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 모든 게 운명이다. 일이 잘 되는 것도, 일이 어긋나는 것도 다 운명이다. 그런데 그 운명의 시간을, 그 어떤 잘난 사람도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다는데 인생의 묘미가 있다.
이번 답사만 해도 그랬다. 원래 일정은 걸어서 사량도 상도에서 하도로 가기로 예정되어 있었지만, 연결이 안 되어 가능해지 못했고, 수우도는 한 발 늦어 가지 못하게 되었는데도 그냥 ‘무식이 배짱‘이라는 무대뽀로 강행하고 하도에 있는 칠현산을 오르는 초입에서 코스모스 꽃밭과 딸기밭을 만나며 행운의 여신이 우리를 향해 손짓하기 시작했다.
지금도 선한 그 아름다운 풍경들, 건너편의 지리망산과 남해 금산의 밝은 눈(?)에만 보이던 보리암에서 통영의 미륵산이랑, 이름도 알 수 없는 산들의 봉우리를 감싸고 있던 구름들,
그 모든 것들이 내게 새로운 첫 경험을 선사했다. 그렇다. 운명은 가끔 어긋날 때 아름답고 숭고하기까지 하다. 그럴 때 우리는 상상하지 못했던 새로운 것을 만나게 되는 것이다.
"만남을 추구할 것, 모든 만남을, 인간에 관한 글을 쓰려고 하면서 어떻게 자연 경관으로부터 등을 돌릴 수 있단 말인가? 하늘이나 빛이 나를 유혹한다면 내가 어찌 사랑하는 이것들의 눈과 소리를 잊을 수 있단 말인가?“
라고 알베르 카뮈가 말했던 모든 것들과의 만남을 통해 한 편의 글이 완성된다.
어떤 아름다운 사물과 경탄할만한 경치를 통해서 한 편의 글이 써지고, 인간의 감성이 한 단계 상승하는 것, 이 세상을 살아가야만 하는 이유라면 너무 과찬일까?
그런 의미에서 세네카의 다음 글은 대단한 울림을 준다.
“루킬리우스여, 어떤 경치를 계기로 해야만 친구를 떠올리니, 나는 분명히 게으르고 방만한 사람인 모양이네. 그렇지만 내 마음에 담아 두었던 사모의 정은 이따금 그리운 곳에 의해 되살아난다네. 사려져 버린 추억이 돌아오는 것이 아니라 잠자고 있던 추억이 깨어나는 거지. 이를테면 고인을 그리는 슬픔도 세월과 함께 희미해지는 것이 보통이지만, 고인이 좋아했던 노래나 옷, 또는 집에 의해 다시 새롭게 살아나는 것처럼,
보게나 캄파니아, 특히 네아 폴리스, 그리고 자네가 사랑하는 폼페이의 경관, 그것은 믿을 수 없을 만큼 자네에 대한 그리움을 새록새록 일깨워 주었다네.
자네의 온 몸이 지금 내 눈 앞에 떠오르고 있네. 자네가 눈물을 삼키고 있던 모습, 아무리 억제하려해도 물밀 듯 밀려드는 상념에 어쩔 줄 몰라 하던 모습이,
자네가 가버린 것이 바로 어제 일 같군, 사실 지나간 추억을 더듬을 때 ‘바로 어제 일’ 이 아닌 것이 있을까. 내가 어린 시절에 철학자 소티온의 교실에 앉아 있었던 것도 바로 어제의 일인가 하면, 내가 법정에 서기 시작한 것도, 서지 않게 된 것도 설 힘이 없어진 것도 바로 어제의 일이라네, 정말 시간은 한없이 빠른 것이더군, 그것은 지난날을 되돌아볼 때 더욱 명백해지지. 눈앞에 일에 몰두해 있으면 깨닫지도 못할 만큼, 시간은 쏜살같이 빠르면서도 조용하게 지나가니까. 어째서 그런 거냐고? 지나간 시간은 모두 같은 곳에 있네.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곳에 한 덩어리로 누워 있지. 또 모두가 같은 깊이 속에 있네. 그리고 전체가 짧은데 그 속에 긴 간격을 잇을 수 없네. 우리네 일생은 점, 아니 점보다도 작다네. 그러나 이 아주 조그마한 것을 자연은 조롱했네. 뭔가 긴 전개가 있는 것처럼, 보이도록 했으니까,
그 일부는 유년기, 소년기, 청년기, 일부는 장년기에서 노년기로 내려가는 내리막길, 마지막 일부는 노년기 자체로 했지. 이렇게 좁은 곳에 이토록 많은 계단을 만들었다니, 자네를 전송한 것도 바로 어제이네. 그러나 ‘바로 어제’는 우리의 일생에서 상당한 부분을 이루고 있네. 그 짧음은 언젠가 다할 때가 오는 것이라고 생각하게. 나도 시간이 이처럼 빠른 걸음으로 간다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지만, 지금은 믿을 수 없을 만큼 걸음이 선명하게 눈에 보이네. 그것은 내가 결승 테이프에 다가왔음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거나, 잃은 것에 마음을 두 고 계산을 시작했기 때문이겠지.
그런 만큼 내가 더욱 분개하는 것은, 이 시간이라는 것은 아무리 주의 깊게 관리해도 필요한 일에도 충분하지 않은데, 그 대부분을 여분의 것에 소비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네. “
세네카의 <삶을 생각하며 쓴 편지>에의 일부분이다.
숲속을 거닐며 오르다가 숲을 벗어나자 보이던 일곱 능선, 그 길이, 지금도 눈에 선하지 않은가?
이런 저런 일(메르스나 집안의 대소사)들이 발목을 잡지만 그것들에 연연해하지 않고 떠날 때 한 폭의 아름다운 경관과 새로운 만남이 당신의 영혼을 전율시키기도 하고, 생에 대한 의지를 더욱 견고하게 해줄 수 있지 않을까?.
떠나는 자에게 복 있을 진저,
을미년 유월 초여드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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