꽃의 끝, 그리하여 나는 허우적거리고 산꼭대기에 이르려고 끊임없이 날지만, 순식간에 떨어져 버린다. .....그것은 죽음이 아니라 죽어가고 있는 영원한 고통이다.” 프란츠 카프카의 회한과 자기 부정이 바로 그 때 내 삶의 전체였고, 출구 없는 벽 앞에서 나는 그냥 망설이고만 있었다. 그 때 읽었던 책들, <성> <심판> <변신> <선고>들이 내 영혼에 깊이 침잠해 들어갔고, 세상의 모든 것을 꿰뚫어버릴 것 같은 눈빛을 가진 도스토예프스키와 니체는 얼마나 내 영혼을 뒤흔들었던가. 그 중 가장 늦게 만난 사람이 독일의 문호 괴테였다.
“예기치 않게 만난 거대한 광경 앞에서 현기증을 느끼고 우리 존재의 보잘 것 없음과 아울러 위대함을 느끼는 것은 더 없이 자연스러운 일이다.” 괴테가 <빌헬름 마이스터의 편력시대>에서 말한 것처럼, 나는 거대한 광경 앞에 선 것처럼 <파우스트>를 읽었다. 지금도 그의 말을 많이 기억하는 것은 그 때 내 삶이 가장 순수한 시절이었고, 내 영혼이 타는 듯한 지혜의 갈증에 목말라 했기 때문일 것이다. “오로지 하나의 순간이 그 안에서 내가 살았던 순간이고, 내게서 차갑게 사라져 가는 다른 모든 나날들을 합친 무게를 지닌 순간이다.” 그렇다. 그때도 그 순간이었고, 지금도 순간은 그 순간이다. 니코스 카잔차 키스의 고향, 크레타와,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의 지혜와 삶이 응측되어 있는 그리스, 괴테와 니체, 그리고 토마스 만, 릴케, 헤세가 태를 묻은 독일, 그리고 카프카의 고향에 가서 나는 어떤 상념에 젖고, 어떤 영감을 얻을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하지만 내 삶이 푸르렀지만 절망과 슬픔으로 지내던 그 시절의 기억들을 그 장소들에서 떠올리다가 보면, 또 다른 삶의 좌표를 발견하지 않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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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낙동강 천 삼 백리를 한 발 한 발 걸었다. 낙동강 천 삼 백리 강물이 흐르고, 세월도 흐르고 우리들의 삶도 흐른다. 지난 이월 말, ‘태백 검용소에서 부산 다대포까지 한 발 한 발 걷는다.‘ 라는 신념 하나 가지고 천천히 걸었다.
꽃피던 봄이 가고, 그 무덥던 여름 가고, 온갖 색의 향연이던 가을 가고, 그리고 한 겨울, 내일과 모레를 걸으면 낙동강의 끝자락 다대포에 닿는다. 천 삼 백리, 물길, 감자도 심지 않고, 오이도 심지 않고, 그렇다고 호박도 심지 않으면서 세세천년 흐르고 흘러온 강이 세상의 모든 근심, 슬픔, 고통과 질곡의 세월들을 다 끌어안고 화엄의 바다로 들어가는 곳, 강은 흐르고 바다는 받아들인다. 사람은 걷고, 또 걷는다. ‘길의 끝에는 자유가 있다‘는 그 믿음 하나 가지고, 걷고 또 걸어서 만나는 바다, 그 바다에 우리가 꼬박 열한 달을 걸으며 보았던 낙동강의 진수眞髓를 만날 수 있을까? 2018년 12월 14일 금요일, 길 위의 인문학 우리 땅 걷기의 2019년 정기기행은 2월 말부터 민족의 젓줄 한강 천 삼 백리 길을 걷습니다. 태백의 검용소에서 김포시 월곶면 보구곶리까지 낙동강 천 삼 백리를 한 발 한 발 완주하신 분들게 축하를 보내고 함께 걸었던 도반들에게 고마움을 전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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