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그곳에 갔다. 40 몇 년이 라는 세월이
쏜 살 같이 흘러가 버린 세월 저편의 길,
그 길은 내게 있어 화인처럼 찍혀져 지워질 수 없는
그리움의 길이며 이미 흩날려 버린 민들레 홀씨 같은
존재하는지, 아니면, 존재하지 않는지도 모르는
망각과 같은 길이다.
섬진강의 발원지인 진안군 백운면 신암리에서 선각산을 올랐다가
내려가는 길, 그 때는 그 길을 열두 덜이라고 불렀었다.
그곳이 감수성이 가장 예민했던 열 예닐곱 살 무렵
내 삶터이자 피난처였다.
가끔은 약초를 캔다는 명목 하에 약초 망태기 하나 메고
아침 일찍 부터 아버지 뒤를 따라 길도 없는 길을 하루 종일 헤매고 다녔다.
그 곳에서 나는 가끔씩 산 작약이나 천마, 그리고 더덕과 산 당귀,
조금만 입에 넣고 씹어도 혀가 싸 하면서 박하 향이 감도는 세신(족두리 꽃)을
캐어 담고는 했다.
“국 골은 가시도 없는 참 두릅이 많이 나는 곳이고, 선각산 정상 부근에는
씨알 굵은 더덕과, 그 맛이 향기로운 산 당귀, 그리고 고비가 많이 난다.
장자골은 딱주(잔대)가 많이 나며, 천마는 약간 습한 데서 자란다.“
아버지는 가끔씩 내게 산자락에 얽힌 이야기를 풀어 놓기도 했지만
그 곳에서 많이 나는 산채나 약초에 대해 말하곤 했다.
정규교육을 받지 못하게 그 출구를 일찌감치 막아버린 미안감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훗날 약초라도 캐면서 이 세상을 살아가라고 그러셨는지는 몰라도
그 때 나는 아버지에게서 이 나라 산천에서 나는 약초와 먹을 수 있는
풀이나 열매, 그리고 천남성이나 개 당귀에 대해 제대로 배울 수 있었다.
하지만 서로 주고받는 말은 그럴 때뿐이었다.
어떤 때는 하루 종일 말 한 마디 나누지 않고
아버지와 함께 온 산을 헤매고 다녔던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그 무렵 그 산에는 영풍회사(영문문고의 주 회사)가 잣나무를 심었었다.
지금은 밑 둥 굵은 나무가 되었지만 그 잣나무를 보호하기 위해
매년 여름부터 초가을까지 몇 년 간 풀을 베며 보냈었다.
그 열두 덜 길을 곰취와 산당귀, 산 더덕을 캔다는 미명하에
소찬영, 김홍권 선생과 함께 아침 일찍부터 찾아간 것이다.
날은 푸르고, 드높아서 북으로는 덕유산, 남 덕유산, 동으로는 장안산, 지리산,
남으로 팔공산, 백련산, 오봉산, 회문산이 한 눈에 보였다.
능선길을 벗어나자 내가 그 청소년기에 걸었던 그 길이
아스라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함박꽃이 가끔씩 그 향기를 선물하던 그 길,
언뜻 환영처럼 아버지의 망태 진 그 모습이 앞서가던 그 길,
울울창창 우거져 하늘이 보이지 않던 그 길이 끝나고 전전바위 폭포가 자리 잡은
백운면 백암리 덕태산 자락을 지나 백운동 마을로 이어지던 길,
그 길을 걸으며 발견했던 것은 고적 더덕 네 뿌리뿐이었다.
그 많던 더덕은, 고비는 곰취는 산당귀는 어디로 간 것일까?
사십 몇 년이라는 시간 속에서 그 길이 과연 남아 있기나 할까? 아니면
그 길이 어떻게 변해 있을까 하는 그 오랜 그리움과 궁금증으로 찾았던
그 시간 속에서 내게 남아 있는 그 아련한 슬픔 속에 추억의 길을 걸을 때
문득 <푸른 꽃>의 저자인 노발리스의 다음과 같은 말이 떠올랐다.
“사람에게는 자기 내면으로 향하는 ‘비밀의 통로’가 나 있다.”
내게는 그 길이 ‘비밀의 통로’가 아니었을까?
피기도 전에 무참히 꺾여 버린 꿈이 바람으로 떠돌던 그 길을
사십 몇 년의 세월을 훌쩍 보내 고 난 뒤에 찾아간 나는 누구이며
내 뒤를 따라가는 일행들은 또 누구란 말인가?
길은 아직도 저렇게 먼 곳으로 이어져 있는데,
나는 언제까지 그 길을 때론 잃고, 때론 찾으며 걸어갈 것인지.....
병신년 오월 스무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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