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법인 우리땅 걷기 /신정일 대표님 글 모음13

김유정의 가난, 우리들의 가난,

산중산담 2017. 4. 10. 13:00

 

 

김유정의 가난, 우리들의 가난,

 

 

일부를 제외하곤 모두가 가난했던 시절이 있었다.

그 가난을 벗어나기 위해 온갖 일을 해도 벗어날 길이 없던 가난했던 시절,

그 시절이 불과 몇 십 년 저쪽의 일이다.

이른 초저녁 멀건 시래기죽 한 그릇 먹고 일찍 잠들면

열시도 안 되어 배고픔으로 깨어

밤새 배가 고프다는 생각으로 잠을 못 이루던 시절,

그 시절이 바로 엊그제였다.

그런데, 그 시절들이 언제였느냐는 듯

너무 먹고 오히려 뱃속이 불안해서 잠을 못 이루는 사람들이

여기저기 부지기수다.

 

나라에도 흥망성쇠가 있듯 한 인간에게도 흥망성쇠가 있다.

<동백꽃> <봄봄>을 지은 김유정은 명문가였고 수천 석을 하던 부자의 후손이었다.

그러나 아버지 때 몰락하여 가난하였고, 그는 지독한 말더듬이였다.

연희전문에 들어간 김유정은 더 이상 배울 것이 없다고 말 한 뒤 자퇴했고,

그 시대의 명창인 박록주朴祿珠의 공연을 본 뒤 짝사랑에 빠졌다.

셀 수도 없이 연애편지를 썼지만 미동도 하지 않는 박록주에 실망한

김유정은 고향에 돌아와 방랑하면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지독한 가난 속에서 글을 쓰던 그가 죽기 열흘 전쯤에

친구인 안희남에게 쓴 편지를 읽을 때마다 얼마나 가슴이 아픈지,

 

필승아(안희남의 본명), 나는 날로 몸이 꺼진다. 이제는 자리에서 일어나기조차 자유롭지 못하다. 밤에는 불면증으로 하여 괴로운 시간을 원망하고 누워 있다. 그리고 맹열猛熱이다. 아무리 생각하여도 딱한 일이다. 이러다가는 안 되겠다. 달리 도리를 차리지 않으면 이 몸을 다시는 일이키기 어렵겠다.

필승아, 나는 참말로 일어나고 싶다, 지금 나의 병마와 최후의 담판이다. 흥패가 이 고비에 달려 있음을 내가 잘 안다. 나에게는 돈이 시급히 필요하다. 그 돈이 없는 것이다. 필승아, 내가 돈 백 원을 만들어볼 작정이다. 동무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네가 좀 조력해주기 바란다. 또다시 탐정소설을 번역해보고 싶다.

그 외에는 다른 길이 없는 것이다. 허니, 네가 보던 중 아주 대중화되고 흥미 있는 걸로 두어 권 보내주기 바란다. 그러면 내 50일 이내로 역하여 너의 손으로 가게 하여주마. 하거든 네가 극력 주선하여 돈으로 바꿔서 보내다오.

필승아, 이것이 무리임을 잘 안다. 무리를 하면 병이 더친다. 그러나 그 병을 위하여 무리를 하지 않으며 안 되는 나의 몸이다. 그 돈이 되면 우선 닭을 한 30마리 고아 먹어야겠다. 그리고 땅꾼을 들여 살모사, 구렁이를 10여 마리 먹어보겠다. 그래야 내가 다시 살아 날 것이다,. 그리고 궁둥이가 쑥쏘구리 돈을 잡아먹는다. , , 슬픈 일이다.

필승아, 나는 지금 막다른 골목에 맞닥뜨렸다. 나로 하여금 너의 팔에 의지하여 광명을 찾게 하여다오, 나는 요즘 울고 누워 있다. 모두가 답답한 사정이다. 반가운 소식 전해다오. 기다리마.“

318일 김유정으로부터

 

그 편지를 쓴 김유정은 열흘 쯤 뒤에 세상을 마감했다.

, , 그 슬픈 돈을 얻지도, 쓰지도 못하고,

 

어린 시절 지금도 기억하고 있는 풍경 중 하나가 구렁이를 삶던 풍경이다.

삼촌이 친구들과 남의 집 꿀통을 훔쳐다가 너무 많아 먹어 위장병이 생겨 아프게 되자 구렁이를 삶아서 삼촌에게 준 것이다.

누렇고 큰 구렁이를 솥에 넣어 삶을 때 나는 냄새가

마치 오징어를 삶을 때 나는 냄새와 비슷해서 놀랐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결핵에도 구렁이는 효험이 있어 마을 사람들이 해소기침을 하는 사람들은 구렁이를 잡아서 보약처럼 먹었었다.

김유정의 편지에도 등장하는 것을 보면 구렁이가 그 당시 사람들에게는 보약중의 보약이었던 것을 알 수 있다.

가난 때문에 서러웠던 사람이 어디 김유정 뿐이랴만,

김유정 작가는 갔어도 그의 문학은 온 나라 사람들에게 남았다.

춘천에 가면 김유정을 기념하여 만든 김유정역과 김유정 생가가 있어서 수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다. 그러나 그의 생애에 대해서 자세히 알고 있는 사람은 드물다.

인간은 경험한 것만큼만 쓸 수 있다.” 맞는 말이다.

그 당시는 누구나 가난했었다. 하지만 그 때는 오히려 서로 도울 줄도 나눌 줄도 알았다. 빈부격차가 심해진 요즘은 어떤가?

금수저네, 흙 수저네 하면서 그 계층 간의 편차가 너무 심해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어지고 말았다.

그렇다고 혁명을 할 수도 없고, 가진 자들의 재산을 강제로 빼앗을 수도 없고,

더구나 지금 이 시절은 말이 아니다. 전대미문의 사건이 일어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정신건강이 말이 아니다.

작가는 작품으로 자신을 대변하고 정치가는 올바른 정치, 좋은 정치로 국민을 잘 살게 하면 되는데, 그게 그처럼 어려운 일일까?

다시금 김유정의 글을 찬찬히 읽어보며 가난했던 시절을 돌이켜보아야겠다.

2016122일 금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