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법인 우리땅 걷기 /신정일 대표님 자료 모음

보석 같은 섬, 소록도와 홍매화 흐드러진 선암사를 거닐다.

산중산담 2017. 4. 10. 14:37

 

보석 같은 섬, 소록도와 홍매화 흐드러진 선암사를 거닐다.

 

 

매화꽃, 산수유 꽃 흐드러지게 피는 삼월 그림처럼 아름다운 섬으로 알려진 고흥의 소록도와 거금도, 그리고 고흥의 능가사를 답사합니다. 그 다음 날에는, 홍매화가 절정을 이룬 순천의 선암사와 금둔사에서 홍매화에 취하고, 태백산맥의 무대인 벌교 일대를 걷고 돌아 올 예정입니다.

봄 날 아침이었네, 누가 와서 가자고 했네.

자꾸만 자꾸만 가자고 했네.“

이렇게 노래한 이성복 시인의 <봄 날 아침>이라는 시를 떠올리며 남해 바다에 떠 있는 아름다운 섬과 매화 향기에 흠빡 취할 여정에 참여를 바랍니다.

뱀골재를 넘으면 지도상에 사람의 위 같기도 하고 주머니 같기도 한 고흥반도에 접어들고 고흥의 야트막한 산 너머로 보이는 소록도를 두고 한하운 시인은 시 한편을 남겼다.

신을 벗으면

버드나무 밑에서 지까다비를 벗으면

발가락이 또 한 개 없다.

앞으로 남은 두 개의 발가락이

잘릴 때까지

가도가도 붉은 전라도 길

한하운과 그의 동료들, 육신이 짖이겨지는 절망과 한의 세월 속에 자리했던 소록도를 배경?막?쓰여 진 이청준의 ?당신들의 천국?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 이 실려 있다.

내 말은 결국 같은 운명을 삶으로 하여 서로의 믿음을 구하고 그 믿음 속에서 자유나 사랑으로 어떤 일을 행해 나가고 있다 해도 그 믿음이나 공동운명의식은, 그리고 그 자유나 사랑은 어떤 실천적인 힘의 질서 속에 자리 잡고 설 때라야 비로소 제값을 찾아 지니고, 그 값을 실천해 나갈 수 있다는 이야깁니다.”

소록도少鹿島는 전라남도 고흥군 도양읍 소록리에 속한 섬으로 고흥반도 녹동항에서 남쪽으로 약 600m 지점에 있다. 남쪽은 거금도와 인접해 있고, 그 사이에 대화도·상화도·하화도 등 작은 섬이 있다. 지형이 어린사슴과 비슷하여 소록(小鹿)이라 했다고 한다. 본래는 군의 금산면에 속했으나, 1963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오마리와 함께 도양읍에 편입되었다.

이 소록도에 한센병 환자들을 집단 수용시켰는데, 그 기원은 구한말 개신교 선교사들이 1910년 세운 시립나 요양원에서 시작되었다. 1916년에는 주민들의 민원에 따라 조선총독부가 소록도 자혜병원으로 정식으로 개원하였다. 일제 강점기에는 한센병 환자를 강제 분리·수용하기 위한 수용 시설로 사용되면서, 전국의 한센병 환자들이 강제 수용되기도 하였다. 당시 한센병 환자들은 4대 원장 슈호 마사토(周防正秀)가 환자 처우에 불만을 품은 환자에게 살해당할 정도로 가혹한 학대를 당하였으며, 강제 노동과 일본식 생활 강요, 불임 시술 등의 인권 침해와 불편을 받았다. 소록도내에는 일제 강점기 한센병 환자들의 수용 생활의 실상을 보여주는 소록도 감금실과 한센병 자료관, 소록도 갱생원 신사 등 일제 강점기 그대로 보존되어 있는 역사적인 건물과 표지판 등이 많이 남아 있다.

소록도 병원은 해방 후에도 한센병 환자의 격리 정책을 고수하여 환자들의 자녀들이 강제적으로 소록도 병원 밖의 학교에서 공부해야 하였으나, 이후 한센병에 대한 연구가 진척되고, 환자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완화되면서, 한센병의 치료, 요양 재생, 한센병 연구 등을 기본 사업으로 하는 요양 시설로 변모하였다. 또한 1965년 부임한 한국인 원장에게서 과일 농사, 가축 사육에 종사하여 자신의 힘으로 살 수 있도록 경제적인 배려를 받았으며, 일부는 소록도 축구단을 결성하여 한센인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완화하였다.

섬의 주민은 국립 소록도 병원의 직원 및 이미 전염력을 상실한 음성 한센병 환자들이 대부분이며, 환자의 대부분은 65세를 넘긴 고령이다. 환자들의 주거 구역은 외부인이 접근할 수 없도록 차단되어 있다.

삼림과 해변이 잘 보호되어 있어서 정취가 뛰어나며, 관광지는 아니지만, 걸어 다니면서 섬 주변을 둘러볼 수 있게 길이 잘 닦여 있다.

2007922일 고흥 반도와 소록도를 잇는 1160m의 연육교 소록대교가 개통하여, 육상교통로가 열렸다.

이곳을 무대로 소설가 이청준은 <<당신들의 천국>>을 썼는데, 일제 말에서 1970년대까지를 배경으로 삼고 있다. 조선일보 기자였던 이규태의 빼어난 취재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이 소설은 살아 있는 고전으로 평가받고 있다.“ <새로 쓰는 택리지> 전라도 편에서

태고종의 본산 선암사

조계산의 동남쪽 기슭인 쌍암면 죽학리에는 태고종의 본산이며 보물 400호로 지정된 쌍무지개 다리, 즉 승선교(昇仙橋 보물 제400)로 유명한 선암사(仙巖寺)가 있다. 백제 성왕 때인 서기 529년에 아도화상(阿度和尙)이 지었던 그 근처의 한 암자에서 역사가 비롯되었고 고려 때에 대각국사(大覺國師)의 힘으로 크게 중창되었다고 알려진 이 절은 일주문팔상전대웅전원통전불조전 같은 32채의 건물들도 아름답지만 병풍처럼 둘러쳐진 조계산의 풍광을 보배로 삼고 있다.

고려 명종 때의 문신인 김극기는 다음과 같은 시를 남겼다.

적적한 산골 속 절이요, 쓸쓸한 숲 아래의 중일세.

마음 속 티끌은 온통 씻어 떨어뜨렸고

지혜의 물은 맑고 고용하기도 하네.

그래서 그런지 선암사의 뒷간은 아름답기로 이름이 높은데, 이 뒷간을 각별하고 은밀하게 아끼던 건축가 김수근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크고 아름다운 측간이라고 말하였다. 절의 들목에 비껴 있는 삼인당(三印塘)은 통일신라시대 달걀꼴로 쌓은 연못으로 가장자리가 돌로 논두렁같이 되었으며 가운데에 섬이 있는데, 호남지역 전통 연못의 원형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그런가 하면 이 절의 깊숙한 서고에는 대각국사가 그린 선암사 설계도가 있고, 평생에 걸쳐 방석 만드는 일을 기도하는 일로 여기고 손일을 하다가 오래 전에 세상을 떠난 해봉(海峰)스님이 삼과 왕골로 엮었다는 해진 방석도 있다. 이 방석은 조형과 무늬가 우리나라 전통예술에 맞닿아 있으면서도 현대감각을 휘어잡을 만큼 아름답다.

봄이 가장 아름다운 선암사에는 몇백 년 나이를 먹은 매화나무 수십 그루와 영산홍 아홉 그루가 있다. 그래서 해마다 3월 하순에서 4월이면 온 경내가 매화 향기로 그윽하고, 5월이면 동백과 옥잠화영산홍 꽃의 그 붉으면서도 빨갛지 않은 빛깔이 답사객의 마음을 사로잡으며, 9월이면 상사화가 절 구석구석에 피어나 마음을 시리도록 아프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