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나라 조사서가 내게 말했다.
“나에게는 평생 세 가지 소원이 있습니다. 그 첫째는 이 세상 모든 훌륭한 사람을 다 알고 지내는 것이요. 두 번째 소원은 이 세상 있는 좋은 책(良書)을 다 읽는 일이요. 세 번째 소원은 이 세상 경치 좋은 산수山水를 다 구경하는 일입니다”라고 하였다.
이에 내가 말했다.
“어찌 그 세 가지 것을 다 볼 수 있겠소. 다만 가는 곳마다 헛되이 지나쳐버리지 않으면 됩니다. 무릇 산에 오르고 물에 가는 것은 도道의 기미機微를 불러 일으켜 심지心志를 활달하게 하니 이익이 적지 않습니다.”
그러자 그가 덧붙여 말하기를 “산수를 보는 것 역시 책 읽는 것과 같아서 보는 사람의 취향趣向의 높고 낮음을 알 수 있습니다”라고 하였다.
교산 허균이 지은 《한정록》 중 《학림옥로鶴林玉露》에 실린 글이다.
산수가 아름다운 곳에서 좋아하는 사람들을 만나고, 좋은 책을 읽으며 한 시절을 보내는 것은 더 없는 축복이리라. 그러나 그러한 소원을 이루고 사는 사람은 세상에 그리 흔치가 않아서 손에 꼽을 정도 일 것이다. 하지만 두 번째 소원까지는 아니라도 아름다운 산수가 빼어나게 아름다운 곳에서 좋은 책을 마음껏 읽고자 하는 소원을 이루는 것은 그렇게 어렵지 않은 일일 것이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 이 세상에서 살아가면서 왜 사는가에 대한 그 물음 을 깨닫는 일이리라. 그런데 그 깨달음이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다
어느 날이었다. 젊은 승려 한사람이 수행이 깊은 선사禪師에게 찾아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새로 들어온 사람입니다. 저에게 가르침을 내려 주십시오.”
선사는 그 승려의 물음에 다음과 같이 답했다. “그렇다면 그대가 들고 온 것을 내려놓게.” 그러자 젊은 승려가 “ 예? 손에는 아무것도 들려 있는 게 없는데요.?”
그 말을 들은 선사는 다음과 같이 답했다.“ 그래? 그렇다면 계속 들고 있게.” 그 말을 들은 젊은 승려는 큰 깨달음을 얻었다.
깨달음을 얻는 것도, 평생을 헤매기만 하다가 세상을 하직하는 것도 저마다 정해진 운명일 것이다. 하지만 개개인이 하나하나의 독립 된 우주宇宙라고 볼 때 그것 역시 한 우주의 몫이리라.
“찾아 헤매기만 할 것이 아니라 발견을 해야 할 것이며, 판단을 할 것이 아니라 보고 납득해야 할 것이며, 받아들이고 그 받아들인 것을 소화해 내야 한다. 우리 자신의 본성이 삼라만상과 유사하며, 삼라만상의 한 조각임을 깨달아야 한다. 그럴 때 우리는 자연과 진정한 관계를 맺을 수 있다.”
독일의 작가인 헤르만 헤세의 <유고 산문집과 비평> 에 실린 글이다.
맞는 말이다. 살다가 보니 좋은 사람을 많이 만났고, 좋은 책들을 많이도 만났다. 그리고 돌아다니다 보니, 자연의 기적 같은 신비로움에 눈을 뜨게 되었고, 어느 순간에 나도 하나의 자연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나도 자연도 자랑스럽다고 여겨지는 곳, 그러한 곳을 운명처럼, 행운처럼 여러 곳에서 만났다.
사람이 인위적으로 만들지 않았는데도 자연그대로의 모습이 어찌나 신비롭던지 입이 다물어지지 않아 멍한 채 바라보는 곳, 그러한 곳을 언제든 가고 싶을 때 갈 수 있다는 것, 그것만 해도 얼마나 큰 행운인가,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이런 저런 사소한 것들이 마음속에 스며들어와
매 순간 마음을 불편하게도 하고, 쓸쓸하게도 한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겪을 수밖에 없는 인간에 대한 불신, 깨어진 믿음,
그러한 것들이 무한한 세월의 흐름 속에선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을
너무 늦게야 깨닫는다는 것이다.
독일의 시인인 네안다는 그의 저서인 <생명을 가르치는 사람>에서
그처럼 허무하고 덧없는 인생을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인생은 꿈과 같고, 아무런 가치도 없는 물거품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가 매일 보고 있듯이 순식간에 지나가는 것이며 머무르는 장소가 없다.”
그럴 것이다. 모든 것은 잠시 머물다 시간의 흐름을 따라 흘러서 간다.
가고 오는 그 흐름에 몸을 내 맡긴 채 흐르는 세월을 벗하다 보면,
어느 날 문득 다시는 올 수 없는 그 먼 곳으로 돌아가지 않을까?
2016년 9월 29일 목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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