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 가고 가을이 오다.
불과 며칠 전 일이다.
내 몸 쪽으로 선풍기를 미풍으로 틀고
밤새 잠을 청했다.
그런데, 춥다는 생각, 아니 그 따뜻함이 좋아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자고서
그 따뜻함에서 벗어나기 싫어서
일어나기를 망설이는 마음,
여름과 가을이 눈 깜빡할 사이에
서로 자리를 바꾸었구나.
활짝 열었던 창문을 조금 여미만 남기고 닫고
여름옷을 옷장 안에 넣고
가을 속으로 들어갈 채비를 한다.
가을이 전혀 올 기미를 보이지 않다가
느닷없이 한 줄기 비 사이로 오듯이
마음속에서도 문득문득 오가는 것들이 있다.
그것들을 무엇이라고 정의해야 할까?
“하지만 잘 들어봐. 내 말이 아니라,
네가 너 스스로를 듣고 있을 때에
네 몸 속에서 일어나는 동요를 들으란 말이야.”
르네 도말이 <흑색의 시, 백색의 시>에서 말한
동요, 내게 오는 것들이 바로 이것이 아닐까?
육체가 먼저 느낄 수도 있고,
마음이 먼저 느낄 수도 있는
여러 징후, 또는 동요,
그것이 계절이 지나가는 것이든
한 사람의 운명을 담보할 사상이나 학문이 번개처럼 오는 것이든,
불길함이 아닌 희망적인 그런 동요가 다가오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 아닐까.
“세계는 크다. 하지만 우리들의 내부에서 그것은 바다처럼 깊다.”
나는 릴케의 이 말을 좋아한다.
무한히 펼쳐진 세계,
이 세계의 가장 큰 덕목은 다양성이다.
수많은 가능성과 미지의 것으로 뒤덮인
세계 속에서 하나의 구성원으로
살며 떠돌고 사색할 수 있다는 것,
내가 바라는 것과 할 수 있는 것 중의
그나마 가장 잘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가을, 나에게는 어떤 미지의 시색이 다가와
새로운 것들을 꿈꾸고 이룰 수 있을 것인지
2016년 8월 29일(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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