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법인 우리땅 걷기 /신정일 대표님 글 모음12

이해의 기쁨은 슬픔이고 슬픔은 아름다움이다

산중산담 2016. 11. 30. 19:50

 

이해의 기쁨은 슬픔이고 슬픔은 아름다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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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나를 아무 조건 없이 이해理解할 수 있을까?

내가 누군가를 아무 조건 없이 이해할 수 있을까?

아니다. 아무리 마음을 다 준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건 가능한 일이 아니다.

누군가의 모든 것을 이해하고 받아들인다는 것,

그것은 현자賢者의 경지境地나 신의 경지에서나 가능한 일,

오히려 세상사에서는 이해에서 삼해가 더해져

오해誤解가 되는 것이 다반사이다.

그만큼 누군가를, 아니 무엇인가를 이해한다는 것이 어렵다는 이야기다.

사도 바울도 말했지 않은가?

나는 나 자신의 행동도 이해하지 못한다.” 라고,

 

밟아라, 밟아도 좋다. 네 발 속의 극진한 아픔을 나만은 이해한다.

두드려라, 두드려라, 네 가슴 속의 지극한 아픔을 나만은 이해한다.

고 말하지만 그것은 나의 지극한 말일 뿐 상대에게 전달되지 않는다.

 

너희가 나를 이해하는 경우란 거의 없었고,

나 역시 이따금 너희를 이해했었지.

다만 시궁창 안에서 서로 만났을 때만

우린 즉시 서로를 이해했었지.“

하이네의 시 몇 소절이다.

 

마음과 마음을 열어도, 눈빛과 눈빛이 통해도 알 수 없는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가 세상을 살아가는 내내

목구멍에 걸린 생선가시처럼, 손에 박힌 작은 가시처럼

사람의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것이다.

나이가 들면 들수록 더 나아질 것이라고 여기는 것은

나만의 생각일까?

 

다른 사람에 대한 이해,

모순과 아이러니를 이해할 수 있는 능력과 참을성,

감정과 이성의 조화,

자기중심주의에서 벗어난 자기 인식,

다른 사람의 말에 귀 기울일 줄 아는 능력,

균형 있는 시각,

삶에 대한 폭 넓은 이해,

사물의 양면성에 대한 인식, 인내,

삶의 아이러니에 대한 깊은 이해,

주변 사물과 사람에 대한 호기심,

세상과의 연관성 인식,“

<노년의 지혜>에 실린 이 말처럼 넓어지고 넓어져야 하는데,

현실의 세계에서는 그렇지가 않다는 것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불화다.

 

인간의 뇌는 세 종류가 있다.

하나는 스스로 이해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다른 사람의 교육을 통해 이해하는 것이며,

세 번째는 스스로도 다른 사람이 증명을 해주어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첫 번째는 극히 탁월하고, 두 번째는 탁월하며,

마지막은 완전히 불필요한 것이다.“

마키아벨리 <군주론>에 실린 글이다.

 

마키아벨리의 글을 읽다가 문득 떠오르는 생각,

아직은 가능성이 남아 있다는 것이다.

누군가를, 아니 온갖 사물을 이해할 수 있는 그런 나날이

올 것 같은 희망,

모든 것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모든 것을 다 비우는 일,

텅 빈 그런 시간 속에서 눈부신 해방의 시간에

이해의 기쁨은 슬픔이고 슬픔은 아름다움이라는

그 이해의 기쁨을 맞볼 수 있지 않을까?

 

2016916(금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