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법인 우리땅 걷기 /신정일 대표님 글 모음12

비가 오락가락 하는 날, 우산雨傘에 대한 명상,

산중산담 2016. 11. 30. 19:44

 

비가 오락가락 하는 날, 우산雨傘에 대한 명상,

 

 

이미 오래 살았고, 오래 살았으므로

세상의 이치를 알 만큼 안다고 생각할 때가 있다.

하지만 하루 앞, 아니 한 치 앞도 못 내다보고 사는 게 인생이다.

전날 할 종일 비가 오락가락 했는데,

아침에 일어나자 구름 속에 보이는 해,

오늘은 맑은 날이라서 푸른 강물을 보리라 했는데,

출발하려고 하자마자 한 방울 씩 내리는 비,

그래서 차에서 다시 우산을 챙겼다.

정선 망하에서 동강변에 자리 잡은 귤암리로 이어지는

양치재를 오르는 동안 비는 내리지 않고 날씨만 쾌청하다.

그래서 우산을 지팡이 대신 삼고 걸어가지만

언제나 스틱도 안 가지고 다니는 나에게 우산은 여간 불편한 게 아니다.

나만 그럴까? 이은주 선생을 비롯한 많은 도반들이 걸어가면서

비가 올 줄 알고 가져온 우산이 오히려 짐이 된 것에 대해

이렇게 저렇게 말들을 쏟아냈다.(정선 기행에서의 일이다.)

 

백년도 못 살면서 천년의 걱정을 하고 사는 것이 사람이라지만,

비를 조금 맞아도 한 번 비에 젖은 자는 다시 젖지 않는다.“

라는 속담처럼 괜찮을 것이다. 그런데 행여 내리는 비를 맞으면 불편할까 싶어

자기 스스로 챙겼다가 스스로 부담스러워 하는 우산, 그 우산에게

무슨 죄가 있을까? 있다면 그 우산이 주인을 잘 못 만난 것이리라.

 

매 순간 결단하고 매 순간 후회하는 사람이 있고

반면에 매순간 결단을 하지 못하고 매 순간 후회하는 사람도 있다.

이것도 저것도 다 세상에서 일어날 것이 일어나는 것이요,

일어나지 않을 일이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매 순간 이래저래 만족하지 못하고, 찜찜해 하고 후회하는 마음들이여,

지난 일 돌이켜 생각함도 미혹된 일이요.

장래를 미리 점치는 것 역시 어리석은 일

만사를 눈앞에 닥칠 때까지 내버려 둔 채

조촐하니 마음 밭이나 가꾸자.“

청허당 홍주세洪柱世<한가할 때 閑中>라는 시 한 편이

가슴을 하고 두드리며 지나간다.

 

오늘 나는 그렇다 치지만, 어떤 사람은 답사에 참여하기 위해 도착하자마자

이틀이나 사흘 뒤 돌아갈 시간부터 걱정한다.

또 어떤 사람은 두고 온 가족 생각과, 일 걱정에 답사마저 뒷전이다.

왔으면 돌아가는 것, 잘 놀다 가는 것이 잘 사는 것이라는

아주 간단한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매 순간 허둥대며 다가올 내일만 걱정하다가 세월을 보내고

그 내일 속에서 헤매다가 돌아가는 것이다.

 

일찍이 에피쿠로스는 말했다.

일어나지도 않은 미래를 걱정하며 미리 두려워한다.” ,

성경에서도 말하고 있지 않은가?

그러므로 내일 일은 걱정하지 말아라.

내일 걱정은 내일에 맡겨라.

하루에 괴로움은 그날에 겪는 것만으로 족하다.”

<마태복음> 634절에 실린 글이다.

그렇다. 누누이 들었고, 구구절절 옳은 말이다.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먹을까 걱정하지 말아라.“

그런데도 가버린 과거와 올지 안 올지도 모르는 미래에다

온 생애를 걸고 있으니,

 

개미는 사람이 느끼지 못하는 날씨의 바뀜을

미리 알며 거기에 대처한다.

그러나 그는 햇볕 쨍쨍한 어느 날 먹이를 찾아나서는 길에

그 앞을 지나던 사람의 발밑에 깔린다.

그것이 그의 최후의 날이다.

걸어가는 사람의 궤도를 그의 지혜로써 미리 볼 수 있는가?

그가 그 자신의 운명을 좌우하는 조건들을 추적할 수 있겠는가?”

박동환이 지은 <서양의 논리, 동양의 마음>에 실린 글이다.

 

이미 지나가 버린 과거를 되돌아보고 후회한들 무슨 수용이랴,

하물며 오지 않은 내일을 미리 걱정한들 또 무슨 소용이랴.

알 수 없고, 알 수 없다. 그것만이 진실이다. 어떻게 살아야 할까?

미래도 과거도 아닌 오직 현재, 곧 지금只今을 잘 사는 것,

너무 준비하지 말고, 오늘, 이 시간을 살 것,

내가 살아야 할 삶이다.

 

201696(화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