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어떤 사람을 만나고 사는가?
유유상종類類相從이라는 말이 있다.
‘같은 동아리끼리 서로 왕래하며 사귄다.’는 뜻으로
비슷한 인간의 모임을 비유한 말이다.
인간의 삶은 누군가를, 혹은 무엇인가를 만나면서
이어진다.
그 과정 속에 누구를 만나고 사느냐가 ‘삶의 질‘을 결정짓는 것이다.
그렇듯 만나고 사는 것, 유유상종에 대한 속담이 여러 가지가 있다.
“갈 까마귀는 언제나 갈 까마귀 옆에 앉는다.”
“닮은 자는 서로 모인다.”
“각자는 닮은 자를 좋아한다.”
그렇다면 당신은 어떤 사람을 어떻게 만나고 살고 있는가?
“나는 이미 오래전부터 누군가를 찾고 있었습니다.
내가 찾고 있었던 사람이 당신이며 우리의 만남은
운명이라는 게 분명하기 때문에 이렇게 말씀드리겠습니다.
내 머릿속에서 수천 개의 판막이 활짝 열렸습니다.
나의 말은 강물처럼 흘러 넘쳐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숨이 막혀 죽을 것입니다.
그러니 나를 말리지 마세요.”
도스토예프스키의 <백야> 속의 한 부분이다.
이런 만남이 필요하고, 이런 만남이 아무런 의심도 동요도 없이
계속 이어진다면 얼마나 좋을까?
우리가 이 세상에서 만나고 사는 것은
얼마나 기이하고 운명적인 만남인가!
태양계 속에서도 아주 조그마한 이 지구라는 광활한 영역 속에서도
대한민국이라는 이 작은 나라의 쓸쓸한 길에서
길손으로 우리가 만나게 되었다니,
그것뿐만이 아니다. 억겁의 시간 속에
그 짧은 시간 밖에는 살 수 없는 우리들이
이렇게 동시대에 태어나 같이 걷고 사랑하고
그리워하면서 살아간다는 사실,
진실로 기적 같은 일이 아닌가?
그런데 기이하고도 운명적인 그 만남의 시간이 그리 길지 않다는데
인생의 묘미가 있다.
특히 사람과 사람 사이의 만남이 더더욱 그렇다.
이런 저런 일, 지나고 나면 아주 소소한 일들로 인해 갈라서고
미워하고, 험담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인간의 삶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사람에 지치고 세상에 환멸을 느낄 때
자연으로 회구하는 지도 모르겠다.
“만남을 추구할 것, 모든 만남을, 인간에 관한 글을 쓰려고 하면서
어떻게 자연 경관으로부터 등을 돌릴 수 있단 말인가?
하늘이나 빛이 나를 유혹한다면 내가 어찌 사랑하는 이것들의
눈과 소리를 잊을 수 있단 말인가?”
알베르 카뮈가 <작가수첩>에서 말한 것과 같이 인간과 자연은 하나인데,
가끔씩 인간들은 스스로가 자연임을 잊고 살 때가 있어서
자연과의 불화, 세상과의 불화를 빚고 있다.
“두 인격의 만남은 두 화학물질이 만나는 것과 같다.
만일 둘 사이에 어떤 반응이 있다면 서로 변화한 것이다.“
칼융이 말한 것과 같이 좋은 만남은 세상 모든 사람들을 행복하게도 하고,
세상을 진일보 시키는 것인데,
가끔씩 엇갈린 인연 때문에 가슴이 미어지는데,
그 아픔도 모자라서 이상한 몇 사람의 잘못된 만남 때문에
온 세상이 소용돌이치고 있다.
“하늘의 그물은 넓고 성깃성깃 하지만 빠져 나아갈 수 없다.”
<노자>는 이렇게 말하고 있는데, 어찌할 것인가?
만나고 헤어지고 또 만나고 헤어지는 이런 저런 인연, 가까이 할 수도 없고,
멀리 할 수도 없는 것이 사람과 사람과의 인연이다.
그런 인연들을 그냥 먼 산 보듯, 소 닭 보듯 살아간다면 편할 것이다.
하지만 이런 저런 인연으로 얽혀 있어서 이도 저도 못하는 것이
인생이다.
그것이 가끔 마음속에 슬픔의 장막을 드리운다.
그렇지 않은가? 그대여!
2016년 12월 초하루 목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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