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과 책에서 돈이 나오냐?, 쌀이 나오냐?
장거리 도보 답사 시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
‘어딜 그렇게 가느냐?’ ‘누가 돈은 주느냐.’
‘돈 안 주는데 뭐 할라고 걷느냐’
‘돈 안 되는 일은 하지마라’ 라는 말이었다.
제주 올레, 지리산 둘레길이 개통되기 전
수많은 사람들이 길로 나오기 전인 2008년까지 길에서 들었던 말이다.
우리나라 사람들 대부분이 머슴 근성이 남아 있어서
‘세경(품삯)을 주지 않으면 일을 하지 않아야 한다.‘는
예전 풍습에 길이 들은 탓이었을까? 싶지만,
무엇보다도 이 세상의 모든 잣대가 ‘돈‘이라서 그런 것이다.
어디 걷는 것만 그런가, 문화운동도 그렇고, 이 땅을 시도 때도 없이
떠도는 것이나, 책을 읽고, 글을 쓰는 모든 것이 다 그러했다.
따르지도 않는 돈에 매달렸다가 어느 순간 포기해 버린 뒤부터
나는 줄곧 돈과는 먼 생활을 하면서 일부 사람들의 눈에는
세월만 허비하고, 아니 갉아먹고 있었다.
내가 세상에 무심한 것처럼, 세상 사람들도 나에게 무심했다.
일부 사람들, 아니 몇 사람들이 노래 가사처럼
‘나를 ’걱정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고,
우려의 글을 써주기도 했지만, 삶은 어차피 혼자서 살아가는 것이었다.
산악인이자 의사인 조석필 <태백산맥은 없다, 의 저자>씨의
‘먼발치로 본 신정일’이라는 글을 보자.
“나는 그가 하는 일을 잘 모른다. 오해하지 말라. 그의 업적을 폄훼하기 위한 수사(修辭)가 아니다. 내 말은, 그가 무엇을 통해 밥벌이를 하는 지 잘 모르겠다는 뜻이다. [칼의 노래]를 썼던 김훈 선생이 일찍이 설파하셨듯 ‘삶이란 돈과 밥으로서만 비로소 정당한 것’이며, ‘지나간 모든 끼니는 다가오는 한 끼니 앞에서 무효인 법’인데, 그가 하는 일의 어느 것도 끼니를 유효하게 하지 못하는 듯하니, 그가 하는 어떤 일도 얼핏 정당하게 보이지 않는다는 말이다.
나는 신정일이 황토현문화연구소(우리 땅 걷기의 전신) 소장이라는 것을 안다. 스무 해 전부터 지금까지 그가 가진 대부분의 힘과 기교를 이 땅을 걸어 다니는 일에 썼다는 것도 안다. 그러므로 그를 ‘길 위의 사람’이라고 불러도 좋으리라. ‘재야 사학자’ 혹은 ‘문화유산 답사가’라고 부르는 사람이 없지 않지만, 본질적으로 ‘신정일’ 하면 나는 황토 먼지 가득한 길을 땀 뻘뻘 흘리며 걷고 있는 우직한 인간을 떠올린다.
대체 그가 하는 일 가운데 밥벌이의 수단이 뭔가. 대답하라. 열심히 걸으면 쌀이 되는가? 아니다. 답사팀을 조직해 회비를 추렴하면 밥을 살 수 있는가? 별로 그럴 것 같지 않다. 그렇다면, 걸었던 이야기를 재료로 책을 쓰면 돈이 들어오는가? 짐작이지만, 오히려 돈을 쏟아 붓지 않나 싶다.
그렇다면 왜 하는가? 나는 모른다. 이 대목에서부터 내 정보와 상상력 밖의 영역이다. 예전에 우리도 등산할 때 “산에 가면 쌀이 나오냐, 밥이 나오냐”는 핀잔을 듣기는 했지만, 그것은 생계에 책임이 없던 시절의 취미활동에 관한 얘기다. 모름지기 인간이 가계를 책임져야 하는 성인이 되었다면 가치판단 기준을 달리 할 필요가 있는데… 가만, 혹시 그가 만석꾼 집안의 외동아들인지도 모를 일이다. 정말 그런가?
어쨌거나 신정일은 이 땅의 강과 산과 길을 바늘땀처럼 촘촘하게, 종횡으로 누비고 다녔다. 그 속에 들어앉은 문화유적과, 그 유적에 담긴 역사에 자신만의 돋보기를 들이대었고, 그것들을 모아 책으로 썼다.“
이런 우려를 받으며 살았지만 여태껏 밥은 굶지 않고, 살아 온 것, 그것은 내가 생각해도 신기하다 못해 기적 같은 일이다. 이 생에 태어나서 맨 처음 받은 이등병 월급, 690원, 마지막 받은 병장 월급 2400원이었다.
그 뒤로 한 번도 월급을 받지 않고 프리랜서라는 이름으로 살아온 세월이 오죽 하겠는가?
세상에 살면서도 세상과 일정부분 담을 쌓고 살아온 세월 속에 공부만하고 살았는데, 그렇다면 내가 한 공부는, 어떤 공부였는가?
“사랑하는 사람과 나눈 이야기가 잡담으로 분류되고, 수험공부나 취직에 도움이 되지 않는 공부는 잡학으로 분류된다. 마찬가지로 놀이, 취미, 간호, 기도, 산책, 명상, 휴식 이런 것들도 경제적인 측면에서 볼 때 생산적인 시간 속에 포함되지 못하는 잡일에 불과하다. 어디 그뿐인가. 연애, 아이 돌보기 같은 과거 중대사라 여겼던 일들조차도 금전과 직접 연결되지 않는다면 막대한 시간과 비용을 낭비하는 잡일로 치부된다. 생물학적인 성장과 노화는 경제를 최우선 하는 사회에서는 당연히 비경제적이고, 비효율적인 것으로 여겨진다.”
쓰지 산요치 <슬로 라이프>의 일부분이다.
이제야 안다. 잡학雜學, 어떤 학문도 제대로 한 우물만 파지 않고, 이 것 저것, 닥치는 대로 공부한 게 잡학이란 것, 모든 것이 돈으로 귀결되는 현대 사회에서 무용지물로 취급된다. 그런데, 그 잡학이 지금의 나를 살리는 학문이 된 것, 신기하지 않는가? 이렇게 나처럼 살아도 삶은 삶이고, 잘 먹고, 떵떵거리며 사는 삶도 그냥 삶은 삶이다. 한데 왜 그렇게 삶을, 인생을, 행복과 불행을 금 그어 놓고 살아가는지, 2016년 9월 28일 수요일
'사단법인 우리땅 걷기 > 신정일 대표님 글 모음12'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인생은 마음 내키는 대로 사는 것이 가장 귀한 것, (0) | 2016.11.30 |
---|---|
내가 ‘삶’에서 깨달은 것들 (0) | 2016.11.30 |
가을을 타는 사람, 봄을 타는 사람. (0) | 2016.11.30 |
풍경이 내게 말을 걸어오는 시간이 있다. (0) | 2016.11.30 |
나의 소망. 나의 꿈 (0) | 2016.11.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