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법인 우리땅 걷기 /신정일 대표님 글 모음13

‘잃어버렸다’라고 말하지 말고, ‘돌려주었다.‘ 라고 말하라.

산중산담 2017. 4. 10. 14:31

 

 

‘잃어버렸다’라고 말하지 말고, ‘돌려주었다.‘ 라고 말하라.

 

 

매번 그렇지만 외국 여행을 떠날 때 가장 듣기 싫지만

어쩔 수 없이 듣는 말이 있다.

그곳은 소매치기가 많다.‘ ’도둑이 많다.‘ 가방은 꼭 앞으로 메라.’

뒤로 메는 것은 어서 가져가라는 것이나 같다.“

하루에도 수십 차례 그 이야기를 들어야 하루가 가는 여행,

이유인즉 다음과 같다.

요즘 여행할 때 현금을 제일 많이 가지고 가는 나라가

중국, 한국, 일본 사람들이란다. 유럽이나 다른 나라 사람들은

현금을 아주 조금 가지고 다니는데, 유독 동양 사람들이 많아 가지고 가서

소매치기나 도둑들이 가장 눈독을 들인다는 것이다.

하지만 나 역시 너무 가난하게 살았던 그 추억들이

나를 사로잡고 있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국내에서도

현금 십오만 원 이상은 꼭 지갑 속에 있어야 길을 나갈 때 안심이 된다.

그런 의미에서 여행 인솔자나 가이드들의 말이 십분 맞다.

모르는 것은 아니다.

여행을 가서 아무리 자그마한 것이라도 잃어버리면

여행 내내 찜찜하기 때문에 꼭 필요한 말이고,

여행을 편하게 하기 위하여 좋은 의미에서 하는 말이지만,

그런 말을 너무 자주 듣는 것은 말 그대로 고역이다.

여행지로 선택한 그 나라들이 그렇게 형편이 없는가? 아니면

여행을 떠난 나그네들이 여행에 흠뻑 빠져서 잃어버리기를 잘해서 그런가?

알 수는 없지만 하여간 그렇다.

여행에서 소매치기나 도둑에 관한 이야기를 너무 듣는 것은.

소리 소문도 없이 오고 가는 것이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 중에 한 가지가 소매치기나 도둑일 것이다.

그렇다면 옛날 사람들은 그 소매치기나 도둑을 통해서만이 아니라

잃어버림에 대해 어떤 생각들을 하고 살았을까?

결코 어떤 것에 대해서도 내가 그것을 잃어버렸다라고 말하지 말라.

다만나는 그것을 돌려주었다.’ 고 말하라.

너의 아이가 죽었는가? 되돌려준 것이다. 너의 아내가 죽었는가?

돌려 준 것이다. 또 너는 말한다. ‘사람들이 나의 땅을 빼앗았다

그러나 그것 또한 되돌려 준 것 뿐이다.

그러면 너는 말할 것이다. 너에게 그것을 주었던 자가

누구를 통해 너에게서 그것을 되찾아 가든

그것이 너와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그것이 너에게 맡겨져 있는 동안 마치 남의 물건을 대하듯

그것을 대하라. 마치 여행자가 여관을 대하듯이.”

이것이 바로 스토아학파 철학자들이 추구했던 아파테이아(apathaia),

어떤 외부적인 상황 속에서도 동요하지 않는 정신의 의연함을 뜻한다,

물건만이 아니고 죽음까지도 되돌려 준 것, 돌아가는 것으로 보았던 것이다.

지혜로운 사람은 필요한 것을 바라긴 하지만 결코 집착하지 않으며,

어떤 경우에 처하더라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다.

일어날 일이 일어난다. 그러므로 조심은 하되 너무 거기에 매어 있으면

가장 소중한 그 소중한 지금, 곧 현재를 잘 살지 못하는 것이다.

만일 네가 깨어 있지 않으면 내가 도둑처럼 너에게 올 것이다.

그리고 너는 내가 언제 올지 결코 알지 못할 것이다.”

요한묵시록에 실린 글이다.

나를, 본연의 나를 찾기 위해 떠나는 여행에서 자기에 대한 생각보다

다른 타인들, 더구나 불청객들에 대한 이야기를 너무 남발하는 것,

여행사들도 가이드들도 좀 자제했으면 한다.

여행만이 그런 것이 아니고 매사에 삶에서도 그렇다.

도둑은 재산을 존중한다.

그들이 남의 재산을 자기네들의 것으로 만들려고 하는 것은

더욱 안전하게 그것을 존중하기 위해서이다.”

G.K. 체스터튼의 말은 그런 의미에서 의미심장하다.

단지 그 장소에서 다른 장소로 전이해간다는 것,

더 넓게 인류애 적으로 생각하면 그렇다는 것,

그것이 바로 도둑이나 소매치기들의 면죄부이고

고금을 통해 세상의 재물이 오고 가는 이치가 아닐까?

중요하고 또 중요한 것, 잃어버리는 것도 내 불찰이다.

내 것을 내가 지키는 것, 이것도 역시 자력갱생일 것이다.

 

 

2017130일 월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