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연을 넘어 선 사랑과 우정,
연암 박지원 선생과 박제가, 그리고 유득공, 등과 오랜 친구를 나누며 좋은 문장을 <청장관전서>라는 전집으로 남긴 사람이 이덕무다.
<전집> 중 ‘아정유고’에 그 당시 그가 친교를 나누었던 사람들에게 보낸 편지글이 실려 있다. 그 중 그의 조카인 심계 이광석에게 보낸 편지글이 절절하기가 그지없다.
“낮에 무슨 생각을 골똘히 하고나면 밤에 반드시 꿈을 꾸게 되는 것은 자연의 증험일세. 내 방금 심계의 시詩를 펴 놓고 오랫동안 감탄하던 중 종 아이가 문 밖에서 인기척을 하더니 심계의 기기奇奇한 편지를 전해주는구려. 이 어찌 낮에 생각한 것을 밤에 꿈꾸는 것과 같은 것이 아니겠는가?
봄비가 때맞추어 오자 남산南山은 푸른빛이 생동하고, 온갖 새 소리가 평화스러우니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이덕무가 조카인 심계의 편지를 받고 봄날에 꾼 꿈이 현실과 이어지는 것을 피력한 글이다. 삼촌과 조카사이인데, 가장 가까운 벗이나 사랑하는 여인에게 보내는 편지보다도 더 은근하고 진솔한 것은 그만큼 서로 마음과 마음이 열려 있기 때문일 것이다.
“심계가 찾아오기를 기다리지 않는 날이 있었겠는가? 심계의 편지가 도착하자 눈이 환히 뜨이고, 마음이 명랑해지며, 글자마다 정성스러워서 아무리 글이지만 얼굴을 대한 것 같구려,”
“그날 서로 만나 대화한 것이 마치 번갯불처럼 빨랐네. 떠나온 사람이 이토록 연연戀戀하니 보낸 사람의 마음을 미루어 짐작하겠네.”
“강 하나 사이건만 멀기가 마치 하늘 끝만 같구려. 편지가 오니 기쁘기 이를 데 없네.”
“생각하던 중에 글을 받으니 심히 사랑스러워서 소매 속에 간직하여 두고 싶구려.”
삼촌과 조카의 사이가 이렇게 그리움과 믿음으로 가득 차 있을 수 있을까? 그렇게 좋아하는 조카지만 의견이 다를 때에 보낸 편지는 약간 매섭다. 편지에 서운함을 표현한 것을 보면 이덕무의 올 곧은 성격을 엿볼 수 있다.
“덕무가 두어 달 내에 이 글을 읽어서 거의 경박輕薄한 사람이나 면해보려 하는데, 우선 심계를 위하여 먼저 빌려 주니, 심계도 1권, 2권을 읽고 반드시 먼저 보내 주게.
그러나 심계는 스스로 어리석은 이 아저씨를 안다고 하면서 어찌 속인俗人들의, 새것을 빌려주는데 인색하다느니 인색하지 않다느니 하는 것으로써 나를 논하는가? 남에게도 빌려볼만한 책이 있으면 반드시 빌려 보는 것인데, 하물며 종족 간에 책이 있어서 서로 빌려보는 것임에랴?
게다가 나에게 책이 있어서 심계가 빌려보는 것이야. 말할 나위가 있겠는가? 어찌 이처럼 구차한 말로 나를 시험하는가? 심계의 이런 점은 내가 좋아하지 않네.”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그 편지 속에 진한 그리움과 사랑이 이슬방울이 풀잎에 맺히듯 송알송알 달려 있는 것 같다.
“심계는 어찌 그리도 말 한마디를 아껴서 나의 긴 편지에 답을 하지 않는가? 내일은 내가 남양南陽(지금의 화성 시) 갑신의 모임에 가려 하는데, 원만한 자리가 되지 못할 것 같네. 봄 날씨가, 계속 비가 왔기 때문에 진흙길이 미끄러워서 나는 자네에게 가지 않고, 자네도 나에게 오지 않아, 나의 비린鄙吝한 마음이 싹트는 것을 없애기 어렵게 하는 구려.”
사람과 사람이, 이렇게 마음을 다 열고 가까이 갈 수 있다는 것,
그것도 친구도 아니고, 연인도 아닌 조카와 삼촌 간의 사이가,
이런 인연들을 보면 시공을 초월하여 가슴이 미어지듯 부럽다.
아! 이런 만남이 이 시대에는 가능하지 않단 말인가?
2017년 2월 3일 금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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