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법인 우리땅 걷기 /신정일 대표님 글 모음12

풍경이 내게 말을 걸어오는 시간이 있다.

산중산담 2016. 11. 30. 19:54

 

풍경이 내게 말을 걸어오는 시간이 있다.

 

 

이 나라 산천을 수십 여 년 동안 떠돌면서 바라 본 풍경 중 숨이 멎을 만큼 감동을 받아 한 동안 미동도 하지 않고 바라보았고 가슴 속 깊숙이 새겨진 풍경은 어디일까?

통영의 장군 봉에서 바라 본 한려수도 일대, 북한의 백두산 자락의 삼지연, 합천 황매산 자락의 모산 재에서 바라본 영암사지 일대, 금강산에서 바라본 상팔담 부근, 북한 묘향산의 김정일 선물관에서 바라본 묘향산 등이다.

그처럼 가슴 깊이 각인된 수많은 절경 중에서, 나의 마음에 가장 오래도록 남아 있는 풍경중 한 곳이 창녕의 관룡산 자락의 용선대 부근이다.

1996년 처음 그곳에 가서 받은 느낌을 나는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관룡사 요사채의 담 길을 따라 한적한 산길을 20여분쯤 오르면 커다람 암벽위에 부처님 한분이 날렵하게 앉아있다. 대좌의 높이가 1.17에 불상의 높이가 1.81인 이 석불좌상은 높은 팔각연화대좌에 항마촉지인을 하고 결과부좌하고 앉아있는데 어느 때 사라졌는지 광배는 찾아볼 길이 없다. 그러나 석불좌상의 얼굴은 단아한 사각형이고 직선에 가까운 눈 오뚝한 코 미소를 띤 얼굴은 더할 수 없이 온화한 인상을 풍기고 있다. 우리 일행은 옛 사람들의 지혜와 부처에 대한 경이를 안고 배 바위에 올랐다.

 

반야 용선을 타고 극락 세계로 향하는 부처님

눈보라를 몰아오는 바람소리 들린다. 저 바람소리는 이 골짜기 저 골짜기들의 모든 흐르는 시냇물 소리들을 불러 모아 겨울 앙상한 나뭇가지들의 미세한 떨림 들을 한데모아 이곳으로 불어오는지도 모른다. 또한 저 바람 소리는 세상의 온갖 고난 세상의 온갖 슬픔들을 다 거두어 요원의 불길로 타오를 날을 기다리는 화왕산의 억새밭을 향해 달려오는지도 모른다.

나는 천년의 세월을 견디며 앉아있는 용선대의 석조여래좌상(보물295)아래 털썩 주저앉아 거대한 분화구처럼 펼쳐진 세상을 바라본다. 관룡산을 병풍삼아 눈 쌓인 작은 산들이 물결치듯 펼쳐나가고 영산의 진산 영취산을 돌아 계성, 옥천의 자그마한 마을들이 점점 히 나타난다.

누군가의 기원이고 간절한 소망인지도 모르는 채 천 원짜리 지폐 한 장이 꺼진 촛불아래 눈보라 맞으며 젖어 있고, 여기저기 던져진 동전들이 을씨년스럽다.

어쩌면 우리나라 부처님 중에 이보다 더 외롭게 혹은 드넓게 세상을 바라보는 부처님은 없을 것이고 반야용선을 타고 극락세계로 향하는 부처님 역시 찾아 볼 수 없을 것이다.

능선을 따라 오르는 산길엔 눈이 가득하다 아무도 밟지 않은 눈길에 발자국 남기며 간다. 우뚝우뚝 솟은 관룡산의 바위 봉우리들이 엷은 구름 속에 잠기고 희미하게 보이는 청룡암에서 누군가가 소리를 질렀다. 야호, 우리 역시 그 소리의 여운을 따라 산 속으로 구름의 산정 속으로 들어가고 있다. 멀리 산자락들이 올라갈수록 희미해지고 가파른 산길을 시나브로 시나브로 올라서니 정상이다.

헬기장으로 사용되었을 관룡산 정상에는 발목까지 눈이 쌓여있고 우리는 그 위에 앉았다. 구름 속에 얼핏 화왕산이 나타났다 사라지고 북쪽 의 저편에 있을 일연스님의 자취어린 비슬산은 보이지 않는다.

나뭇잎 스치는 바람소리가 눈 위에 앉아있는 내 가슴을 열고 들어온다. 나는 눈 덮힌 산위에서 내 살아온 나날을 뒤 돌아 본다. 그렇다 나는 이 산정에서 우우 휘몰아치는 바람소리 들으며 내가 걸어온 발자국 만큼이나 많이도 살았구나.” 깨닫는다. 얼마나 더 내 삶이 계속되고 살아있는 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시덥 지도 않은 일들 속에 파묻혀 있다가 내가 나를 깨닫게 될까?

그러면서 내가 올라온 높이만큼 내려갈 길 또한 많으리라 생각하지만 어쩌면 그때는 너무 늦었을 지도 몰라 내가 그리던 세상 내가 꿈꾸던 세상은 어쩌면 존재하지 않을지도 몰라... 그때 나의 뒷모습은 어떤 모습을 지닌 채 자연으로 돌아갈까? 체념일까? 아니면 초월일까?“

 

그때 이후 나는 얼마나 여러 번 그곳을 찾아갔던가? 갈 때마다 그곳의 풍경은 나를 새로운 생각들을 불러일으키면서 매혹시켰고, 다시 며칠 후에 찾아간다는 그 생각만으로도 내 마음은 설렌다.

 

우리가 어떤 풍경 앞에서 느끼는 아름다움의 광경은 그 풍경의 미적 완벽함에서 유래하는 것이 아니라, 그 감정을 사물의 그 같은 국면이 우리들의 본능이나 그 경향, 우리의 무의식적 개성을 구성하는 모든 것과 일치하는 데서 생기는 것이다.....미적 감동의 큰 몫은 바로 우리들의 자아에 의하여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미엘의 말은 항상 옳은 것이다. ‘하나의 풍경은 하나의 영혼의 상태다.”

알베르 카뮈의 <전집>에 실린 글이다.

아름답거나 인상 깊은 풍경은 그 풍경 자체로 사람들에게 말을 건넨다. 그래서 나는 감히 말한다. 풍경이 사람에게 말을 건다고,

그렇게 아름답거나 인상 깊은 풍경을 많이 본다는 것, 살아 있는 인간의 가장 완벽한 행복이리라.

 

그런 의미에서 풍경대한 보들레르의 글은 의미심장하다.

거의 초자연적인 어떤 풍경의 상태에서는, 아무리 예사스런 풍경일지라도, 우리가 눈앞에 있는 그 풍경 속에 삶의 깊이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그리하여 그 풍경은 삶의 상징이 된다.”

 

지치고 힘겨운 인생이라는 강을 건너는 도정에 아름다움이나 경탄을 자아내게 하는 풍경은 잠들어 있는 정신을 깨우고 삶의 자세를 새롭게 지니게 하는 놀라운 힘을 지니고 있다.

진정한 여행의 발견은 새로운 풍경을 보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눈을 갖는 것이다마르셀 프루스트가 말한 대로 새로운 눈과 마음을 가지게 하는 여행,

이번 여정에서 나는 어떤 놀라움에 사로잡히게 될까? 20169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