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법인 우리땅 걷기 /신정일 대표님 글 모음12

한 사람이 한 사람을 이해하고 제대로 알 수 있을까?

산중산담 2016. 11. 30. 19:39

 

한 사람이 한 사람을 이해하고 제대로 알 수 있을까?

 

 

한 나무가 한 나무를 이해하고 제대로 알 수 있을까?

하나의 별이 다른 별을 이해하고 제대로 알 수 있을까?

한 사람이 한 사람을 이해하고 제대로 알 수 있을까?

할 수도 있고, 못할 수도 있다.

왜 그런가? 저마다 운명 지어진 별이고,

저마다 수천 수만리 떨어져 있는 섬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한 인간이 다른 인간을 제대로 알 수 있는가?

어렵다. 그래서 만들어진 말이

열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말이다.

 

불타가 아난에게 말했다.

우리가 눈으로 사물을 보고 안다는 것은

사물 때문에 생긴 결과가 아니다. 만약 우리의 눈으로 보고

안다는 주체(객관)가 대상에 있다면

그것은 이미 주관이라 할 수 없고, 객관이다.

객관이라면 내가 보지 않을 때에도

그 보지 않는 곳(주관)은 객관적으로 보이지 않겠느냐.

만약 그 보이지 않는 (不見) 주관이 객관적으로 네게 보인다면

이미 불견의 상(不見之相)이라 할 수 없지 않느냐.

만약 나에게 보이지 않는 곳을 너도 보지 못한다면,

본다는 작용이 사물에서 생기지 않기 때문이다.

그 사물에 의하지 않음이 곧 너의 본성이며,

보고 들음이 다 너 자신의 것이다.” <능엄경>에 실린 글이다.

 

보고 듣는 것이 다 내 자신의 것이라는 불타의 말은 맞다.

그러므로 가끔씩 사물을 잘 볼 때도 있지만, 제대로 보지 못해

서운해 하고, 후회 하고, 혼자서 쓸쓸 해 하고, 덧없음으로

눈물을 흘리기도 하는 것이다.

안다는 것은 빈정거리지 않고,

탄식하지 않고, 욕설을 퍼붓지 않고 이해하는 것이다.”

스피노자의 말이다.

 

참으로 이 세상을 안다는 것은

쓸쓸함을 온 몸으로 느끼고 스스로 단념하고 체념하는 것,

인생이 결국 덧없다는 것에 다름 아니라는 것,

그것이 사람이건, 진리이건, 많이 안다는 것은

슬픔이다. 그렇기 때문에 바이런은 다음과 같은 남겼을 것이다.

안다는 것은 슬픈 일, 많이 아는 자들은 그 운명적 진리를

깊이깊이 애도해야 하리. 인식의 나무는 생명의 나무가 아니니.“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의 숙명이지만 언젠가는 마지막 지점에 이를 것이다.

하지만 살아가면서 나 아닌 타인에게 실망을 주기도 하고

실망을 하기도 하며 계속되는 것이 삶이다.

그 삶을 어떻게 살 것인가?

 

모든 선의와 희열의 핵심은 사랑이라는 것,

인간을 진지하게 사랑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렇지만 어떻게, 누구를 사랑해야 한다는 것을 안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헤르만 헤세의 말이다.

 

누군가를 혹은 무엇인가를 사랑하고, 이해하고 배우며 살아가는 것이

고금古今에서 지금只今까지 인간에게 이어져온 가장 고귀한 진리다.

어렵고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어려운 것일수록 시도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20169월 초하루(목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