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법인 우리땅 걷기 /신정일 대표님 글 모음16

산은 침묵하는 선생이면서 동시에 조용한 학생이다.

산중산담 2019. 6. 26. 13:32


산은 침묵하는 선생이면서 동시에 조용한 학생이다.


 

내 삶은 한가한가? 아닌가? 하고 내가 나에게 물으면,

나는 한가하다고 말할 것이다. 하지만, 나를 잘 알고 있다는 사람들은

나더러 너무 바쁘게 산다고 말할 것이다.

내가 나를 잘 알지만 내가 나를 잘 모르는데, 내가 어찌 내가 아닌 타인을

안다고 말하겠는가?

더구나 시간 속에서 시간을 낭비하기 일쑤인 내가

그 정해진 시간 속에 무엇을 어떻게 보고 느껴서 그 사물들을

잘 안다고 말하겠는가?

가끔씩, 아니 어쩌다 누군가의 말을 통해서, 음악을 통해서, 글을 통해서

내가 나를 새롭게 인식하고. 나 자신을 천천히 들여다보곤 한다.

 

만일 당신이 어떤 것에 대해 알고자 한다면,

그것을 오랫동안 바라보아야 한다.

나무를 바라보면서

이 나무에 봄이 왔다.’ 라고 말하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苛?. 당신은

당신이 바라보는 그것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

양치식물이나 꼬불거리는 잎사귀와

검은 줄기가 되어야 하고,

앞 사귀들 사이 작은 침묵 속으로

들어갈 수 있어야 한다.

시간을 충분히 갖고,

그 잎사귀들을 꺼내 보이는

평화로움을 만질 수 있어야 한다.“

죤 모피트의 <어떤 것을 알려면>이라는 글이다. 그 글과 같이

나는 더 천천히 사물들을 들여다보고, 내 주변을 더 세심하게

살펴야 하는데, 나는 가끔씩 산만하게 여기저기를 기웃거릴 때가 많다.

산에 가면 바다를 그리워하고, 바다에 가면 산을 그리워하는 방랑자와 같이

이산, 저산, 저 강, 바다를 그리워하는 나와 같이 방랑을 하면서

그 방랑을 사랑했던 독일의 문호 괴테의 명작

<빌헬름 마이스터의 편력시대>에 다음과 같은 글이 실려 있다.

 

몬탄이 빌헬름에게 말했다.

자네는 이곳 산과 절벽을 잘 알게 되고,

땅 위와 땅 아래의 그 모든 제약 속에서 행복해진 나를 발견했네.”

그럼 당신은 이제 이 전에 제가 당신을 산에서 만났을 때 보다

경험이 많고 자유로운 설명과 수업을 하시겠군요?“

아닐세.” 몬탄이 대답했다.

산은 침묵하는 선생이면서 동시에 조용한 학생일세.”

 

그렇다. 모든 사물들이 그렇다. 바다도, 산도, 강도

나의 침묵으로 말해주는 스승이고, 흐르는 물살, 스치는 바람 소리로

세월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나의 진정한 도반이자 스승이다.

 

성긴 빗방울

파초 잎에 후두기는 저녁 어스름,

창 열고 푸른 산과 마조 앉아라.

들어도 싫지 않은

물소리기에

날마다 바라도

그리운 산아.“

청록파 시인으로 지조론과 연애론을 썼던 조지훈의

<파초우芭蕉雨>라는 시와 같이

나는 유년시절부터 산에서 자랐고, 그래서 산을 사랑하면서

이날 이때 까지 그 산 그늘지는 시간, 어둠이 몰아오는 그 시간에 참다운

나를 만나곤 했다.

 

숲은 목재가 가득한 삼림이며, 산은 채석장이고,

강은 수력이고, 바람은 돛을 펼쳐주는바람이다.”

독일의 철학자인 하이데거는

나에게 이런 말을 전해주는데,

나는 오늘과 내일 소백산 자락을 헤매며,

어떤 사물을 만나 어떤 상념에 젖을 것인지,




세상에 있는 여러 갈래의 길들,

세상에 있는 여러 갈래의 길들,

 

영주에서 아침밥을 먹고, 부석사로,

부석사에서 봉화 늦은목이 재로,

늦은목이재에서 풍기 죽령으로,

죽령에서 영월 김삿갓면의 김삿갓 묘에 갔을 때,

살포시 어둠이 내리고 있었다.

섶다리에서 서둘러 마지막 방송을 찍고 차에 오르자,

주위는 적막한 어둠,

그때부터 나는 촬영차량의 기사의 마음에 따라 흔들렸다.

어둠 속에서 차는 영월로 나아갔고, 제천과 원주를 지나

양평으로 내 달렸고, 광주 초월읍을 지나는가 싶더니

성남을 지났고, 어느 순간 차는 인덕원을 지나 과천에 이르렀다.

과천에서 강남을 거쳐 센트럴시티에 이른 것은 밤 여덟시 20,

그래, 이렇게 세상에 길이 여러 갈래구나,

사람의 마음 속 길을 따라서 이렇게 여러 갈래의 길이 나타나고,

나는 그 길을 이리저리 따라다니는 순례자였구나.

내가 의도해서 가는 길이 아니고, 타인의 마음 속 길을 따라 가는 길,

그럴 때가 이 세상에서 얼마나 많은가?

무심하게 스치고 지나가는 세상을 바라보는 사이,

아니 한 숨도 아니고 잠깐 조는 사이에

세상의 모든 것들이 다가왔는지도 모르고 사라져 버리는 것과 같이

우리들의 생애에서 눈 깜짝하는 사이 지나가

다시는 만날 수 없고, 범접도 할 수 없는 것들이 얼마나 많은가?

내가 가슴 활짝 열고 망연히 바라보았던 부석사의 무량수전의 문살이나,

한없이 퍼져나가던 소백산 자락의 정경이나

저물어 가는 산자락에 씀 바퀴가 온 무덤을 덮고 있던 김삿갓 묘에

잠들고 있을 김병연의 생애도,

지금은 그새 과거가 되고, 추억이 된 채 어둠 속에 잠겨 있을 것이다.

그런데, 자정 넘어 그 시간을 회상하는 나는 또 누구인가?

나는 이도 저도 아닌 길 가는 나그네,

 

길 위에 스승이 있다.

길 위에서 배운다.“

나의 길이자, 나의 진리다.





삶이란 지금 밖에 없는 것인데.

삶이란 지금 밖에 없는 것인데.

 

현재의 모든 사물과 운동은 현재의 그것 이외에 아무 것도 아니며,

미래의 그 결과는 미래의 그것 이외에 아무 것도 아닐 것이다.

여기에 무엇을 어렵게 생각해 오해를 하겠는가?“

비숍 버틀러의 말이다.

맞는 말이다. 그런데, 지금, 이 현재를 잘 못 살면서

올지 안 올지도 모르는 미래 때문에 지금, 이 현재를 잘 못 살 때가 많다.

지금의 나만 그런 것이 아니다.

<절망은 나무 벤치 위에 앉아 있다.>고 노래했던 자크 프레베르는

<내 삶은>이라는 시에서 그 자신의 상태를 다음과 같이 썼다.

 

내 삶은 내 뒤에도 내 앞에도

현재에도 없다.

삶은 그 안에 있는 것

 

그렇다면 그가 그 자신의 삶에 있다는 것은

무엇일까?

희망,’ 아?玖? 절망, 아니면 이것도 저것도 아닌 그 무엇?

알 수 없는, 그렇다고 예측할 수도 없는 그 무엇, 때문에

인간의 삶은 고독하고 쓸쓸한 것이다.

 

하루, 그 하루해가 더 짧아질수록, 산천은 더욱 가을빛으로 물들고,

곧 이어 이 땅에 가을이 가고 추운 겨울이 찾아올 것이다.

그 때 나는 어떤 자세로 오는 겨울을 맞이할 것인지,

다만 무심만이 긴요할 뿐,

내 두발이 무심에 달렸건 말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다만 나를 잊으려고 하네만 고독이 나를 못 잊어 하네.

부산하게 누린 것을 찾는 개미들이요.

구구하게 미끼를 무는 물고기들이네.

부생浮生이란 해괴한 일이 많으니, 그 위를 보고 걸어가는 것이 상책일세.“

고려 때 문신인 이달층의 의<흥교승통興敎僧統을 전별하는 시>

무미건조하게 읊조리며.

가도 또 가다가 보면 이 땅에 봄이 올 테지.

아직 가을도 가지 않았고. 겨울도 오지 않았는데,

가고 오는 계절을 기다리는 나는 또 누구인가?




이 세상에서 사는 시간이 얼마나 될까?

이 세상에서 사는 시간이 얼마나 될까?

 

목포가 항구라면 군산도 항구다.

조선후기에 개항한 군산은 일제시대에

쌀을 일본으로 수탈해서 가져가기 위한 전초기지였다.

그래서 나라 안에서 제일 먼저 전주 군산 간 신작로가 만들어졌고,

벚꽃이 그 먼 길에 줄을 지어 심어져 한때 벚꽃 축제로 이름이 알려졌었다.

그러나 세월 속에 그 벚꽃 백리 길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그렇게 많았던 일본식 건물들도 근대문화유산이라는 이름으로 남은

몇 개의 건축물만 남아 있고, 사라지고 말았다.

가고 오는 것이 어디 군산이라는 항구만 그럴까 싶지만,

그 세월 속에 사라진 풍경들을 회상하며 걷는 내내

가슴 한 귀퉁이가 서늘하기만 했다.

영원한 것이 어디 있으랴. <탁류>의 작가 채만식이 묘사한

군산의 모습은 몇 개의 자취만 남기고 사라졌고,

지금은 그 자리를 <8월의 크리스마스>의 무대인 초원사진관이나

동국사, 군산 세관들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으니,

살아 있다는 것은 무엇이고, 사라진다는 것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양주가 말했다.

태고太古의 일은 다 없어지고 말았다. 누가 그것을 기억하랴? 삼황三皇, 삼황 하지만, 그때의 일이란 과연 그런 것이 있었는지 없었는지 애매할 따름이며, 오제五帝 때의 사실도 꿈속의 일인지 생시의 일인지 분간하기 어렵고, 삼왕 때의 일만 해도 어떤 것은 없어지고 어떤 것은 남아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억에 하나도 되지 않는다.

옛것은 고사하고 우리 평생의 일만 해도, 더러는 듣고 더러는 보고 했으면서도 우리가 아는 것은 만에 하나 꼴도 되지 않고, 눈앞에 벌어지고 있는 일의 경우에도, 어떤 것은 남아 있으나 어떤 것은 없어지고 말아서, 우리는 그 천분의 1도 알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태고로부터 오늘까지 몇 해나 지났는지 아무도 알지 못하며, 복희씨 이후만 따진대도 30만 년 이상의 세월이 흘렀다.

그 동안 무수히 반복된 현우賢愚, 성패成敗, 시비是非치고 소멸하지 않은 것은 없었으며, 다른 것이 있었다면 빨리 없어지고, 더디게 사라지는 차이 뿐이었다. 그렇다면 한 때의 비난과 명예에 마음을 써서 그 심신心身을 괴롭히고, 그것으로 수백 년 뒤까지 남을 명성을 추구한다 한들, 그것이 죽어버린 몸에 무슨 이익이 되며, 어떤 삶을 즐겁게 하는 것이 되겠는가?“

<열자> <양주 편>에 실린 글이다.

이렇듯 가면 돌아오지 않고, 세상의 모든 것은

다 사라지는 것이라는 것을 잘 알면서도

가버린 것에 대한 쓸쓸함에 걷는 내내 마음이 무거웠던 것은

나뿐이었을까?

 

조금, 그래 조금 있으면 사라질 우리들,

우리에게 이 지상에서 남은 시간은 얼마나 될지,

 



삶에 대한 불안이 스멀스멀 피어오를 때가 있다.

삶에 대한 불안이 스멀스멀 피어오를 때가 있다.

 

하는 것 없이 바쁘고, 바쁨 속에서 하루하루가 간다.

바쁘다는 것은 나를 잊을 수 있는 필요불가분의 요소인데,

오히려 그 속에서 삶에 대한 불안이 아침 안개가 피어오르듯

스멀스멀 피어오른다.

내가 잘 살고 있는가, 내가 가는 길은 온전한가,

가다가 혹시 딴 데로 빠지거나 문득

천길 벼랑 아래로 떨어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머리끝이 쭈뼛 설 때가 있다.

나이가 들었기 때문인가, 아니면 육체와 정신이 나약해졌기 때문인가?

분명하게 알 수 없지만 지금은 어딘가 빈,

그래서 내가 나를 다그치고 점검해야 할 그런 시절인 것만은 분명하다,

 

오늘 미소 짓는 꽃들은 내일이면 시들고,

우리가 머물기를 바라는 모든 것들은

유혹만 하고 날아가 버린다.

...........

시간이 살며시 흘러가는 동안

그대는 꿈꾸고 -잠에서

깨어나 운다.“

 

셸리는 이렇게 내 마음에 파문을 던지는데,

나는 그 노래에 빠져서 또 다른 우울의 노래를 찾는다.

 

운명이 우리 인간에게 남겨 준 것은

죽음이라는 선물 뿐,“

 

이탈리아의 작가인 지아코모 레오파르디는 이렇게 노래하며

나약한 내 정신을 가만히 들여다보게 한다.

하지만 더 쓸쓸하게 하는 것은 독일의 철학자인 쇼펜하우어의 글이다.

 

삶이란 밑지는 장사다. 보라, 이 세상의 존재들은

서로 먹어치우는 것으로 삶을 유지하는 불안과

결핍의 한정된 삶을 살아가며, 그것도 모자라 끔찍한 고통까지 겪고

종내는 죽음의 품에 안기지 않는가?“

 

아무리 발버둥 쳐도,

아무리 내가 많은 글을 쓰고

수많은 길을 걸어도 결국은 이 세상에 그 무엇 하나

남기고 갈 것 없는 허무 앞에,

과연 나는 무엇을 위해 꿈꾸고 살아가고 있는가 하는

그 허망함, 이것이 나의 오랜 우울일까?

아니면 내가 나 자신에게 느끼는 연민일까?

 

밤은 이렇게 새벽을 향해 흘러가는데,

나의 정신은 자꾸 명료해지고 명료해지기만 할 것인가?

......

아침 일찍 일어나 ?堧? 떠나야 하고,




우리가 걸었던 그 길들이 국가 명승名勝이 되다니?

우리가 걸었던 그 길들이 국가 명승名勝이 되다니?

 

꿈이 꿈으로 끝날 때가 있고,

꿈이 현실로 이루어질 때가 있다.

그것이 개인의 영달이나 이익에 관한 일일 수도 있고,

개인을 넘어 모든 사람들에게 이익과 희망을 주는 일일 때가 있는데,

이것은 내 개인에 관한 일이 아니고,

모든 사람, 아니 많은 사람들에게 이익과

즐거움을 주는 일이다.

 

그때가 2000년대 초였다.

아름다운 길이면서 역사가 있는 길을 걸을 때마다

이런 길을 문화재나 명승名勝으로 지정할 수는 없을까?’

그런 생각을 다른 사람들에게 말할라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안 될 것이라고.’

그래도 한 번 해보자 하고, 돈키호테처럼 2006년 가을

역가의 길을 문화재로 지정하자는 취지를 걸고 세미나를 개최했다.

그때 누군가 나에게 비아냥거리듯 말했다.선생님! 무슨 길이 문화재가 될 수 있습니까?”

그러나 그 세마나 개최 후 문화재청에서 연락이 왔다.

명승으로 지정해아 할 길을 선정해 달라.”

그 뒤 그 사람을 만나자 내게 말했다.

선생님 어떻게 그처럼 놀라운 발상을 했습니까?’

그때 나는 이렇게 답변했다.

악기하나 잘 쳐도, 노래 한 곡조 잘해도 문화재가 되는데,

오천 년 역사 속에 켜켜이 쌓인 길이 문화재가 못 되란 법 있습니까?“

그때 국가의 이름난 경치인 명승으로 지정된 길이,

문경새재, 죽령 옛길, 구룡령 옛길,

관갑천 잔도, 계립령이라고 불리는 하늘재,

그 길이 이 땅에 만들어진 오랜 세월이 지나 명승으로 새롭게 거듭났다.

 

그리고 다시 십여 년의 세월이 흐른 뒤

문화재청에서 유서 깊은 옛길을 명승으로 지정하겠다고 연락이 와서

서른 세 곳을 추천하여, 그 중 열 곳이 간추려져 심사 중이다.

그 중 명승으로 지정 될 수 있는 길이

무주 금강 벼룻길, 정읍과 장성을 잇는 갈재, 천안의 마일령,

그리고 낙동강 변에 자리 잡은 밀양의 작원 잔도棧道

(험한 벼랑에 선반처럼 달아낸 길).

우리 땅 걷기 도반들이 그렇게 많이 걸었던 길,

무릉도원 길이라고 불리는 그 길과 천안 목천에서 만일사로 넘어가는 고개

마일령이 250년이라는 시차를 두고 마일령,’ ‘만일고개

만일재,’ ‘만일사로 바뀐 그 사연을 안고 있는 그 고개

그리고 전남과 전북을 사이에 두고 역사 속에서 동학농민군이, 하멜이,

매월당 김시습이 넘었던 그 고개, 그리고

영남대로의 중요한 길목이었던 작원관 아래에 숨 쉬고 있던 작원 잔도,

그리고 진안 죽도와 몇 개의 길들이

명승으로 거듭 나기 위해 그 시간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저마다 마음속에 살아 있는 길이 있고, 숨어서 그 때를 기다리는 길이 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걸어가는 그 길도 저마다 새롭게 거듭나는 그 길을

기다리기?? 하고, 어떤 경우엔 기다리다가 순식간에 사라져 버리기도 한다.

 

,’ 혹은 시기時機라고 하는 그 때를 맞추고, 못 맞추고도

운명이다. 역사 속에 그 길들이 기다린 그 때가 지금일 것이고,

이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이 다 그 때를

의식하건, 의식하지 않건 기다리며 살아가고 있는 중이리라.

 

어느 때, 누가, 아니 어떤 사람들이 만들었는지도 모르는 그 길들을

사람들은 대를 이어 걸어가고, 또 걸어가면서

그 길이 많은 사람들의 희망이 되고, 그리움이 되는

그 나라가 되기를 갈망하는 마음,

오랜 시간을 길에서 보내고 파김치가 되어 돌아온 지금의,

내 마음이다.




사람들의 삶의 형태는 저마다 다르다.

사람들의 삶의 형태는 저마다 다르다.

 

많은 사람들이 내 걸음에 대해 이런저런 말들을 한다.

신기하다고, 어떻게 춤을 추듯, 술에 취한 사람처럼 걸을 수 있느냐고,

어떤 사람은 내 걸음을 두고 아무 힘도 들이지 않고 휘적휘적 걷는다고 말하는데,

정작 나는 내 걸음을 잘 모른다. 어쩌다가 티비 속의 나를 보고 어색해서

눈길을 돌리는 때가 더러 있다.

걸음걸이만 그런 것이 아니다. 내 삶 역시 타인의 삶과는 전혀 다르게 살고 있다는 사람들이 있다.

그렇다면 나 이외의 사람들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모두들 어기적거리며 걷고, 모두들 잉크 속에서 기침을 하며,

모두들 구두로 양탄자를 닳게 하고,

모두들 다른 사람들이 생각하는 걸 생각하며,

모두들 이웃이 아는 사람을 알고 있다.

오호라, 그들은 뭐라고 했을까?

그들의 카툴루스가 그런 식으로 걸었다면?“

영국의 시인 예이츠의 <학자들>이라는 시다.

 

저마다 공부하는 영역이 다르고, 저마다 살아가는 방식이 다른 사람들이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이렇게 저렇게 살고, 싸우고, 사랑하고, 미워하고

그리고 가끔씩 증오도 하지만, 인간의 삶은 일정한 공식이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일부 사람들은 능수능란하게 삶을 살아가지만

일부사람들은 항상 서툴고, 어설프고, 그래서 항상 상처와 후회가

뒤범벅된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지금의 내가 그렇고, 지금의 이 시절도 그렇다.

풍수에서 말하는 온전히 아름다운 땅이란 없다.“라는 명제처럼 삶이 항상

순간 속에 결정되기 때문에, 삶이 어려운 것이다.

 

가을에 떠나는 광양도서관의 섬진강 강연과 기행에서 나는

어떤 이야기를 풀어놓고, 어떤 풍경에 마음을 풀어놓을 것인가?

 

가을 강을 따라 걸으며 강물에게 물어봐야겠다.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인가?”

 

20181020일 토요일,


진안 죽도와 신기마을의 당산,

그리고 오나주 소양으로 넘어가는 곰타재




우리들 모두는 바쁘게 일만 하다가 죽어간다

우리들 모두는 바쁘게 일만 하다가 죽어간다

 

넓은 저자거리 관통하는 큰길 네거리에 오가는 사람들

모조리 떠들썩 분주히 북적거리며 손길이 바쁘고,

발걸음이 어지러운 것을 보나니,

, 이 어찌 슬프지 아니한가?

(通衢廣市,看來往人擾擾紛紛,手忙足亂,豈不哀哉)

황균재의 <술애정>에 실린 글이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을 향해서 한 얘기지만

유독 나의 삶을 책망하는 글 것 같아서 마음이 좀 그렇다.

매일 떠났다가 돌아오고, 다시 떠나는 삶,

떠날 데가 있고, 돌아올 데가 있는 것, 그것이 다행스런 일인가,

아닌가는 좀 더 살아봐야 알 일일이다.

하지만, 가끔씩은 이보다 더 나은 일이 있을까 싶기도 하고,

어떤 때는 이렇게 사는 것조차 다람쥐 체 바퀴 돌리듯 사는 것 같아

마음이 허전할 때가 있다.

 

한 번 태어나서 한 번 밖에 더 못사는 삶,

누가 대신할 수도 없고, 미룰 수도, 그렇다고 더 빨리 살 수도 없는

이 삶을 두고 에피쿠로스는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우리는 단 한 번 이 세상에 태어나며 두 번 태어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리고 우리는 그 다음에 영원한 시간을 통틀어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된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당신은 항상 제 때를 놓치고 일을 뒤로 미루며,

단 한 번도 미래의 주인이 되지는 못한다.

주저하는 동안 삶은 흘러가버리고 ,

우리들 모두는 바쁘게 일만 하다가 죽어간다.”

 

지당하고 또 지당한 말이다.

주저하기도 하고, 바쁘지도 않으면서 바쁜 척하다가 보내는 세월,

그 세월이 지나가 버린 뒤에야 가버렸다는 것을 알게 되는

그 세월이 바람이 문틈을 지나가듯 지나가고 있다. 그런데

그 흐르는 세월을 초롱초롱하게 눈을 뜨고도

그냥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을 때가 많은 것은

 

세월 탓인가, 마음이 무뎌진 탓인가.

 

한 발짝 물러서서 살아라.“

에피쿠로스가 말했는데,

숨이 차도록 바쁘게 살 것이 아니라,

조금은 멀리서 관조하듯 살아야

내 삶의 전모가 잘 보이지 않을까?




내 운명은 순탄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역시 운명이리라.

내 운명은 순탄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역시 운명이리라.

 

언덕 펀펀하고 먼 나무가 그럴듯한데, 희미하게 인가에 접해 있구나.

땅 기름져 밭에서는 차조를 거두고, 산이 낮아 차()를 공물 한다오.

갈재에는 구름이 암담한데, 능악(?岳) 묏부리가 뾰족하구나.

강호의 경치를 수습하고서 올라가니 해가 반쯤 기울었더라.“

 

조선시대 전기의 빼어난 문장가인 매월당 김시습(金時習)

갈재 아래 천원역을 지나다 누각에 올라서 쓴 시로

매월당집(梅月堂集)에 실려 있다.

바람도 쉬어가고, 구름도 쉬어 가던 갈재가. 자동차 길이 생기고,

고속도로 터널이 뚫리면서 세월 속에 사라져 가던 갈재가

우리나라 옛길의 모습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길로 알려져서 명승으로 지정될 것 같다.

그 길을 어떻게 보존하고, 사람들에게 알릴 것인가를 논의 하기 위해

정읍시장님을 만나러 가기 전에 몇 가지의 프로그램을 준비했다.

1, 명승지로 지정되면 전남 장성과 함께 갈재 축제를 열자

동학농민군이 기세 좋게 올라가던 행렬 재현,

하멜이 올라가던 행렬, 과거보러 가던 선비재현, 보부상 재현 등,

매월당 김시습과 갈재를 노래한 옛 시인들의 시비를 세워서

갈재의 아름다운 길을 많은 사람들이 걷게 하자.

2, 동학을 통해 동서화합으로 동학을 창시한 최제우의 고향 경북 경주시와 동학이 활짝 피어난 정읍시가 자매결연을 맺어 동학문화제와 고운제를 열자,

신라 말의 대학자인 고운 최치원의 고향이 경주시인데, 최치원이 살았던 정읍 태인에 최치원을 모신 무성서원이 있다. 동학과 최치원의 유사점이 있는 경주와 정읍이 자매결연을 맺어 서로 상생하면 좋을 것이다.

동학농민혁명으로만 접근하지 말고, 동학과 서양의 기독교 사상을 연구하며 동학사상을 재조명 하면 동학의 파급력이 커질 것이다.

3, 나라 안의 많은 자치단체들의 직원들이 독서모임을 통해 독서기행 역사기행을 하는데, 정읍시청직원들과 시민들이 동학 전적지 답사를 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동학이 일어난 경주와 경북 일대, 정읍과 고창 일대, 논산과 공주 일대, 남원과 구례, 하동 광양 일대를 그 대상으로 하고, 그 외 문학이나 역사의 현장을 답사하는 것도 바람직할 것이다.

4, 동학인문학당을 열고 동학 인문학 도서관 개설,

정읍시에서 동학과 우리 민족사상에 대한 공부를 하고 강연을 하는 강좌를 개설하여 우리민족의 중심사상을 널리 펴는 메카가 되었으면 한다.“

5, 동학농민혁명의 근원을 따라가다가 보면 기축옥사에 이른다. 기축옥사 이후 호남지역의 사대부들은 벼슬길이 막히게 되었고, 다른 지역 사람들이 벼슬아치로 와서 마음 놓고 탐학을 일삼았다. 그 결과 참다 참다 못 참은 농민군들이 결사항전으로 일어난 것이 1894년의 동학농민혁명이다.

기축옥사에서 동학농민혁명으로 이어진 민족사의 아픔과 상처를 오늘의 시대에 재조명하여, 새로운 의식혁명을 이루어야 할 것이다.‘

 

이런 취지로 설명했는데, 시장님과 관계자들로부터 긍정적인 답변을 들었다. 하지만

내 의견이 실행이 될지 안 될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항상 그랬다. 나는 꿈과 같은 생각만 하고, 그 꿈과 같은 생각이 나라나, 자치단체의 사업으로 확정되는 경우가 더러 있었지만 들리는 후문은 나를 가끔 우울하게 만드는 말들이었다.

 

내놓을 경력도, 학력도, 비빌 언덕도 없는 나에게 들리는 부정적인 소문은 무성했고, 내가 꿈꾸는 꿈은 항상 바람 앞에 등불이었다. 그래서 종국엔 내 순탄하지 않은 삶처럼 상처로 돌아오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도 내 운명이지, 그 정해진 운명을 어쩌겠는가. 감수 하고 사랑해야지, 그래서 꿈만 꾸고, 그 꿈이 가끔씩 물거품처럼 사라질지라도 내가 꿈꾸는 그 일을 포기해선 안 되지,

하면서 나아가는 그 길, 그 길이 언제쯤 평온해질 것인지,

이만큼이면 되었다하고 만족할 그 날이 내 생애에 있기나 할까?




마음이 백짓장같이, 아니 박주가리씨보다도 더 가벼워질 때,

마음이 백짓장같이, 아니 박주가리씨보다도 더 가벼워질 때,

 

세상의 모든 것들은 저마다 다른 특성을 지니고 태어난다.

우선 저마다 생김생김이 다르고, 성격이 다르고,

그리고 선호하는 것도 다르다.

나는 콜라나 단 음료를 좋아하면서 커피도 믹스커피를 좋아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녹차나 블랙커피를 좋아하듯이 말이다.

나는 걷는 것만 선호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산을 오르기 좋아하고,

골프만 좋아하듯,

 

저마다 그 나름대로의 특성을 지니고 살다가 사라지는 것이

세상의 온갖 사물들의 이치일 것이다.

그런 여러 형태의 사람들과 사물들에게 오랜 사숙인 장자님이 나직하게 속삭인다.

 

자네에게 묻겠네. 사람이 습지에서 자면,

허리가 아프고 반신불수가 되겠지. 미꾸라지도 그럴까?

사람이 나무 위에서 산다면 겁이 나서 떨어질 수밖에 없을 것일세.

원숭이도 그럴까? 이 셋 중에서 어느 쪽이 거처에 대해 바르게 안 것일까?

사람은 고기를 먹고, 사슴은 풀을 먹고, 지네는 뱀을 달게 먹고,

올빼미는 쥐를 좋다고 먹지,

이 넷 중에서 어느 쪽에 맛을 바로 안다고 할 수 있겠는가?

원숭이는 비슷한 원숭이와 짝을 맺고, 순록은 사슴과 사귀고,

미꾸라지는 물고기와 놀지 않는가?

모장毛?이나 여희麗姬는 남자들이 모두 아름답다고 하지만,

물고기는 보자마자 물속 깊이 들어가 숨고,

새는 보자마자 높이 날아가 버리고, 사슴은 보자마자 급히 도망가 버린다.

이 넷 중에서 어느 쪽이 아름다움을 바르게 안다고 하겠는가?

내가 보기에 인의仁義의 시작이나 시비是非의 길 따위의 것은

결국 이처럼 주관적 판단 기준에 따라 걷잡을 수 없이 번잡하고

혼란한 데, 내 어찌 이런 것이나 따지고 앉아 있겠는가?“

<장자>사람과 미꾸라지라는 글이다.

 

인간이 이 세상에서 살면서 깨달았다는 것들이

어느 순간 아무 것도 아닌 것이라는 것을 알 때,

그렇게 철석같이 믿었던 사상이나 삶의 기준이 모래성처럼 무너질 때

그 때는 천지가 개벽하는 것만큼이나 마음의 지축이 흔들리지만,

잠시 나를 돌아다보고, 세상의 한갓진 풍경을 보고 있다가 보면

어느 사이, 그 모든 것이 나 혼자만의 생각이었음을 깨닫고,

슬그머니 얼굴에 미소가 피어오르는 그런 때가 있다.

 

인생이 별 것 같지만 별 것 아닌 것,

그것을 깨달을 때 그 때가 가장 마음이 가뿐한 시간이다.

이상의 시 <날개>와 같이 마음 가볍게 아니, 백짓장같이, 아니

박주가리씨보다도 더 가벼워져서 이 세상 어디까지라도 날아갈 듯한

순간그런 때가 어쩌다 가끔씩 있다.

꽉 막힌, 아니 닫힌 세상에서 탈출하고, 더 높은 곳을 향해서 비상하는 그 시간,

그런 때에 글이 술술 써지고, 말이 속사포처럼 터져 나오는 것이다.

아무리 힘든 길을 걸어도 다리가 아프지 않고,

생각들이 이리저리 흩어지면서도 한 군데 모아지는 그 순간,

나는 그 순간들을 지금도 기다리고 있다.

 

올지, 어쩌면 안 올지도 모르는 그 순간을,

아침에서 저녁까지, 저녁에서 아침까지

하루가 가고, 열흘이, 한 달이, 일 년, 이년, 그 세월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