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법인 우리땅 걷기 /신정일 대표님 글 모음13

고향이 그리운 섣달그믐 새벽

산중산담 2017. 4. 10. 14:29

 

고향이 그리운 섣달그믐 새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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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전주에 정착한 것이 1980년 가을이었다.

이곳에 정착하고서 내 인생에 얼마나 많은 일들이 스치고 지나갔는가?

그래서 그런지 내가 태어난 고향인 진안 백운에서보다

전주에서 더 많은 날을 살았을 뿐만 아니라, 더 많은 추억들이 켜켜이 쌓인 곳이

전주라는 곳이다.

하지만 전주만 그런 곳이 아니다? 이 나라 이 땅을

떠도는 것이 일상적인 일이 되다가 보니, 내가 머무는 곳을 내 고향,

내 집이라 여기기 시작했고, 어느 때부턴가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도

어떻게 보면 하숙집이나 다름없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마음에 드는 길을 만나면

얼마 동안은 온 세상이 고향인 것처럼 보이기 마련이다.”

헤르만 헤세의 말이다.

중요한 것, 지금 내가 머무는 곳이 마음에 들어야 하고,

마음에 드는 곳에 안주해 있을 때 마음이 평안한 것이다.

마음이 불안하거나 마음을 잡지 못할 때 어딘가로 떠나고 싶은 생각이 든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나는 항상 마음이 좌불안석坐不安席인 사람이고,

그래서 이 나라 이 땅을 떠돌고 있는지도 모른다.

집을 나가는 것이 이런 경우에 할 수 있는 최선이에요.

인간은 반대쪽으로 결연히 도약해야만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는 법이거든요.

인간은 자신이 떠난 고향을 찾기 위해서 타향으로 가야만 해요

프란츠 카프카의 말이다.

자신이 떠난 고향을 찾기 위해 타향으로 간다.‘

역설적인 말이지만 그 말은 맞고, 그래서 고향은 언제나 고향이며,

타향에 있을 때만이 고향에 대한 그리움의 깊이를 정확하게 알 수 있다.

<푸른 꽃>의 저자 노발리스도 말했지 않은가?

자연의 모든 압력은 더 높은 고향에 대한 추억이다.“ 라고,

우리는 고독하게 태어났다. 그것은 과거에 살 사람이나,

미래에 살게 될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고독하게 살다 고독하게 죽는 것이다.

우리는 서로가 낯선 사람이며, 끝내 이해하지 못한다.”

토마스 울프는 <그대 다시는 고향에 못 가리>에서 이렇게 말한 뒤

다음과 같이 충고한다.

더 큰 지식을 얻기 위해서 네가 알고 있는 이 땅을 잃어버릴 것,

더 큰 삶을 갖기 위해서 네가 가진 삶을 잃어버릴 것,

더 큰 사랑을 찾아서 네가 사랑하는 친구들을 버릴 것,

고향보다도 더 정답고 이 지구보다 더 큰 사랑을 발견할 것.”

자신만의 고향이 아니고 더 큰 우주적 고향과 더 큰 마음을 갖기를 권한 뒤

그는 이어서 자신에게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나 자신을 최대한도로 사용할 것,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사용할 것,

젖을 짜되 아무 것도 남지 않게끔 마지막 한 방울까지 짜낼 것

고향, 인간에게 어쩌면 숙명적인 귀소본능을 자아내게 하는 고향,

특히 추석이나 설이면 고향의 이모저모, 구석구석이 사무치게 그리울 때가 있다.

지금이 딱 그런 시간이다.

하루 종일 책 속에 파 묻혀 있다가, 하루를 정리하려는 시간,

혹은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는 신 새벽에 깨어났을 때

문득 떠오르는 고향 풍경과 함께 지금은 가고 없는 사람들의

오래고 오랜 모습들이 활동사진처럼 스치고 지나간다.

고향, 누군가가 말했지, “흙바람 속에 우리의 고향이 있다.”,

바람도 없는 섣달, 그믐 새벽,

꿈속에서라도 한달음에 달려가고픈 고향이 바로 지척인데,

나는 이렇게 고향을 그리워만 하고 있으니,

 

 

2017127일 금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