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픔은 진솔한 나를 만나는 넓게 펼쳐진 광장이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은
스스로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소중한 존재다"
몽테뉴의 말이 이 시대에도 유효한가? 아닌가?
생각하게 하는 밤 다시 머리가 아프다.
한참동안 잠잠했던 두통이 티베트 고산지방에서 다시 재발한 모양이다.
진통제를 먹어야 할 것인가? 그냥 참아도 될 것인가?
생각하다가 임종을 앞둔 누군가도 있는데,
이까짓 머리가 조금 아프고 온 몸이 텅 빈 것 같은
아픈 것 같지도 않은 아픔을 참지도 못하는가 하는 마음으로
밤새 아프다는 생각에 젖어서 잠을 설쳤다.
아픈 사람이 나뿐만이 아니리라.
지구 전체, 모든 사람이 아픈 시대가 이 시대인지도 모른다.
아니 그 모든 사람들이 잘 살았다는 요순시대에도
사람들은 아팠고, 쓸쓸했고, 불행했을 것이다.
단지 우리들은 우리가 겪어보지도 못한 그 시대를 열망하며, 그리워하며
살아갈 뿐인지도 모른다.
가끔씩 내가 아플 때 나는 누군가의 아픈 마음속으로 들어가
그 아픔의 실체를 파악하고 덜어주고자 하지만
그 역시 부질없는 일이다.
“아픔이여, 올 테면 와라. 와서 나를 파먹어라.
너의 독아를 나의 살 속에 깊숙이 묻으렴,
나를 갈기갈기 찢어라. 나는 흐느끼노라. 흐느끼노라.”
버지니아 울프는 <파도>에서 이토록 격렬하게 흐느끼고 있는데,
내가 어찌 나 아닌 다른 사람의 아픈 마음속으로 어떻게 들어갈 수 있는가?
단지 그 마음의 변두리를 서성거리고 그 겉껍질을 바라보는 그것 뿐,
“오라, 그대여, 무엇인가 잃어버린 것을 가진,
그리운 피로한 마음이여,
어두운 하루와 음침한 한 해와
너를 마음 아프게 하는 인간과,
너를 사랑하는 어느 사람과,
잎사귀가 말라 떨어져 버린 청춘과,
고달픈 전 생애를 잊어버린 마음이여.
또한 그대여.
현재가 상처투성이며,
과거가 흉터투성이인, 풀이 죽은 정신이여.
오라, 나의 장경성(長庚星. 태백성) 속으로,
그리하여 그 희미한 빛으로 마음을 상쾌하게 하라.“
장 파울의 대하소설 <금성>에 실린 글이다.
한 마음이 다른 한 마음을 상쾌하게 하고
불꽃처럼 화안하게 빛나게 할 수 있는가?
가능하지 않지만 할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지금도 아픈 사람들,
지금도 아픈 이 세계에 줄 수 있는 말,
앙드레 말로의
“강하게 살아남으라, 한 치의 타협도 없이.”
그 말 뿐이다.
아픔은 진솔한 나를 만나는 넓게 펼쳐진 광장이다.
2016년 8월 24일(수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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