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천 비인만의 마량리에서 해맞이를 하고 백제의 고도 부여를 걷는다.
2013년 계사년과 2014년 갑오년이 교차하는 2014년 1월 1일 아침 0시 5분에 서해에서 해돋이를 보기 위해 출발합니다. 서천군 서면 마량리의 비인만의해돋이 마을 바닷가에서 한반도 서천에서 솟아오르는 갑오년의 해를 바라 볼 것입니다. 서천 비인의 오층석탑을 답사 한 뒤, 부여군 홍산면의 관아를 답사 한 뒤 부여로 가서 사라져 간 백제 왕국의 마지막 수도였던 부여를 걸을 예정입니다. 궁남지에서 부소산에 이르는 길을 걸으며 백제왕국의 찬란했던 문화와 영욕의 현장을 답사할 것입니다.
“한편 비인만의 맨 끝자락에 천 오백년 전에 세웠던 정자인 동백정이 여러 번의 변천과정을 이어오며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이곳 마량리에는 마량진터가 있는데 원래 남포에 있던 것을 효종 7년인 1656년에 이곳으로 옮겼다, 첨사가 1사람, 싸움배 1척, 방비를 하는 배가, 1척 짐배가 1척 기다림 배가 3척이 있었다.
마량포구를 감싸고 있는 해안 언덕에 500여년 동백나무 80여 그루가 있는 동백 숲이 있고
동백정에 올라 바다를 보면 바위에 부서지는 파도와 조그만 무인도가 하나 눈에 들어온다. 동백정에서 바라보는 겨울바다는 나름대로 운치가 있어 겨울인데도 찾는 사람이 많다.
동백나무는 남해안에 자생하는 난대성 상록활엽수인데 군락을 이루게 된 내력이 재미있다.
500여년 전 마량의 수군첨사가 꿈에 바닷가에 있는 꽃뭉치를 많이 증식시키면 마을에 항상 웃음꽃이 피고 번영할 것이라는 계시를 받고 바닷가에 가보니 동백이 있어 그것을 증식하여 심었더니 이렇게 멋진 동백나무 숲을 이루고 동네에 웃음꽃이 피게 되었다고 전해져 온다.
서쪽은 추워서 동백나무가 거의 없고 동쪽사면으로 주로 남아 방풍림 구실을 하고 있다.
마량리 포구는 한국 최초의 성경 전래지가 있고, 월남 이상재 선생의 고향이기도 하다.
지금의 정자는 1965년 한산군청의 옛 누각을 뜯어다 지은 것이라고 한다.“
백제의 세 번째 서울 부여
이중환이 “은진의 동쪽에 사제천이 있어 동남쪽으로 고산(현재의 전북 완주군)․진산 경계로 통한다. 80리나 되는 긴 골짜기의 냇물과 땅에 모두 나쁜 기운이 깃들어 있기 때문에 살 곳이 못 된다”라고 말한 냇물은 논산천이고 이곳 논산시 연산면에서 19세기 후반 후천의 역(易)인 정역(正易)을 정립한 일부(一夫) 김항(金恒)이 살다가 갔다. ?택리지?는 이어서 “공주의 서남쪽이 부여인데, 백마강(지금의 금강)가이며 백제의 옛 도읍터이다. 조룡대(釣龍臺)․낙화암(落花巖)․자온대(自溫臺)․고란사(皐蘭寺)는 모두 백제 시대의 고적이며, 강변에 맞닿은 암벽이 기묘하고 경치가 매우 훌륭하다. 또 땅이 기름져서 부유한 자가 많으나, 도읍터로 논한다면 판국이 좀 작고 좁아서 평양․경주보다는 훨씬 못하다”고 기록하였다.
위례성과 웅진에 이어 백제가 마지막으로 도읍지를 옮긴 곳이 사비성, 곧 부여이다. 옛 이름이 소부리군(所夫里郡), , 반월半月, 여주餘州라고도 불렀던 부여는 122년에 걸쳐 백제의 흥망성쇠를 지켜보았다.
신라와 당나라의 연합군에게 백제가 망한 것은 31대 의자왕, 660년 7월이었다.
“날이 부우옇게 밝았다”는 말에서 나온 부여는 아침의 땅이었다. 그러나 그 조용했던 아침의 평온은 나당연합군의 침략으로 산산이 깨어졌다. 「동국여지승람」은 당시의 모습을 “집들이 부서지고 시체가 우거진 듯하였다”라고 기록하고 있으며, 이때 삼천궁녀들이 낙화암에서 몸을 던졌다.
정림사지의 백제탑을 보라. 5층석탑의 기단부에 ‘대당평제탑(大唐平齊塔)’이라는 글자가 화인(火印)처럼 찍혀 천몇백 년의 세월을 견디었다. 사람들은 가끔씩 옛 추억을 찾아가듯 부여에 갔다. 부소산 낙화암에 올라 요절한 가수 배호가 불렀던 ‘추억의 백마강’을 불러제끼는 것으로 잃어버린 왕국을 생각했다.
백마강 달밤에 물새가 울어
잃어버린 옛날이 애달프구나.
저어라 사공아, 일엽편주 두둥실
낙화암 그늘 아래 울어나 보자.
사람들은 그 노래 한마디를 부르며 잃어버린 백제왕국을 되찾는 착각에 빠져 이 나라의 노래방에선 밤마다 슬픔도 없이 구곡간장(九曲肝腸)이 알알이 찢어져간다.
조선 숙종 때 사람 석벽(石壁) 홍춘경(洪春卿)은 그 시절을 이렇게 회고했다.
나라가 망하니 산하도 옛 모습을 잃었고나
홀로 강에 멈추듯 비치는 저 달은 몇 번이나 차고 또 이즈러졌을고
낙화암 언덕엔 꽃이 피어 있거니
비바람도 그 해에 불어 다하지 못했구나.
이 같은 역사를 지닌 부여에서 내세우는 부여팔경(扶餘八景)은 어떠한가. 양양 낙산사․삼척 죽서루 같은 관동팔경이나 도담삼봉․사인암 같은 단양팔경에서 내세우는 아름다운 광경이나 경치와는 이름부터가 틀리다. 미륵보살상과 탑 하나 덜렁 남은 정림사지에서 바라보는 백제탑의 저녁 노을과 수북정에서 바라보는 백마강가의 아지랑이, 저녁 고란사에서 들리는 은은한 풍경소리, 노을진 부소산에 간간이 뿌리는 가랑비, 낙화암에서 애처로이 우는 소쩍새, 백마강에 고요히 잠긴 달, 구룡평야에 내려앉은 기러기 떼, 규암나루에 들어오는 외로운 돛단배.
부여팔경은 부소산과 낙화암 그리고 그 아래를 흐르는 백마강을 중심으로 해서 이루어진 경치이다. 거기에 신동엽(申東曄) 시인이 썼던 「금강잡기(錦江雜記)」에 이르면 백마강과 부여 땅에 스민 슬픔이 얼마나 아름다운가를 깨닫게 된다.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신정일의 <새로 쓰는 택리지> 충청도 편에서
가는 한 해와 오는 한 해를 정리하고 설계하면서 비인만의 마량리에서 해돋이를 하고 백제의 마지막 수도를 답사하며 새로운 출발을 하실 분들의 참여를 바랍니다.
일시: 2014년 1월 1일(수요일) 이른 0시 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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