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법인 우리땅 걷기 /신정일 대표님 자료 모음

전통 꽃상여가 고인돌과 청 보리 밭 사이를 지나가고

산중산담 2014. 5. 5. 23:38

전통 꽃상여가 고인돌과 청 보리 밭 사이를 지나가고

 

전주방송(J TV)에서 올해 제작해서 5월에 방송하는 프로그램이 고인돌입니다. 고창과 전라남도 화순을 비롯한 국내외의 고인돌을 취재하여 한국과 구라파에서 방송될 예정입니다.

이번 프로그램에 프롤로그를 한국적인 이미지를 선보이기 위하여 한국적인 장례문화에서 가장 극적인 요소가 담긴 전통 상례재현을 선보일 것입니다.

매년 사단법인 <우리 땅 걷기>의 ‘길 문화 축제’에서 재현한 상여놀이를 나라 안에 제일 큰 고창 청보리밭과 고인돌 사이에서 재현할 것입니다.

사단법인 우리 땅 걷기에서 고창군청의 협조를 받아서 진행하며 상여제작과 상여 놀이(상두꾼. 상여 곡소리에 동원 되는 사람)를 개최하여 가장 한국적인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전통의식을 보여줄 것입니다.

 

행사 내용

 

학원농장 청보리밭 언덕 사이를 만장 이십여 개가 나가고 그 뒤를 상여가 나가는 풍경을 연출하고, 장소를 고인돌 무리가 있는 곳으로 옮겨서 상여가 고인돌 사이를 지나 생태공원이 있는 언덕으로 넘어가는 풍경을 연출한 것입니다.

이 번 답사 참가자들은 생태공원을 지나 모양성을 한 바퀴 돌고 귀로에 오를 것입니다.

가장 한국적인 상여놀이가 고창에서 만들어져 세계로 방영하는데 참여하시기 바랍니다.

 

하늘에 제사지내던 도선리 고인돌

“북방식 고인돌 가운데에 가장 남쪽에 있는 도산리 고인돌은 민가 몸채 뒤에 홀로 서 있다. 불과 십여 년 전만 해도 대나무 숲으로 둘러싸인 장독대 한 켠에 또 다른 장식물처럼 서 있었는데, 장독대는 사라지고 잔디가 깔려서 왠지 모를 어색한 풍경으로 변해 버렸으니 쓸쓸함을 금할 수 없다. 그대로 두는 것이 아름다움이고 올바른 보존법인 것을 행정관료들이 언제쯤 알게 될까? 원래는 4면을 판석을 세워 막은 뒤 그 위에 뚜껑을 얹었을 것이지만 두 개의 막은 벽은 없어지고 2매의 판석 위에 뚜껑들이 얹힌 도산리 고인돌의 뚜껑돌의 길이는 3.5미터이고 폭은 3.1미터, 두께는 30~38센티미터쯤 되며, 밑을 받치고 서 있는 두 개의 받침돌은 높이가 1.8미터쯤 된다.

마을 사람들은 고인돌을 하늘에 제사 지내던 단이라 여겼기 때문에 정화수를 떠올리고 치성을 드리기도 하였다고 한다. 먼발치로 아산면 상갑리 고인돌 군을 바라다본다. 500여 개의 남방식 고인돌(이곳에서는 괴임돌이라 부름)이 하얀 페인트로 변호가 새겨진 채 흩어져 있다. 세계문화유산등록으로 지정되어 있는 저 고인돌 군들은 저마다 어떠한 사연들을 지니고 있을까.

 

고창성 높이 앉아

조선시대의 학자이며 전라감사를 지냈던 이서구(李書九)가 지었다고 전해지는 <호남가>에 “고창성 높이 앉아 나주 풍경을 바라보니”라는 구절이 나오는데 그 고창성을 이 고장 사람들은 모양성(牟陽城)이라고 부른다. 해미읍성․낙안읍성과 더불어 원형이 가장 잘 보존되어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모양성은 단종 1년(1453)에 세워졌다고도 하고 숙종 때에 이항(李杭)이 주민의 힘을 빌려 8년에 걸쳐 쌓았다고 하지만 확실하지는 않다. 성벽에 새겨진 글자 가운데 계유년에 쌓았다는 글자가 남아 있으며, ?동국여지승람?에 “둘레가 3008척 높이가 12척이고 성내에 세 개의 연못과 세 개의 하천이 있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그것이 성종 17년에 발간되었기 때문에 그 전에 쌓았음을 알 수 있다.

고창성은 여자들의 성벽밟기로 유명한데, 성을 한 바퀴 돌면 다리의 병이 낫고 두 바퀴 돌면 무병장수하게 되며 세 바퀴 돌면 저승길을 환히 보며 극락에 갈 수 있다는 것이다. 윤삼월이 가장 효험이 좋고 초엿새, 열엿새, 스무엿새 등에 성벽 밟기를 하기 위해 도처에서 사람들이 몰려들었지만 지금은 가을에 열리는 고창 모양성 축제 때에나 볼 수 있다. 그러나 성의 높이가 만만치 않아 떨어지면 큰 불상사가 날 수도 있다. 실제로 오래 전에 ?산골소녀 옥진이?라는 시집을 펴냈던 김옥진씨는 고창여고 재학 중 성벽밟기를 하다 떨어져 반신불수가 되어 시인으로 다시 태어나게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