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이 땅에서 사랑해야 할 세 가지,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지니고 살아야 할
몇 가지 것들이 있다.
아름답고, 착하고, 진실 되게 사는 것,
모든 사람들이 이렇게 산다면 세상은 날이면 날마다 행복이 넘쳐 나는,
말 그대로 ‘이상세계’ 즉 미륵의 세상이나 다름없으리라.
그런데, 간단하면서도 어렵지 않을 것 같은
그 몇 가지 것을 실천하지 못하다보니 세상이 항상 어수선하고 요지경 속이다.
“지식을 얻는 진정한 방법이 실험이므로
진실로 안다는 것은 곧 체험하는 것이다.“ 라고 술회한 블레이크의 말과 같이
실험하고 실천하면 되는 데, 그것이 그토록 어렵기 때문이다.
“나의 사랑을 우상숭배라고 부르지 말라.
또 나의 애인이 우상화 되었다고 여기지 말라.
모든 나의 노래와 찬사가 언제나 한결 같아
단 하나에게 바치는 단 하나에 관한 것이라 하여
나의 애인은 오늘도 정답고 내일도 정답고
경탄하리만큼 한결 같아라.
그러므로 나의 시는 불변의 법칙에 매여
하나만을 표현하고 다른 것은 버리노라.
아름다움(美)과 착한(善) 것과 참된(眞) 것은
내 주제의 전부니라.
아름다움(美)과 착한(善) 것과 참된(眞) 것을 말을 바꾸어 노래할 뿐,
이런 변화에만 나의 상상이 소비되도다.
하나 속의 세 주제, 이는 놀랄만한 영역이라.
아름다움(美)과 착한(善) 것과 참된(眞) 것,
하나하나가 혼자 있는 때는 가끔 있었으나
셋이서 한 자리를 함께 한 적은 이제껏 없었어라.“
셰익스피어 <소네트> 105편의 전문이다.
셰익스피어의 말은 너무나 지당하다.
한 가지나, 두 가지는 가능한데, 세 가지를 다 실천하고 살아가는 사람을
만나기가 쉽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옛 사람들의 말에도
세 가지가 포함되는 경우는 드물다.
“무릇 인간이 열중하는 것은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인간이 악한 것에 열중할 수가 있을까?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다. 혹은 자기에게 관계가 없는 것은 선한 일 뿐이며. 그들이 이것에 열중하면 또한 이를 사랑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옳은 일을 행하는 자는 누구나 그 일을 사랑하는 방법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선악을 구별하지 못하는 사람이 어떻게 이를 사랑할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사랑은 현자만이 갖는 것이다.”
에픽테토스 <사색론>에 실린 글이다.
그렇다면 현인도 아니고 어리석은 자도 아닌 평범한 사람이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견지해야 할 자세는 무엇일까?
“너희는 서서 보며 옛적 길, 곧 선한 길이 어디인지 알아보고 그리로 향하라.”
<에레미야서> 6장 16절에 실린 글이다.
먼저 마음이 선해야 할 것이다. 마음이 선한 것이 우선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선해야 할 것인가?
“우주와 조화된 사람은 선한 사람이다. 그리고 우주와 조화를 이룬다는 것은. 신의 뜻을 따른다는 것을 뜻한다. 오, 주여! 그대의 조화가 나의 조화이며, 그대의 시간이 나의 시간이다.” 아우렐리우스의 글이다.
선한 것 역시 자연스러움에서 그 본의를 찾을 수 있다는 이야기이고, 하늘의 뜻을 따른다는 것인데, 그것에 대한 해답이 월리엄 워즈워스의 글에 실려 있다.
“선한 인간의 삶에서 가장 훌륭한 것들은 보잘 것 없고, 이름을 내세우지 않으며, 기억하지 않는 사랑과 친절의 행동들이다.”
이렇게 살아간다면, 그 사람이 바로 참된 인간이고, 아름다운 인간이 아니겠는가?
“우리 삶에 아름다움이 부족하다면, 아마 우리 영혼도 그와 똑 같은 결핍을 느끼고 있을 것이다.”
토머스 모어의 말과 같이 그런 사람은 아름다움과 착함과 진실함이 이 땅에 도래하는 그 날을 위하여 최선을 다해 살아내야 하지 않을까?
병신년 사월 스무이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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