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적人跡도 없는 산길을 휘적휘적 걸어갈 때
가을이다. 문 밖을 나가 눈을 돌리는 곳, 여기저기가 다 가을이다.
형형색색의 아름다운 풍경들이 질서가 있는 듯 없는 듯
저절로 어우러진 풍요로운 가을의 한 모퉁이에,
도사린 듯, 웅크린 듯 그림자처럼 서 있는 슬픔,
그래, 가을이다.
“장사가 하루는 산놀이를 갔다가 돌아와 문 앞에 이르니까 수좌가 물었다.
“화상께서 어딜 다녀오십니까?”
장사는 “산에 좀 올라갔다 왔지.” 하고 대답했다.
“수좌가 어느 산에 갔다 왔습니까?” 하고 묻자.
“처음에는 향긋한 봄풀을 따러 갔다가
다시 하늘하늘 떨어진 꽃잎을 좇아 돌아왔지.” 하고 시적으로 대답했다.
이에 질세라 수좌도 한 마디 했다. “봄기운이 물씬 풍깁니다.”
장사가 그 말을 받아.
“그래도 시든 연잎에 가을 이슬이 뚝뚝 떨어지는 쓸쓸함보다야 낫다네.”
하고 대답했다.
“수좌가 정말 훌륭한 말씀 고맙습니다.” 하고 덧붙였다.
<고사古事>에 실린 글이다.
쓸쓸함이 오히려 어설픈 기쁨보다 마음 편할 때가 더 많다.
해가 뉘엿뉘엿 지는 어스름 녘에 저문 강변을 홀로 걸을 때나,
어둠이 서리서리 내리는 인적도 없는 산길을 휘적휘적 걸어갈 때
스산한 바람이라도 불고 지나가는 그 시간, 그 때 문득 가슴을 치면서 올라오는
아련하고도 막연한 그리움, 그것이 바로 설명조차 할 수 없는
안개 속 같은 쓸쓸함 인 것을,
“그대 따뜻함에 다가갔다가 그 따뜻함 무연히 마주 할 뿐,
차마 끌어안지 못하고 돌아왔습니다.
그대 쓸쓸함에 다가갔다가 그 쓸쓸함 무연히 마주할 뿐,
차마 끌어안지 못하고 돌아오는 발걸음이 어떤지는 말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내가 돌아오는 발걸음을 멈췄을 때,
내 긴 그림자를 아련히 광내며. 강 하나가 따라오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내가 거리에서 휘감고 온 바람을 벗었을 때,
이 세상에서 가장 이쁜 은방울 꽃 하나가 바람결에
은방울을 달랑달랑 흔들며 강물 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이후, 세상 적시는 모든 강물은 그대 따뜻함에 다가갔다가
따뜻한 무연히 마주칠 뿐, 차마 끌어안지 못하고 돌아서는
내 뒷모습으로 뒷모습으로 흘렀습니다.“
고정희 시인의 <그대 생각> 같은 그 그리움이
밀려오는 시간,
가을이 깊어가는데,,
2016년 9월 7일(수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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