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법인 우리땅 걷기 /신정일 대표님 글 모음12

길에서 길을 잃었고, 꿈길에서도 길을 잃었다.

산중산담 2016. 11. 30. 19:48

 

길에서 길을 잃었고, 꿈길에서도 길을 잃었다.

 

 

길에서 길을 잃어 서성거렸고, 길에서 길을 묻는 꿈을 꾸다가 깨어나니 꿈길에서 길을 잃었었다. 하룻밤 꿈속에서 오랜 나날이 쏜 살처럼 지나갔다는 것을 잠에서 깨어난 다음에야 안다.

그렇게 오랜 나날 길에서 생을 보냈으면서도 나는 항상 길에서 길을 잃고 길을 찾는다.

찾아도, 찾아도 잃어버리곤 찾아 헤매는 길, 그 길의 길목에 선지, 이미 오래다.

그렇다. 길은 항상 내 삶의 곁에 있었고, 그 길은 항상 나를 멀리하지도 않았으며, 나를 배반하지도 않았다.

길은 항상 정직함을 나에게 가르쳐 주었고, 길은 항상 나를 깨어 있게 하였다. 길은 항상 여러 개의 길을 예비해 놓고 나에게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그런데 그 길 중에 하나를 골라 가다가 길을 잃어버리고 오랫동안 또는 잠시 동안 헤매기도 하였다. 그렇게 헤매면서 나는 내가 살아 있음을 실감했고, 새로운 삶의 지혜를 깨달았다. 내게 삶이 허락하는 한 나는 길을 잃고 방황하면서 세상의 사물들을 만나고 또 만나다가 어느 날 나는 느닷없이 돌아갈 것이 것이다.

 

나온다. 운다. 그것이 인생이며, 하품한다. 간다. 그것이 죽음이다.” 오송 드 상세유가 <앨범에 있는 시>에서 말한 것처럼 누구나 오고 간다.

예나 지금이나 내일도 그러할 것이다. 그래서 안자는 <열자列子>천서편天瑞篇에다가 다음과 같은 글을 남겼을 것이다.

 

세상에서 죽은 사람을 돌아간 사람이라고 말한다. 죽은 사람을 돌아간 사람이라고 하는 말은, 곧 살아 있는 사람은 길을 가고 있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길가는 사람이 돌아갈 줄 모른다면, 이는 집을 잃고 방황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한 사람만이 집을 잃고 방황한다면 온 세상이 그를 그르다고 비난하겠지만, 온 세상이 집을 잃고 방황하고 있으니, 아무도 그른 줄을 모르고 있다.”

 

길을 찾았는가 싶으면 나는 다시 길을 잃고 헤매고 헤매는 삶, 언제나 그랬다. 아차, 하는 순간의 실수로 길을 잘 못 들어 길을 잃고 헤맨다. 그러다가 다시 원 위치에 돌아와 지나간 시간들을 더듬어 보는 그러한 시간이 인생사에 얼마나 다반사였던가? 중요한 것은 내가 길을 잘못 들어 그런 일이 벌어 졌는데, ‘심 봉사가 개천을 나무란다.‘는 격으로 내 탓이라고 여기지 않고서 세상을 탓하는 것이다.

 

오늘이 가면 내일이 오지만 그 또한 끝없이 오늘일 것이다. 오늘 헤맨 사람이 내일이라고 헤매지 않겠는가? “길은 잃을수록 좋다는 말을 좌우명처럼 간직하고 헤매고 또 헤매다가 돌아갈 것이다.

 

그림자는 돌아다보았자 외로울 따름이고,

갈림길에서 눈물을 흘렸던 것은 길을 잃었던 탓이고,

살아생전의 희비애락喜悲哀樂은 물결 같은 것이었노라.

 

매월당 김시습의 시 한편이 오늘 이 아침에 어찌 그리도 가슴 속을 파고드는지,

 

2016914(수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