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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가을 운전면허 필기시험을 보러 간다고 하자
동생이 ‘형님은 머리가 좋으니 한 번만 읽어보면 합격할 것’이라고 해서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하지만 그래도 시험인데 하면서 여러 번 읽었는데,
2종 면허에서 턱걸이한 70점으로 겨우 합격했고,
세 번째 실기시험에 합격해서 2종 운전면허증을 받았다.
내 인생에 처음이자 마지막인 국가 공인 자격증을 획득한 것이다.
그 뒤로 운전을 한 번도 안했는데, 무사고라고 해서 녹색면허가 나오고
지금은 일종면허로 변경해주어서, 자랑은 아니지만
장롱면허 소리를 들으면서도 내 지갑에 꼭 넣어가지고 다니고 있다.
왜 이런 글을 쓰는가 짐작했을 것이다.
요즘 고위공직자 중의 한 사람인 우모 씨에 대한 이야기가 점입가경이다.
잘 사는 집에서 아들을 군대 보냈으면 짧은 기간이나마
세상에 쓴 맛 단맛을 보게 하는 것이
그 아들을 위해서도 좋았을 것인데,
그 아들을 자기 신분을 이용해서 경찰청 고위 운전병으로 들어가게 했다.
그렇게 해서 들어간 것의 가타부타를 논하자는 것이 아니지만
그 경찰청 담당자가 청문회에서 한 말이 가관이었다.
‘배우려는 자세가 남달랐고, 코너링이 굉장히 좋았다.“
<백경>의 작가 허만 멜빌은
<백경>을 쓰기 위해 고래잡이를 하는 포경선을 4 년간에 걸쳐 탔고,
그 경험을 통해 세계문학사상 백미 중의 백미인 <백경>을 집필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이 술회했다.
“나에게 있어 고래잡이 4년은 하버드 대학이자 예일 대학이었다.”
그렇다면 혼자서 독학한 나에게 가장 중요한 전환점은 어느 때였을까?
군대 생활 33개월 15일이 나에겐 대학이나 다름없었다.
혼자서 책 읽고, 혼자서 돌아다니고, 세상의 물정은 아무것도 모르고
친구하나 변변히 없이 보내다가 팔도에서 온 온갖 잡놈들을 다 만나고
그들과 부대끼며 하루에도 수백 번씩 ‘참자, 참자’ 하며
참고 보낸 철원의 군대생활이 없었다면, 과연 오늘의 내가 있었을까?
결국 고통과 고난의 세월이 연약한 화초 같은 한 인간을
이 우주 속에서 제 나름대로
살아가게 만드는 디딤돌이고 원동력이라는 것이다.
“그는 고통을 잊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고통은 그의 마음을 어둡게 하는 것이 아니라
그에게 지혜를 가르쳐 줄 것이다.“
J.R.R. 톨킨은 말했고, 스탕달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러나 나의 넋은 타지 않으면 견디지 못하여 고통스러워하는 불이다.”
“나는 병에게서 나의 철학을 얻어냈다.” 고 말한 니체는
“고통이야말로 정신의 최후의 해방자이다. 모든 저차원의 것으로부터”
라고 고통과 그 시련의 세월을 예찬하고 있다.
“지성을 길들여 영혼으로 만드는데
‘고통과 고난의 세계’가 얼마나 중요한지 아는가요?
가슴과 마음이 수천가지의 느낌과 고난을 겪는 그 세계 말입니다.”
아름다움은 영원한 기쁨이다“라는 명제를 남긴 존 키츠는 말했는데,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고난을 겪은 사람은 어질어지며 선해지고,
통찰은 시련과 고통을 통해 얻어진다.”고,
“역경에 처했을 때 가슴이 뛴다.”고 말한
니체의 말은 얼마나 지당한가?
자라나는 세대들에게 우리는 기꺼이 고통과 고난을 선물해야 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2016년 10월 6일 목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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