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아름다운 남강 두번째 여정을 걷는다.
-산청에서 진주까지-
남강 두 번째 여정이 이월 둘째 주인 10일(금)에서 12일까지 산청과 진주 부근을 걷게 됩니다. 남강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구간인 경호강 부근을 걷게 될 이번 여정은 산청군 생초면 대궁리에서 신안면, 단성면을 거쳐 진주시 귀곡동의 남강냄까지 이어질 것입니다. 구절양장이라는 표현이 가장 잘 들어맞을 이번 여정은 남강의 진수를 보여주는 길이 될 것입니다. 봄의 길목에서 걷게 될 이번여정에 많은 참여 바랍니다.
“경호강을 건너 문익점의 면화 시배지인 단성과 우리나라에서 돌담길이 가장 아름답다는 단성 남사리를 품고 있는 고을이 바로 지리산 자락에 자리 잡은 산청군이다.
신라 때 이름이 지품천현知品川顯인 이곳이 산음山陰으로 바꾸어 궐성군에 예속 시킨 것은 경덕왕 때였다. 영조 43년인 1767년에 지금의 이름인 산청山淸으로 바뀌었다.
“물이 굽이치고 산이 감돌아서 네 마을을 이웃했다.”라고 김희경金希鏡이 묘사한 산청을 두고 “산음은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가운에 자리하고 있어, 그 땅은 좁고 후미지며, 백성들은 꾸밈없이 소박하다.” 고 하였는데, 단성면의 소재지인 성내리에는 5일과 10일에 장이 섰다. 그곳에 사는 사람들도 동헌터 서쪽에 있던 강가새미라는 샘이나 관아의 밭이었던 관죽전官竹田, 그리고 군기를 넣어두던 창고인 군기고 터가 어디인지 알지 못하는 채로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그러나 그 사라져 버린 것을 아쉬워하듯 남사리엔 고즈넉한 옛 집들이 여러 채가 남아 있다."
이곳 산청에서 태어난 인물이 현대 불교의 큰 스늠이엇던 성철스님이다.
1911년에 산청군 단성면 묵곡리에서 태어나 스물네 살에 해인사로 들어와 중이 된 그의 속명(俗名)은 이영주(李英柱)이다. 출가한 지 5년째 되는 해부터 솔잎가루와 쌀가루만을 먹으며 공부에 몰두하여 마침내 삼십대 중반부터는 대구 팔공산에 있는 파계사(把溪寺)로 들어가 자신의 거처 주위에 철조망을 치고 여덟 해 동안 장좌불와(長座不臥), 곧 눕지도 자지도 않고 앉은 채로 참선을 하였다. 그가 백련암으로 돌아온 때는 그처럼 맹렬히 정진을 거듭한 끝에 이른바 도를 깨우쳐 ‘큰스님’으로 발돋움한 뒤인 60년대 중반이다. 성철은 암자에 거처를 정한 뒤로도 줄곧 소금을 전혀 넣지 않은 음식을 먹으며 엄격한 수행을 계속하였다.
성철스님이 조계종의 종정에 추대되자 대중매체들이 신비롭기까지 한 그의 수도생활을 다투어 소개하며 그가 이번에야말로 백련암을 떠나 ‘저자’에 모습을 나타낼 것이라고 짐작했다. 그러나 그는 서울의 조계사에서 있었던 종정 취임식에도 나가지 않고 백련암에서 적은 짧은 법어를 사람을 시켜 그 자리에 전했다. “보고 듣는 이밖에 진리가 따로 없으니 사회 대중은 알겠느냐?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 이렇게 끝맺음한 그 말의 깊은 뜻은 알 수 없다. 하지만 성철스님이 1천 년 동안에 걸쳐 해인사가 배출해 낸 여러 고승들의 맥을 이어받은 것은 분명하다.
?택리지?에 “진주는 지리산 동쪽에 있는 큰 고을이며, 장수와 정승이 될 만한 인재가 많이 배출되었다. 이곳은 토지가 기름지고 강과 산의 경치가 좋기 때문에 사대부는 넉넉한 살림을 자랑하고, 제택(第宅)과 정자 꾸미기를 좋아하여, 비록 벼슬은 못했으나 한유(閑遊)하는 공자(公子)라는 명칭이 있다”라고 기록되어 있는 진주는, 본래 백제의 거열성(居列城) 또는 거타(居墮)라고 불렸고, 신라 문무왕 때에 주를 설치하였으며 조선 태종 때에 지금의 명칭으로 고쳐서 목으로 만들었다.
영남 제일 경치 진주
지리지(地理志-)에 “습속이 시서(詩書)를 숭상하고, 부유(富裕)하고 화려함을 숭상한다”고 하였고, 이인지(李仁志)는 ?파한집(坡閑集)?에 “진양의 시내와 산의 훌륭한 경치가 영남에서 제일이다” 하였다. 어떤 사람은 진양을 평하기를 “진양은 동방의 육해(陸海)이다. 수산과 토산으로서 해마다 나라에 공을 바치는 것이 영남 여러 주의 반이다” 하였을 만큼 물산이 풍부했다.
하륜은 그가 지은 「봉명루기(鳳鳴樓記)」에, “비봉산이 북쪽에서 멈췄고, 망진산이 남쪽에서 읍한다. 긴 강이 그 사이에 흐르는데 동쪽과 서쪽 여러 산이 구불구불 사방을 둘렀다” 하였다. 진주의 진산인 비봉산은 진주시 상봉 등과 계동에 걸쳐 있는 산으로 높이는 130미터이다.
진주의 진주성은 촉성성(矗石城)이라고도 불리며, 그 성에 촉석루(矗石樓)가 있다. <여지도서>에 “ 촉석루 촉석성 안에 있다. 아래로 긴 강이 흐르고 강 위에 큰 바위가 말뚝을 포갠 듯이 우뚝 솟아 있는데, 그 위에 누각을 지었으므로 ‘촉석루’라고 이름 하였다. 큰 평야가 멀리까지 펼쳐지고 강물은 잡아당기듯 띠를 두르고 흐르며 뭇 산봉우리들이 두 손을 마주잡고 절하는 듯한 자세를 취하고 있다. 깎아지른 듯한 암벽이 서남쪽을 두 동강내고 언덕의 대나무와 물가의 난초가 좌우로 그늘을 드리우며, 물새는 날개 짓 하며 울고 돛단배가 드나드니 참으로 으뜸가는 아름다운 경치이다.” 라고 실려 있는 촉석루의 이름을 두고 담암淡菴 백문보白文寶는 “강 가운데 뾰족뾰족한 돌이 있기 때문에 누각 이름을 촉석루라고 한다.”라고 하였다. 남원 광한루. 밀양 영남루와 함께 우리나라 3대 누각으로 알려져 있는 이 누각은 청면 5칸 측면 4칸의 큰 규모이며 기둥과 기둥 사이에 놓인 화반의 무늬가 아름답다. 촉석루에서 바라보는 남강의 운치도 빼어나지만 촉석루 건너에서 바라다보는 경치가 일품인 이 누각은 고려 32대 임금인 우왕 3년에 쌓았으며, 일곱 번의 중수를 거쳤는데, 현재 건물은 한국 전쟁 당시 완전히 파괴되었던 것을 1959년에 원래의 모습대로 복원한 것이다. 진주성의 남장대南將臺 또는 장원루壯元樓라고도 부르는 촉석루는 여러 형태로 쓰였던 누각이다. 전쟁 시에는 지휘본부로 활용되었고, 평화로운 때에는 과거를 치르는 시험장으로도 쓰였다. 조위曺偉는 촉석루 아래를 흐르는 남강을 두고 <촉석강矗石江>이라는 시를 지었다.
누각 아래에는 백 길의 맑은 강
거울 같은 물결 위 가로지르는 고운 배.
햇살은 모든 잡에 드리운 발 그림자 흔들고
바람 따라 피리소리가 십리 밖을 들여오네.
절벽엔 아른아른 산 아지랑이 피어오르고.
물결이 일렁거려 높다란 성을 움직이네.
가까운 속세의 길에 머리를 돌리나니,
가벼이 뜬 한 마리 갈매기 부러워라.
이 촉석루는 임진왜란 3대 대첩 중의 하나인 진주성 싸움의 현장이다.
<신정일의 신 택리지. 경상도>
1.일시: 2012년 2월 10일(금요일) 밤 8시 서울 양재역 12번 출구 12일(일)까지
전주는 종합경기장 밤 열시 30분 출발.
서울과 전주 합 90명
2,어디로 모이나요: 서울 양재역 12번 출구, 전주는 종합경기장 정문 앞
3, 참가비 120,000원.
4, 행사구간 :생초면 대궁리. 오부면, 산청읍, 단성면 성철스님 생가. 남강댐까지 50km
5. 안내 도반: 신정일(신 택리지 경상도. 낙동강의 저자)
6,참가비는 (국민은행 754801-01-479097 사단법인 우리땅 걷기 )로 참가비 입금
7,처음 참가자는 주민번호를 (010. 0000. 0000. 문자) 우리 땅 걷기 전화(010. 9144. 2564)로 알려 주십시오.
참가 신청 입금 후 취소 시 환불 규정
1, 행사일로 부터 5일전 까지 취소 시: 은행 수수료를 공제 후 전액 환불합니다.
2, 행사일 4일전부터 2일전까지 : 참가비 50%를 공제후 환불 합니다.
3, 행사일 2일전부터 당일까지 취소 시(미 참가 포함); 환불액 없습니다.
위와 같이 행사 참여 취소 시 행사비 환불을 명심하시어 불필요한 낭비를 줄이시기를 바랍니다.
또한 회비를 입금하시고 대기자로 기다리셨다가 참여를 못하시는 회원님들의 불편함을 없게
하고자 함이오니 이해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주의사항:
1. 우리 땅 걷기에서는 단체 여행자보험을 들고 있습니다.
2. 하지만 모든 걷기의 안전에 대해서는 참석자 본인이 책임을 지셔야 합니다.
(카페나 진행자는 안전사고에 대하여 어떠한 책임도 지지 않습니다.)
보시고 꼭 필요할 때에만 연락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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