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법인 우리땅 걷기 /신정일 대표님 글 모음12

조금만 더 마음을 내려놓으면 세상살이가 편안할 것인데,

산중산담 2016. 7. 18. 15:12

 

조금만 더 마음을 내려놓으면 세상살이가 편안할 것인데,

 

 

알 수 없다. 내가 나를 모르고, 그대도 그대를 모른다.

내가 그대를 모르고, 그대 역시 나를 모를 것이다.

서로가 멀리 떨어진 행성과 같이 사는 우리들의 삶,

그런데도 세상에는 겉똑똑이들이 많아서

세상이 잘도 돌아가는 것 같다. 그러나 조금만 더 마음의 눈을 크게 뜨고 보면

세상은 여기 저기 허점투성이이고, 마찬가지로 내가 아는 것이

너무도 일천했음을 아는 것은 바로 다음 순간이다.

이렇게 저렇게 흐르는 세월, 금세 새해인가 싶더니 반이 다 가버리고,

그 화려했던 봄꽃들의 향연 또한 마무리를 향해 흐느적흐느적 나아가고 있으니,

이를 어쩐다.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는 신 새벽, 한 번 깬 잠은 저만치 달아나고,

불을 켜고 서가에 꽂힌 <연암집>을 꺼내어 천천히 읽는다.

 

자무子務와 자혜子惠가 외출했다가 장님이 비단옷 입은 것을 보았다. 자혜가 탄식하면서

, 제 몸에 걸쳤건만 보지 못하는구나.”

자무가 대답했다.

대저 비단옷을 입고 밖에 다니는 것과 어느 쪽이 낫겠나.”

드디어 서로 더불어 청허선생에게 판단해주기를 청했다. 선생은 손을 저으면서 이렇게 말했다.

나도 모른다. 나도 모른다. 옛적에 황정승(황희를 말함)이 관청에서 돌아오니 그의 딸이 맞이하면서 아버지께서는 이()를 아십니까, 이는 어찌 생기며, 옷에서 생깁니까.’ 하므로 그렇다 했더니, 딸이 웃으면서 내가 이겼다.’ 하였다.

며느리가 이는 살에서 생기지요.’ 하기에 옳다했더니, 며느리가 웃으면서, ‘시아버님께서 내 말이 옳다 하셨다.’ 하였다.

부인이 노해서 대감은 누가 슬기 있다 하십니까, 송사訟事하는 데에 양쪽을 다 옳다고 하다니요.“ 황정승이 빙그레 웃으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딸과 며느리, 둘 다 이리오라. 대저 살이 없으면 화하지 못하고, 옷이 없으면 붙을 데가 없기에 두 사람의 말을 모두 옳다 한 것이다. 비록 그러나 옷을 농안데 두어도 이가 있기도 하고, 네가 발가벗어도 오히려 가려울 것이다. 땀이 무럭무럭 나고 풀냄새가 풍기면 이는 옷과 살 사이에서 떨어지지도 않고 꼭 붙어 있지도 않는다.‘

임백호林白湖(임제)가 말을 타려 하는데. 종이 앞에 와서 생원님께서 취하셨습니다. 목화 가죽신을 짝짝이로 신으셨습니다.’ 하였다. 그러자 백호가 다음과 같이 꾸짖었다.

길 오른 편으로 오는 자는 내가 목화를 신었다고 할 것이고, 길 왼편으로 오는 자는 내가 가죽신을 신었다 할 것인데, 무슨 걱정이냐.”

이로 말미암아서 논한다면 천하에 쉽게 보이는 것은 신발 같음이 없건마는 본바가 같지 않으면 목화와 가죽신도 분별하기 어렵다. 그런 까닭에 참되고 올바른 소견은 진실로 시비하는 그 속에 있다. 땀과 이로 화하는 것 같음은 지극히 미세微細해서 살피기 어려운데, 옷과 옷 사이에 저절로 공간이 있어 떨어지지 않고 꼭 붙지도 않으며, 오른쪽도 아니고, 왼쪽도 아닌데, 누가 그 바름을 아겠는가? 쇠똥구리도 뭉친 덩이를 좋아해서 여룡驪龍의 구술을 부러워하지도 않고 여룡도 구슬로써 저 쇠똥구리의 뭉친 덩이를 비웃지 않는다.“

연암 박지원의 <낭환집 서>에 실린 글이다.

 

저마다 처한 입장에 따라서 같은 것도 같지 않고

다른 것도 또한 다르지 않다.

그런데 저마다 처한 환경에 따라서 그것을 옳다.’ ‘그르다

목소리 높여 외치다가 보니 세상이 한 시도 편하지 못하고 시끄러운 것이다.

 

조금만 더 마음을 내려놓으면 세상살이가 편안할 것인데,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사실은 우리 모두 왔던 곳으로 돌아간다는 사실,

그것만 알면 세상을 아등바등 하며 살아갈 이유가 없는데,

세상은 여유롭게, 사람들의 관계도 부드럽게 돌아갈 것인데,

어찌 그리 이 세상에서 들리는 소문은 불길하기만 하니,

이를 어쩐다. 이를 어쩐다.

하면서도 살아갈 수밖에 없는 이 세상에

사랑의 단비, 행복의 단비, 부드러움의 단비가 내릴 날은 없을 것인가?

 

병신년 오월 스무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