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소망. 나의 꿈
추석 연휴, 며칠간을 두고 오로지 책과 벗하며 살았다.
아침에 눈 뜨자마자 책부터 펼쳐보고
자판기로 글을 쓰다가
다시 서가에서 책을 꺼내 읽다 글을 쓰는 되풀이.
아침 여덟시부터 밤 여덟시까지 열두 시간을
밥 먹는 시간과 성묘 가는 시간 빼놓고는 책과 살았는데도
신기한 것은 책이 물리지를 않는다는 것이다.
세상의 그 어떤 친구보다 더 가깝게 지내며 산지 어언 수십 년,
지금은 너무 질려서 손사래를 치거나 눈이 아파서 못 볼 법한데도
물리지를 않는 것은 어떤 연유일까?
내가 나를 생각해도 모를 일이다.
다만 내가 책을 사랑하는 만큼 책도 나를 사랑한다는 것,
그래서 떼어놓고 싶어도 떼어놓을 수 없는 깊고도 깊은 정情이라는 것이
들어서 그러는 것은 아닐까?
나와 거의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이 세상에 더러 있다.
“새로운 책들은 우리들에게 얼마나 가득한 선을 베풀어 주는가! 젊은 이미지들을 말하는 책들이 하늘에서부터 내 바구니에 매일같이 가득히 쏟아져 내렸으면 싶다. 이 기원은 자연스러운 것, 이 기적은 손쉬운 것, 저 위의 하늘나라에서 낙윈이란 다만 거대한 도서관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받아들이는 것으로 족한 것이 아니라 속으로 품어야 할 일이다. 동화同化는 교육학자도 식물학자도 다 같은 목소리로 권하는 충고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너무 빨리 읽거나 너무 큰 덩어리를 삼키는 일은 삼가야 한다고 그들은 말한다. 쉽게 해결할 수 있을 만큼의 수없이 많은 조각으로 어려운 대상을 쪼개야 한다. 그렇다. 잘 씹고, 한 모금 한 모근 음미하며 마시고, 시의 한 줄 한 줄을 맛보아야 한다. 이 모든 계율은 아름답고 유익하다. 그러나 단 하나의 원칙이 이 계율들을 지배한다. 즉 무엇보다 먹고, 마시고, 읽고 싶은 욕망이 있어야 한다, 많이 읽고, 또 읽고 항상 읽고 싶은 욕망을 가져야 한다. 이리하여 나는 아침이면 내 책상 위에 놓은 책들 앞에서 독서의 신에게 굶주린 독자의 기도를 드린다.
‘우리들에게 오늘 일용할 굶주림을 주시옵고,,,,,,,“
가스통 바슐라르의 <몽상의 시학>에 시린 글이다.
이 세상에 어떤 것보다도 신선하고, 오래 묵었고,
수많은 사상과 이야기들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 책이다.
인류의 모든 정수精髓들이 다 그 속에 들어 있고,
세상의 모든 삶이 켜켜이 쌓여 있다.
그 책을 단순하게 읽는 것이 아니라 그 책 속에 내용들을 품고
동화되어야 한다는 것,
‘쪼개서 읽고. 음미하고, 마시라는 말,’
그 중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많이 읽고, 또 읽고 항상 읽고 싶은 욕망을 가져야 한다.’는 것,
그것을 ‘책’에만 국한 시킨 것이 아니라
‘산천을 유람하는 것은 좋은 책을 읽는 것과 같다.’
‘좋은 책을 읽는 것은 산천을 유람하는 것과 같다.’
책과 답사를 병행해 살아온 세월
내 인생을 관통해 온 ‘삶‘이 그것이었다.
이 아침에도 나는 책의 포로捕虜가 되어
그 책의 감옥에 갇혀 있다.
하지만 벗어나고 싶은 포로가 아니고
갇혀 있는 것이 즐거움이고, 환희인 포로,
그 책의 감옥이 내가 가장 사랑하는 장소이자
나를 살게 하는 가장 커다란 원동력이기 때문이다.
나는 바슐라르와는 조금 다르게 소망한다.
‘오래도록 책을 읽도록 맑고 깨끗한 눈과 정신,
그리고 오래도록 걸어도 아프지 않을 체력을 허락하소서.“
2016년 9월 24일(금요일)
'사단법인 우리땅 걷기 > 신정일 대표님 글 모음12'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가을을 타는 사람, 봄을 타는 사람. (0) | 2016.11.30 |
---|---|
풍경이 내게 말을 걸어오는 시간이 있다. (0) | 2016.11.30 |
위기危機 속에 기회幾回가 도사리고 있다. (0) | 2016.11.30 |
이 ‘삶’을 살고 있는 것은 누구인가? (0) | 2016.11.30 |
인생을 단순하게 살아야 하는데 (0) | 2016.11.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