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법인 우리땅 걷기 /신정일 대표님 글 모음13

자신의 가난과 불행을 당당하게 말했던 사람

산중산담 2017. 4. 10. 14:42

 

 

자신의 가난과 불행을 당당하게 말했던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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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발달하면 발달할수록 빈부의 격차가 줄어들 것이라

여겼고, 그렇게 예측했던 사람들이 있었다.

누구나 세끼 밥은 먹고 살 것이다.’ 그 말은 맞다. 하지만

지금도 세계 곳곳과 우리나라의 어느 곳에선 굶주리는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날이 갈수록 빈부격차가 심해질 대로 심해지면서

나라의 동맥 같던 중산층이 자꾸자꾸 사라지고

상류층과 하류층 두 부류로 나누어지는 것이 오늘 이 시대이다.

가난, 못 먹고 못 입던 그때보다야 더 낫다고 여길 수도 있지만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을 살았고, 한 때나마 풍요로운 세상을 맛본 사람들은

가난이란 것이 얼마나 인간을 왜소하게 초라하게 만드는 것을 잘 알기 때문에

다시 가난한 삶을 살아내기가 무척 힘들다.

인류의 삶이 시작된 이래 지금처럼 잘 산 시대는 없었다.

그런데, 인간의 삶이 너무도 처절했던 시대에

그 중에서도 말로 표현하기조차 어려울 만큼 곤궁하고,

비참하게 살다간 사람이

스토아학파의 철학자인 에픽테토스였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인간의 가장 하류층인 노예의 삶을 살았다.

그의 생애에 대한 글은 그렇게 많이 남아 있지 않다.

그는 지금의 터키 서남쪽에 위치한 피뤼기아(Phrugia) 지방의

히에라폴리스(Hierapolis)에서 AD50-60년경에 태어나

130년경(또는 135년경)에 죽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비잔틴 시대인 10세기 끝 무렵에 편찬된

고대의 역사 백과사전 격인 수다(Souda)(또는 수이다스)에는

그에 대한 글이 아주 간략히 실려 있다.

피뤼기아의 히에라폴리스에서 태어났고,

네로 황제의 경호원 중의 한 사람인

에파프로디투스(Epaphroditus)의 노예였으며,

류머티즘으로 인하여 다리를 절었고,

에페이로스의 니코폴리스에 정착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치세에

이르기까지 살았다. 많은 것을 썼다.’

간결한 에픽테토스의 생애에 대한 기록이다.

그러나 그가 남긴 글은 의외로 많고, 2천여 년을 두고 수많은 사람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데, 그의 글을 보면

그의 인생관이 적나라하게 담겨 있다.

아무 것도 가진 게 없고, 벌거벗고, 집도, 몸을 녹일 난로도 없고, 노예도 없고, 도시에 살지도 않는 사람이 평온한 삶을 사는 것이 어떻게 가능할까?

하지만 신은 그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한 사람을 우리에게 보냈다. 나를 봐라, 나는 집도 없고, 도시도 없고, 재산도 없고, 노예도 없다. 나는 땅바닥에서 자고, 아내도 자식도 없다.

내게는 하늘과 땅, 낡은 외투하나 밖에 없다. 하지만 나에게 부족한 게 무엇인가? 나는 고통도 두려움도 느끼지 않는다.”

현대를 사는 우리들의 눈으로 보면 그처럼 비참한 삶을 살면서도 자신의 삶을 당당하게 살았던 사람들이 많았던 시대가 이 세상에 있기는 있었다. 그런 반면 오늘의 이 시대에는 어떻게 하면 더 많은 돈을 모으고, 어떻게 하면 권부를 거머쥐고 거들먹거리면서 나와 내 가족만 살 것인가에만 골몰하는 시대인지 모르겠다.

자기의 정신이 가난한 줄은 모르면서 외형에만 치중하는 시대, 어떻게 사는 것이 바른 삶인가?

에픽테토스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가 외부환경을 선택할 수는 없지만,

그 환경에 대응하는 법은 선택할 수 있다.” 에픽테토스

몸의 가난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정신이 가난한 것이 진정한 가난이라 여기며 살아야 하는데, 세상의 대세는 이미 그런 것과는 너무 멀리 나갔다.

애덤 스미스는 <도덕감정론>에서 다음과 같은 글을 남겼다.

대다수 사람들은 남들 눈에 거지나 부랑자로 비치는 것을

죽음보다 더 처참한 운명으로 여긴다.”

그리고 다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막상 성공하고 부자가 되면 그전보다

더 행복하다고 느끼지 못하는 경우가 만다.,”

그 말은 사실이지만 가난하게 살기를 원하는 사람은 없다.

이래, 저래 잠 못 이루는 밤이 늘어나는 것은 그 무슨 연유인가?

 

 

201727일 화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