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법인 우리땅 걷기 /신정일 대표님 글 모음12

인생은 마음 내키는 대로 사는 것이 가장 귀한 것,

산중산담 2016. 11. 30. 20:03

 

인생은 마음 내키는 대로 사는 것이 가장 귀한 것,

 

 

진나라 장한張翰은 제멋대로 살아 거리끼는 바가 없어서 당시 사람들이 강동江東의 완적이라 하였다.

그런 그를 제나라 왕 경이 불러 동조연東曺掾에 임명하자 장한이 같은 고을 사람 고영顧榮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천하의 혼란이 그치지 않고 있습니다. 대저 사해四海에 이름이 난 사람은 물러가기가 참 어려운 것입니다. 나는 본래 산림山林에 살던 사람이라서 당세當世에 아무런 기대를 버리고 산지가 오랩니다. 그대는 일이 있기 전에 현명하게 방지하고 일이 있은 뒤에 슬기롭게 조처하시기 바랍니다.”

그 말을 들은 고영이 장한의 손을 잡고서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나도 그대와 함께 남산南山의 고사리를 캐고 삼강三江의 물을 마시겠습니다.”

장한이 낙양洛陽에 있을 당시 마침 가을바람이 이는 것을 보자 오중吳中의 순채국과 농어회가 생각나자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인생은 마음 내키는 대로 사는 것이 가장 귀한 것이다. 무엇 때문에 벼슬에 얽매어 수천 리 밖으로 다니면서 이름난 벼슬자리를 추구할 필요가 있겠는가?

장한은 조정에 사직서를 쓴 뒤 수레를 타고 고향으로 돌아갔다.

<문기유림> 에 실린 글이다.

그때부터 남산의 고사리와 삼강의 물, 그리고 오중의 순채국, 농어회는 산림의 청아한 풍미를 상상하게 하는 것으로 전해져 오고, ‘순로지사라고 하면 고향 땅 고향 음식을 그리워 하는 용어가 되었다.

 

어떤 사람이 장한에게 물었다.

경은 한 세상을 방탕하게 지내면서 죽은 후의 명성은 생각하지 않는가?” 그 말을 들은 장한은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나에게는 죽은 후의 명성이 지금 이 순간의 한 잔 술보다 못하네.”

<세설선어>에 실린 글이다.

 

장한의 뜻을 따랐던 사람이 바로 조선의 대학자인 다산 정약용이었고, 그가 느낀 소회가 <여유당전서>에 다음과 같이 실려 있다.

 

“1797년 여름 석류꽃이 처음 필 무렵 때마침 내리던 부슬비도 개었다. 고향 소내에서 천렵하던 생각이 간절했다. 조정의 허락도 받지 않고 도성을 몰래 빠져나와 고향에 돌아왔다. 친척 친구들과 함께 작은 배에 그물을 서둘러 싣고 나가 잡은 고기를 냇가에 모여 실컷 먹었다. 그러자 문득 진나라 장한張翰이 고향의 농어와 순채국이 먹고 싶어 관직을 버리고 고향에 돌아갔다는 이야기가 생각났다. 그리고는 산나물이 향기로울 때라는 것을 깨닫고 형제, 친척들과 함께 앵자산 천진암에 들어가 냉이, 고비, 고사리, 두릅 등 산채들을 실컷 먹으며 사흘이나 놀면서 20여 수의 시를 짓고 돌아왔다. ”

 

아무 일이 없을 때라도 궁 안에서 어슬렁거리기라도 해야 불안하지 않던 당시 관료들과 달리 정약용의 가슴속에는 순진무구한 꿈이 가득 차 있었다. 그러한 의외성이 포항 장기와 강진에서의 긴 유배시절, 수백 권에 이르는 그 엄청난 저작을 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던 것이다.

 

인생을 마음 내키는 대로 사는 것이 어디 쉬운 일인가, 하지만

어차피 한 세상 사는 것, 되도록 내 의지대로 사는 것이

잘사는 것이리라.

잘 노는 것처럼 일하고 공부하고 살다가 가야지,

노는 것도 일하는 것처럼, 일하는 것을 고통이라고 여기며 일한다면

얼마나 그 일이 팍팍하겠는가?

일도, 공부도 첫 사랑과 연애하는 것처럼 한다면 얼마나 재미나겠는가?

 

2016930일 금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