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법인 우리땅 걷기 /신정일 대표님 글 모음13

섬에서 섬으로 갔다가, 다시 집으로 돌아와서,

산중산담 2017. 4. 10. 14:41

 

 

섬에서 섬으로 갔다가, 다시 집으로 돌아와서,

 

 

섬으로 가는 길은 항상 설레면서도 애잔하다.

바다에서 먼 곳, 아주 먼 산촌에서 태어나

그 망망한 바다를 처음 본 것이 열다섯 살, 여수에서였다.

그 어린 나이에 세상에 환멸을 느껴 출가했다가

여차여차한 이유로 절에서 나온 그 때가 열다섯 살,

그러므로 바다에 대한 아련하고도 깊은 그리움이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바다의 파도나 부서지고 또 부서지며 파생하는 물거품은

나에게 항상 슬픔이면서도 애잔함이다.

어둔 밤길을 달리고 달려서 백야도에서 첫 밤을 지내고

하화도下花島 거쳐 사도沙島로 가는 길에 흐드러지게 핀 꽃은 없었다.

봄이 온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겨울 추위에 살아남은 가냘픈 꽃이 있는 것도 아닌 섬에서

몇 그루의 동백꽃과 갓 피어난 매화꽃, 그리고 땅바닥을 어지럽히고 있는

개불알꽃에 잠시 정신이 나가기는 나갔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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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화도, 아래 꽃 섬에 정말 꽃이 없었던가? 아니다.

바다 건너 그림같이 펼쳐진 상화도와 그 가운데 마치 이어도처럼 모습을 드러낸

자그마한 돌섬이 바다 위에서 존재를 드러내면서

순간순간 내 마음과 내 눈을 스치고 지나가는 모든 풍경들이 다 꽃이고

두런두런 소리를 내며 지나가는 풍경이자 슬픔이었다.

그리고 나는 바다를 떠다니는 방랑자,

백야도에서 개도를 지나고 화화도에서 사도에 이르는 길에

잔잔한 물결이다가 순간순간 부서지는 포말, 그리고 내려앉는 햇살,

뱃전에서 망망하게 바라보던 수평선 너머에서 목쉰 노래가 터져 나왔다.

오 육체는 슬퍼라, 그리고 나는 모든 책을 다 읽었노라.

달아나리! 저곳으로 달아나리!

미지의 거품과 하늘 가운데서

새들 도취하여 있음을 내 느끼겠구나.

어느 것도, 눈에 비치는 정원도,

바다에 젖어드는 이 마음 붙잡을 수 없으리.“

, 밤이여!

스테판 말라르메의 <바다의 미풍>이었다.

나는 어떤가? 모든 책은 아닐지라도

내가 읽은 한 수만 권의 책들, 떠돌며 본 수없이 많은 이 세상의 풍경들,

그 정도 읽고 보았으면 어떤 풍랑이 와도, 어떤 해일이 와도

아무렇지 않게 잠잠하고 초연해야 하는데,

나는 왜 작은 일에도 당황하고, 어리둥절하고, 분개하고 슬퍼하는가?

내 육체는 더욱 연약해지고 내 정신은 더욱 소심해져버린 것은 아닐까?

그렇다. 다시 번역한다면 육체가 슬픈 것이 아니라.

살아갈수록 인생이 슬픈 것이리라.

떠나도, 떠나도 해결하지 못하는 인생의 여러 일들,

살아도, 살아도 모르는 세상의 이치,

이해하려해도 이해할 수 없는 사람들의 마음,

그렇다.

내 귀는 소라껍질, 바다의 소리를 그리워하네.‘

라고 노래한 장 콕토의 시 한 소절과 같이

그렇게 읽고, 그렇게 떠난 인생에서의 일들은

채워도, 채워도 넘치지 않는 바다와 같이

그 순간에서 한 발짝도 나가지 못하고 머물고 있으며

아직도 못다 읽은 책들과 세상을 그리워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삶이 지금, 이 순간뿐이듯,

흔들리고 흔들릴 뿐이라는 사실,

사도의 얼굴바위와 같이 먼 바다를 지긋이 바라보고 또 바라보며

살아내야 할 시간들 속에 나!

 

 

201726일 월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