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법인 우리땅 걷기 /신정일 대표님 자료 모음

설악산 자락의 고을 속초와 고성의 바닷가 길을 걷는다.

산중산담 2013. 11. 29. 20:37

설악산 자락의 고을 속초와 고성의 바닷가 길을 걷는다.

 

계사년 십이월의 마지막 주인 12월 27일에서 29일까지 동해안의 끝자락에 있는 속초와 고성일대를 찾아갑니다.

설악산 자락의 고을인 속초시에 자리 잡은 두 개의 호수인 청초호와 영랑호, 그리고 청간정과 천학정, 거진에서 화진포에 이르는 아름다운 해파랑 길을 걷고 겨울에 덮힌 건봉사를 찾아갈 예정입니다.

겨울 바다에서 한해를 마무리 하며 새로운 계획을 세우는 시간이 될 이번 기행에 참여를 바랍니다.

“길흉을 점치던 청초호

속초시 청호변에 자리 잡은 청호동이다. 청초호는 둘레가 5km에 이르는 규모에 술 단지모양을 하고 있는 큰 호수이다. 호수 어귀가 동해 바다에 잇대어 있어 조선시대 수군 만호영을 두었던 곳으로 병선을 정박하기도 하였다. 이중환은 낙산사 대신 경치가 빼어난 이곳을 관동팔경으로 꼽기도 하였다. 겨울이 되면 호수가 얼어붙는데, 얼음이 마치 갈아 놓은 논두렁 모양을 하고 있어, 마을 사람들은 그 모습을 용갈이 또는 용정이라 부르며 얼음이 어는 형상을 보고 다음 해 길흉까지 예측해보기도 하였다고 한다.

 

청초호는 500톤 급 선박들이 자유롭게 입출항 할 수 있는 내항으로 태풍 혹은 해일이 닥칠 때면 어선들이 대피하는 정박지로도 이용되고 있다.

속초에는 청초호 이외에도 36만평 면적에 둘레가 7.8킬로미터, 수심 8.5미터에 이르는 석호, 영랑호가 있다. ‘영랑호는 군 남쪽 55리에 있다. 주위가 30여리인데 물가가 굽이쳐 돌아오고 암석이 기괴하다. 호수 동쪽 작은 봉우리가 절반쯤 호수 가운데로 들어갔는데 옛 정자 터가 있으니 영랑 신선 무리의 구경하던 곳이다.’고 『신증동국여지승람』 ‘간성군’ 조에 실려 있다.

 

속초는 풍광이 아름다운 작은 포구였다. 그랬던 마을이 한국전쟁 이후 인구가 비약적으로 늘어났다. “눈보라가 휘날리는 바람찬 흥남부두에”라는 노랫가락에서 언급되는 지역에서 이루어졌던 군사작전, 일명 ‘흥남 철수 작전’으로 미군 함정을 타고 부산으로 내려가 피난살이를 하던 사람들이 자신들의 고향인 함경도와 인접한 이곳 속초로 몰려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속초는 실향민들이 만들어낸 모습이 많은 지역이다. 특히 고향을 그리워하는 아바이마을이 더욱 그렇다.

 

아바이마을, 한류열풍을 일으킨 겨울동화의 무대

아바이마을이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진 것은 드라마 <겨울동화>를 통해서이다. 마을 전체가 드라마 세트장이 되었던 그곳에는 ‘은서네 집’이 되었던 수퍼마켓이 여전히 남아 있고 음식점마다 은서역을 맡았던 송혜교 사진을 걸어두고 있다.

영랑호, 그 풍취에 화랑 영랑이 매혹되다

설악산에서 바라보면 바다를 사이에 두고 두 개의 호수, 청초호와 영랑호가 보인다. 둘레가 30리쯤 되는 사진리 영랑호永郞湖, 호숫가에 기암괴석이 많고 호수 가운데로 솟은 작은 봉우리 위에 옛 정자 터가 있다. 이곳 풍광이 얼마나 빼어났던지 신라 시대 무술대회를 치르기 위해 길을 나선 영랑·술랑·남랑·안상 네 화랑이 이곳 호수를 지나게 되었을 때, 화랑 영랑이 호수의 풍취에 매혹되어 무술대회 참가조차 잊을 정도였다고 한다. 전설을 입증이라도 하듯이 이곳을 찾았던 옛 선인들이 수많은 글을 남겼다.

그 가운데 고려 때 문장가 안축의 글을 본다.

 

“평평한 호수 거울인 양 맑은데, 푸른 물결 엉기어 흐르지 않네.

놀잇배를 가는 대로 놓아두니, 둥실둥실 떠서 나는 갈매기 따라가네.

호연하게 맑은 흥 발동하니, 물결 거슬러 깊고 그윽한 데로 들어가네.

붉은 벼랑은 푸른 돌을 안았고, 옥동은 경주를 감추었네.

산을 따라 소나무 아래 배 대이니, 하늘은 푸르고 서늘한 기운 이제 가을이네.

연잎을 맑아서 씻은 것 같고, 순채 실은 미끄럽고도 부드럽네.

저물녘에 배를 돌리려 하니, 풍연이 천고의 수심일세.

옛 신선 다시 올 수 있다면, 여기서 그를 따라 놀리라.

저문 구름 반쯤 걷으니 산은 그림 같고, 가을비가 새로 개이니 물결 절로 생기네.

이곳에 거듭 올 것을 기필할 수 없으니, 배 위의 노래 한 곡조 다시 듣노라.”

우는 모래, 명사(鳴沙). 이곳 고성과 간성 바닷가 일대의 모래를 부르는 말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 기록이다.

“명사 고을 남쪽 18리 에 있다. 모래 색이 눈 같고, 사람과 말이 지날 때면 부딪쳐 나는 소리가 쟁쟁하여 마치 쇠 소리 같다. 영동지방 바닷가 모래들이 모두 그러하지만 그 중에도 간성․고성 사이에 제일 많다.”

 

노랗게 무리지어 피어난 금계국으로 채워 진 제방둑에 누구라고 할 것 없이 모두의 입에서 경탄이 새어나온다. 보폭을 줄이고 걸음을 늦추며 잠시 꽃에 매혹된 이 순간을 아껴 걷는다. 천진천을 너머 발 끝에 그림처럼 청간정이 걸린다.

 

하염없이 바다를 바라보게 하는 청간정

 

고려 때 문장가 김극기는 청간정 근처 청간역을 시로 노래하였다.

“높은 다락이 푸른 연기 낀 나무 끝에 있는데, 난간에 엎드려 나는 새를 엿보네. 가을도 되기 전에 서늘한 기운 많고, 여름철에도 더위는 적다네. 매미소리는 늦은 바람에 부서지고, 갈 가마귀 그림자는 저녁 햇빛에 번득이네. 술잔 들며 흰 눈으로 바라보니, 만 리에 푸른 하늘이 작구나. 관동은 산수의 고장인데, 지나는 나그네 어조와 함께 섞이네. 돌아가는 길사람 마음과도 같아 험한 가운데 평지가 적구나. 석양은 말머리에 떨어지는데, 서쪽 변방엔 달이 처음으로 비치네. 곤하여 침상 위에 거꾸러지니, 태산이 가을철의 털과 같이 작게 보이네.”

 

안축도 “중첩한 멧부리 사면으로 둘러싸여 지경이 그윽한데, 세월이 오래니 소나무 비늘 백 자나 길구나. 큰 관도에 나무가 깊으니 바람은 원집에 가득하고, 바닷물에 안개가 개이니 물은 다락에 밝구나. 비 오는 날 도롱이 삿갓 쓰고 고깃배 타기 평생의 기약인데, 티끌 묻은 옷으로 길 가는 행장은 조만간 그만두려네. 만일 성 남쪽 경호의 달을 준다면, 예전 살던 곳이라고 하필 이 고을을 그리워할 것이랴.”라고 노래하였다.

 

이달충(李達衷)은 “바다를 구경하러 와서 만경대에 오르니, 구름 안개에 쌓인 물결이 하늘에 닿아 들어오네. 만일 이 물이 봄 술로 변한다면, 어찌 하루에 3백 잔을 마시는 데만 그치리,”라는 시로 풍류를 드러냈다.

 

문장가들이 앞 다투어 시로 칭송하며 풍류객의 면모를 드러내던 이곳 풍광을 『연려실기술』 ‘지리전고’ 편 기록을 읽어 옛 모습을 상상해본다.

‘간성 청간정(淸間亭)은 군에서 남쪽 40리에 있다. 수십 길이 높이로 우뚝 솟은 석봉은 층층이 대와 같다. 위로 용트림을 한 소나무 몇 그루가 있다. 대 동쪽으로 만경루가 있으며, 대 아래로 돌들이 어지럽게 불쑥불쑥 바다에 꽂혀 있다. 놀란 파도가 함부로 물을 때리니 물방울이 눈처럼 날아 사방에 흩어진다.’

강원도 고성군 토성면 청간리에 있어 강원도 유형문화재32호로 지정된 청간정. 남한에 있는 관동팔경 가운데 가장 북쪽에 위치하고 있는 것으로 설악산 골짜기에서 발원한 청간천이 동해로 흘러드는 하구 언저리에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을 얹은 누각형식의 정자이다.

조선 인조 때 양양군수로 부임해왔던 택당 이식李植은 청간정의 아름다움을 글로 남겼다.

 

‘정자위에 앉아 하염없이 바라보면 물과 바위가 서로 부딪쳐 산이 무너지고 눈을 뿜어내는 듯한 형상을 짓기도 하고 갈매기 수백 마리가 아래위로 돌아다니기도 한다. 그 사이에서 일출과 월출을 바라보는 것이 더욱 좋은데, 밤에 현청에 드러누워 있으면 바람소리 파도소리가 창문을 뒤흔들어 마치 배에서 잠을 자는 듯하다.’

129개의 긴 주초석으로 받쳐진 정자가 언제 누가 창건했는지 알 수 없으나 1520년(중종15) 간성군수 최청이 중수하였다는 기록으로 보아 그 이전에 건립되었으리라 추정한다. 1844년 갑신정변 당시 불에 탄 채로 방치되어 오던 청간정은 1928년 토성면장 김용집의 발기로 재건되었다가 1981년 해체 복원되었다.

어우於于 유몽인柳夢寅, 오산五山 차천로車天輅 등 문장가들이 시를 지어 찬양했던 이곳 청간정에는 조선시대 명필 양사언과 송강 정철의 글씨 및 숙종 어제시를 비롯한 전직 대통령들의 글씨가 남아있다.“

 

‘동해안 모래는 빛깔이 눈같이 희고 사람이나 말이 밟으면 소리를 내는데, 그 소리가 쟁쟁하여 마치 쇠 소리와 같다. 특히 간성과 고성 지방이 더욱 그렇다.’라고 이중환의『택리지』에 기록된 지역, 그 가운데 화진포는 특히 고운 모래밭과 푸른 바닷물이 함께 어우러져 이루어내는 경관으로 한번 찾아왔던 이들의 발길을 다시 불러 모을 정도로 매혹적이다.

그곳 화진포 해수욕장에 연결되어 있는 석호, 화진호가 있다. 강물에 실려 온 모래가 바다물결에 맞부딪쳐서 강 하구에 쌓이기를 거듭하여 모래톱을 이루고, 그것이 반도 모양으로 가늘고 길게 바다 쪽으로 뻗어 내리며 만들어진 호수를 석호라고 한다. 화진호는 고청 서낭 전설이 함께 얽힌 곳이다.

고청 서낭신이 죽기 전 부자 시아버지인 이화진을 모시고 살던 집터가 지금의 화진호 자리였다고 한다. 시주를 청하는 스님을 박대하던 시아버지의 잘못을 대신 사죄하며 곡식으로 시주를 하던 고청이 스님의 권유로 집을 떠난 뒤, 집과 그 일대가 물에 잠겨 호수를 이루었다고 한다. 그렇게 생긴 이 호수는 부자였던 집주인 이화진의 이름을 따서 화진호라고 불렀다 한다.

둘레가 16Km정도 되는 호수에 고니 떼를 비롯한 겨울 철새들이 즐겨 찾아오고, 주변 바닷가 모래밭에 향수 원료로 쓰일 정도로 꽃 향이 좋은 해당화가 만발한다. 영조 시대 사람인 류중림(柳重臨)은 민간에서 꽃 중의 신선(神仙)으로 칭송되던 해당화를 ‘동짓날 쌀뜨물을 뿌려주면 그 꽃이 싱싱하고 무성해진다. …… 예로부터 이 꽃은 향기는 없다’라고『증보산림경제(增補山林經濟)』에 기록하였다. 푸른 호수와 바다, 모래밭 그리고 소나무 숲과 절묘하게 어우러져 화진포의 경관에 빛을 더해주고 있는 해당화는 고성군화로 지정되어 있다.

폐부 깊숙이 스며드는 향긋한 해당화 꽃 내음에 취해 바라본 화진호, 그 너머로 백두대간이 물결치듯 굽이쳐 흘러가고 있다.

 

김일성과 이승만의 별장이 있는 화진포

‘관동팔경의 정자들은 모두 바닷가에 집을 지었다. 바닷물이 아주 푸르러서 하늘과 하나로 된 듯하며 앞을 가린 것이 없다. 해안은 강변이나 시냇가와 같이 작은 돌과 기이한 바위가 언덕 위에 섞여 있어, 푸른 물결 사이에 보일락 말락 한다.’라고 이중환은 <택리지>에 기록하고 있다. 그의 말을 들어서 일까. 경관이 빼어난 이곳에 한국전쟁 이전에 김일성이 세웠다는 별장이 있다. 그리고 한국전쟁 이후 이승만 대통령과 이기붕 부통령이 휴가를 보냈던 별장이 남아 있다. “

 

신정일의 <동해 바닷가 길을 가다.> 중에서

 

1.일시: 2013년 12월 27일(금요일)에서 29일(일요일)까지

 

2. 출발시간 및 장소: 서울 저녁 8시 30분 서울 양재역 12번 출구 국립외교원 앞

전주 저녁 6시 30분 전주 종합경기장 정문 앞 출발

 

3, 답사지: 속초시 청초호. 영랑호, 청간정, 천학정, 거진읍, 화진포, 건봉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