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은 있는가? 없는가? 없다는 사람도 있고, 있다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 어느 쪽도 확실하지 않다는 것이다.
우리가 그 시간을 시간이라고 여기는 것은 벽에 걸린 시계가 알려주는 시간과,
지금이 몇 시라고 알려주는 전파 매체들, 그리고
정확하지는 않지만 가장 정확한 것이라고도 평하는
몸에서 느끼는 생체 시계가 있다.
지금 배가 고프니 몇 시가 되었는가 하는 그 가늠으로
아침과 점심, 그리고 저녁을 평가하고,
더 근대적으로는 새벽에 우는 닭이나
길게 드리운 그림자로 시간을 추측을 하곤 하는데,
그 시간이 모자라거나 남는데 따라서 여러 가지 일들이 파생한다.
그렇다면 그 시간이란 무엇인가?
그 해답을 이 세상을 살다간 많은 현인들이 진단했고
지금도 끊임없이 시간에 대한 이야기들이 오가고 있다.
“인간은 시간에 의해 산다. 미래를 만들어내는 것은 그의 즐겨하는 도피의 게임이 되어 왔다. 우리는 우리들 자신 속에서의 변화가 시간 속에서 이룩된다고 생각하며, 자신들 속에서의 질소가 조금씩 이루어지고 하루하루가 증기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시간은 질서나 평화를 가져오지 않으며, 그래서 우리는 점진성漸進性에 의해 생각하기를 그쳐야 한다.
이것은 우리가 평화롭게 안주할 내일이 없음을 의미한다. 우리는 순간에 질서가 있게 되지 않으면 안 된다.
진짜 위험이 있을 때, 시간은 사라진다. 그렇지 않은가? 거기에 즉각적인 행동이 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의 많은 문제들의 위험을 알지 못하며, 그래서 우리는 그것들을 극복하는 수단으로서 시간을 만들어 낸다.
시간은 우리 자신들 속에 변화를 가져오는데, 아무 도움도 되지 않으므로 사기꾼이다. 시간이란 인간이 과거, 현재, 미래로 나누어 놓은 운동이다. 이간이 그걸 쪼개는 한 그는 항상 갈등 속에 있게 될 것이다.
배운다는 것은 시간의 문제인가? 우리는 수천 년이 지난 지금도 서로 증오하고 죽이는 것보다 더 나은 삶의 길이 있다는 것을 배우지 못했다. 우리가 이 삶, 지금 보는 바와 같이 괴물스럽고 무의미하게 만드는데 우리가 도와온 이 삶을 변화시키고 문제를 풀려면 시간의 문제를 이해하는 게 매우 중요하다.,
맨 처음 이해해야 할 것은 우리가 이미 살펴본 마음의 신선함과 천진성을 가지고 보아야만 시간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많은 문제들에 관해 혼란되어 있으며 그 혼란 속에서 길을 잃고 있다.
만일 누가 숲속에서 길을 잃었을 때, 그가 맨 처음 하는 일은 무엇인가? 우선 발을 멈추고 선다. 그렇지 않은가? 서서 주위를 둘러본다. 그러나 우리가 삶속에서 혼란되어 길을 잃으면 잃을수록 우리는 사방으로 쫓아다니고, 찾아 헤매고, 캐묻고, 요구하고, 구걸한다. 그러므로 우선해야 할 일을 나더러 말하라고 하면, 그것은 당신이 내적으로 안전히 정지하는 일이다. 당신이 내적으로, 심리적으로 정지한다면, 당신의 마음은 매우 평화로워지고, 아주 맑아진다. 그러면 당신은 이 시간의 문제를 정말 볼 수 있다.“
크리슈나무르티의 <아는 것으로부터의 자유> 속에서 ‘시간’에 관한 글이다.
시간 속에서 길을 잃고 길을 찾기도 한다고 하지만
그 시간이라는 것이 과연 있기나 한 것인가?
어쩌면 인간들이 그 시간이라는 것을 설정하고서 그 시간의 노예가 되어
그 시간의 움직임에 따라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중요한 것은 세상의 그 어느 것도 시간 속에서 해결되지 않고
소멸되지 않는 것들이 없다는 것, 그것이다.
“우리가 가장 원하는 것은 시간이며,
애석하게도 가장 잘 못 사용하는 것 역시 시간이다.“
라고 진단한 월리엄 펜의 말이 떠오르는 시간이다.
2016년 8월 25(목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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