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법인 우리땅 걷기 /신정일 대표님 자료 모음

부산에서 시작되는 해파랑 길

산중산담 2017. 4. 10. 14:55

 

 

부산에서 시작되는 해파랑 길

 

 

세 번째로 해파랑 길을 걷기 위해 떠나야 될 신 새벽에 해파랑 길의 초입에 있는 부산을 생각한다.

부산은 동래도호부에 딸린 조그만 포구였는데, 그 작은 부산포구가 강화도조약으로 개방된 것은 1876이었다. 일본이 만들어낸 전형적인 식민지 항구도시 부산이 개항되었을 때의 인구는 3,300여 명 남짓 되었다고 한다. 현재 부산의 중심지구인 남포동광복동중앙동대교동 일대가 그 당시에는 푸른 물이 넘실거리는 바다였다.

1875년의 부산을 지켜보았던 일본 거류민단의 마지막 단장이었던 오오이께 가다스께(大池紡助)192611월에 쓴 ?부산 개항 50주년 회고록?에서 그 당시를 다음과 같이 회상한다.

“1875년의 부산의 모습은 쓸쓸하기 짝이 없었다. 대창동남포동 일대는 그 뒤에 매축한 곳으로 그때는 모두 바다였다. 번화가로 알려진 광복동 같은 곳도 그때는 한복판에 도랑이 있고 풀만 무성하여 여우라도 나올 듯했다.”

또한 그 무렵 일본인 거류민단을 위해 은행을 설치했던 오오꾸라 기하치로(大倉喜八郞)도 그와 비슷한 기록을 남겼다.

“1876년에 내가 첫발을 들여놓은 부산항은 흰 모래와 푸른 솔의 해안에 종일 파도가 밀려왔다 갔다 하는 것밖에는 아무것도 없는 작은 어촌이었다. 육지에는 한국인들이 쇠뼈와 쇠가죽을 햇볕에 말리고 있었을 뿐이다. 배를 매어둘 만한 부두조차 없었다.”

한편 영국 왕립지리학회 회원으로 1894년과 1895년 중국일본한국을 답사했던 이사벨라 버드 비숍 여사는 부산과 낙동강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나가사키항에서 한국의 부산항까지는 증기선으로 15시간밖에 걸리지 않았다. 부산에서 11.2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입구가 있는 낙동강은 수심 1.5미터의 물을 거슬러 밀양에서 80킬로미터를 증기선으로 항해할 수 있고, 수심 1.2미터의 물을 거슬러 정크(junk)선으로 사문까지 160킬로미터를 더 갈 수 있으며, 거기서는 짐을 가벼운 견인 포트에 옮겨 싣고 연안으로부터 274킬로미터 떨어진 상진까지 올라갈 수 있다.

이 이용 가능한 수로와, 많은 논란을 불러 일으켰던 서울-부산간 철도가 곧 이루어지리라는 어렴풋한 전망과 더불어 부산은 상업의 중요한 중심이 될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

부산을 포함하고 있는 경상도 지방은 8개의 지방(현재는 13) 가운데 인구가 가장 많다. 또 경상도 지방은 전라도의 일부 지역을 제외하면 현재 한국에서 가장 번창하고 있는, 비옥한 지방임이 확실하다.

나는 증기선 갑판의 먼 거리에서 한국인들을 처음 보았다. 한국인들은 참신한 인상을 주었다. 그들은 중국인과도 일본인과도 닮지 않은 반면에, 그 두 민족보다 훨씬 잘 생겼다. 한국인의 체격은 일본인보다 훨씬 좋다. 평균 신장은 163.4센티미터이지만, 부피가 큰 흰 옷 때문에 키는 더욱 커 보인다. 또 벗고 있는 것을 볼 수가 없는 높다란 관 모양의 모자 때문에도 키는 더 커 보인다.”

이사벨라 버드 비숍여사의 글 속에서 오늘날의 한류문화를 유추할 수 있다. 왜 일본 여자들이나 중국 여자들이 한국 남자들에 열광하는 지를,

지금으로부터 150여 년 전에도 한국 사람들은 키도 컸지만 생김새도 두 나라 사람들보다 훨씬 더 잘생겼음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부산의 명물 시장인 자갈치 시장을 두고 부산은 몰라도 자갈치 시장은 안다고 하는 말이 있다. 자갈치시장은 1930년대 말에 두 차례에 걸친 바다와 자갈밭 매립으로 마련된 터전이다. 매립하기 전에 워낙 자갈밭이 많았던 곳이어서 자갈치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전해진다.

그러한 부산이 오늘날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가 되면서 국제적인 항구도시로 발달한 것이다.

이 도시, 부산에서부터 시작되어 태백의 천의봉 너덜샘과 황지로 이어지는 길이 낙동강 천 삼 백리 물길이고, 오륙도에서 시작되어 통일전망대와 두만강의 서수라로 이어지는 길이 해파랑 길이다.

그 길을 걷기 위해 2017224, 즉 오늘 밤에 출발한다고 생각하니, 여러 생각들이 겹쳐서 일어난다.

아무도 이 길이 만들어질 것이라고 여기지 않았던 시절에 우리 땅 걷기 도반 열다섯 명과 함께 걸었던 이 길이 우리나라 국가에서 가장 긴 장거리 도보답사코스가 되고, 지금은 너도 나도 걷고 싶은 길의 명소가 되었다.

얼마나 신기한 일인가? 생세르반테스가 지은 <돈키호테>와 같은 황당하다고 많은 사람들이 여겼던 일이 현실이 되었고, 그 길을 다시 걷게 되다니,

함께 걸었던 도반들, 그 길을 만들어준 국가에 대해 고맙고 또 고마울 뿐이다. 천천히 걸으며 다시 보게 될 동해 바닷가로 이어진 해파랑 길이 그 사이 얼마나 변하고 변했을지, 나의 생각은 또 얼마나 변했는지, 비교하고 관찰하며 한가하게 걷고 또 걸어가리라 마음먹는다.

함께 해파랑 길뿐만 아니라 이 나라 이 땅을 걷고 또 걸어갈 <길 위의 인문학 우리 땅 걷기> 도반들에게 심심한 감사를 봄의 초입에 보내며 다시 먼 길을 나선다.

 

 

2017224일 금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