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법인 우리땅 걷기 /신정일 대표님 글 모음12

모든 것 인연 따라 생겨나고, 모든 것 인연 따라 사라지네.

산중산담 2016. 11. 30. 20:13

 

모든 것 인연 따라 생겨나고, 모든 것 인연 따라 사라지네.

새벽부터 일찍 일어난 내 마음을 휘젓고 들리는 소리,

가을 새벽 비 내리는 소리다.

이 비 그치고 나면 더 추울 테지,

문득 가슴 속을 파고드는 한기寒氣 속에 스치고 지나가는 사람 들, 몇 있다.

그리운 사람, 이미 마음을 거두고 멀어져 간사람,

이 세상에서 나와 인연因緣을 맺고 산 사람들이다.

나이 들어 갈수록 알 수 없는 것이 사람의 마음이다.

사람의 마음을 안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아니 가능한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오래 살아도 모르는 것이 사람의 마음인데,

하물며 불과 몇 년 동안 어쩌다 만나고 헤어지는 사람들의 마음을

어떻게 알 수 있으랴.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이런 일 저런 일 겪다가 보면

누구를 원망하기에 앞서 나 자신이 문득 처량하고 한심해질 때가 있다.

그렇게 쉽게 만나고, 쉽게 헤어지는 사람의 인연에 대해

옛 사람은 다음과 같은 글을 남겼다.

 

세간의 인연을 갑작스럽게 끊을 수 없으니,

때때로 성근 밥 먹고 물마시며 팔꿈치를 베고서

대그릇의 밥과 표주박의 물로 누추한 골목에서

지내려는 마음이라도 품어야 한다.

세상일은 갑자기 끊어 없앨 수가 없으니,

때로 부귀를 뜬 구름 같이 여기고,

봄바람에 기수沂水 물가에서 목욕하고

돌아오고자 하는 마음이라도 지녀야 한다.” <사암연어>에 실린 글이다.

 

옛 사람들은 그렇게 인연의 소중함을 얘기했건만

오늘날 사람들은 봄바람 불고 지나가는 것처럼

인연을 맺고 인연을 끊는다는 것을

이미 익히 알았고, 오래 전에 깨달았었다.

그래서 사람의 인연을 시절 인연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인생의 어느 시절을 잠시 스치고 지나가는 것이 사람의 인연이라는 것을

너무 잘 알면서도 그 잠시를 연연해하고, 그리워하고, 슬퍼하며

살아가는 것이 인생이라는 것, 그게 슬픈 것이다.

 

세상 사람들 억만이나 되어도

눈코가 서로 같지 않나니,

내 묻노니 이 무슨 인연으로

서로 이렇게 다르게 되었는가.

제각기 각각 서로 다른 소견 가지어

옳다 그르다 서로 따지네.

다만 스스로 제 몸 닦아라.

남의 일을 말할 겨를 없거니.“ <한산 시> 중 습득 시 327

 

나이 들면서 온갖 인연 부질없음 깨달으니,

옳다 그르다 나와 무슨 상관이랴.

봄 오자 날 붙드는 일 한 가지 있어.

꽃 피고 지는 소식에 마음을 기울이네.” <파라관청언>

 

이미 가버린 것은 가버린 것인데도

이 새벽 가을 빗소리 들으며 가버린 인연, 그리운 인연들에 대해

이런 저런 생각에 잠기는 나,

 

차가 익고 향이 맑은데, 손님이 문에 이르니 기쁜 일이요,

새는 울고 꽃은 지고 인적이 없으니 한가한 일이다.

천만년의 기묘한 인연은 좋은 책과 만나는 것 만한 것이 없다.”

<소창청기>를 떠올리자 내 앞에 펼쳐진 책이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고,

금세 온몸에 폭포수를 끼얹은 듯 정신이 서늘해지고 맑아진다.

그래 만나고 헤어지는 것, 그것도 이 세상에서의 운명이라 여기자.

 

모든 것 인연 따라 생겨나고

모든 것 인연 따라 사라지네.“

 

이것이 이 생에서 알아야 하는 가장 중요한 진리일 것이다.

 

20161025(화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