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를 살아도 온 세상이 평화롭게
이틀을 살더라도 사흘을 살더라도 평화롭게,
그런 날들이 그날들이
영원토록 평화롭게“
김종삼 시인의 <평화롭게>라는 시다.
이렇게 살아야 하는데,
하루를 사는 게 고통이고,
이틀을 사는 게 고통이며, 사흘, 아니
전 인생을 고해 속에서 보내는 사람들이 많다.
세상이 단순하지 않고 복잡하기 때문인가.
아니면 복잡하지 않고 단순하기 때문인가?
이처럼 산다는 것이 어렵고 쓸쓸할 때
누군가 전폭적으로 믿을 수 있는 친구가 필요한 것이리라.
하지만 진정성이 사라진 시대라서 그런지
그런 친구들은 찾기 힘들고
오히려 친구들 때문에 세상이 떠들썩하고
그것을 바라보는 마음은 더없이 불편하다.
“위기의 순간, 믿었던 친구가 배신하자 ‘폭로’가 시작됐다.”
오늘자 신문에 실린 글이다.
그렇게 믿었던 친구도 손익계산에서 밀리게 되면
금세 모르는 체 하는 것이 인간의 마음이다.
예나 지금이나 모든 사람들의 마음이다.
이런 때 마음의 위안을 받을 책이
<어린 왕자>를 지은 생텍쥐페리의 <인간의 대지>다.
“나는 모든 것이 파멸되어 절망의 밑바닥에 닿은 것으로 믿었는데,
일단 단념을 하고 나자 평화를 알게 됐다.
그런 때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드러내고,
자기 자신의 유일한 친구가 되는 것 같다.
우리 속에서 우리 자신도 알지 못했던 그 어떤 본질적인 욕구를
채워주는 충만감보다 나은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인간에게 있어서는 모든 것이 모순矛盾 투성이라는 것을
사람들은 잘 알고 있다.
어떤 사람에게 마음껏 창작創作할 수 있도록
생활을 보장해주면 그는 잠들고 만다.
승리를 거둔 정복자는 연약해지고,
인심 좋은 사람도 부자가 되면 수전노守錢奴가되고 만다.“
생텍쥐페리 <인간의 대지> 중에서,
변하고 변하는 것이 인간의 마음이라서 그렇다.
나하고 생각이 같을 때만 친구이고,
나하고 생각이 다를 때는 적이기 때문일까?
아니다. 인간은 인간에게 서로 멀리 떨어진 섬이다.
알 것 같지만 알 수 없는, 그래서 우리들은 순간순간
지난 시간과 결별하며 새로운 시간을 맞는 것이다.
“각자는 그의 과거를 그가 잘 아는 책의 낱장들처럼,
그의 내면에 닫힌 상태로 가지고 있어서,
그의 친구들은 제임즈 시펄딩 혹은 찰스 버전과 같은
제목만 읽을 수 있을 뿐이다.
또한 반대 방향으로 가고 있는 승객들은 아무 것도 읽을 수가 없다.
‘단지 붉은 수염의 남자’
‘회색 옷을 입고 파이프를 피우고 있는 젊은이,
정도 밖에는“
버지니아 울프의 <파도>에 실린
이 말과 같이 살아가는 우리들,
그게 친구와 친구의 관계,
사람과 사람의 관계라면 인간 세상이 얼마나 삭막할까?
그래도, 그래도 하는 그 여운 때문에 삶은 계속되는데,
“친구란 수수께끼 같은 존재다.
안개처럼 멀리서만 볼 수 있을 뿐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불행해졌을 때라야만 비로소
‘내게도 친구가 있었지’ 하는 것을 알게 되기 때문이다.“
이 말이 어찌 그리도 사무치게 다가오는지,
2016년 9월 8일 (목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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