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에서 걸어가야 할 그 길,
열다섯 살 어린나이에 뭘 알게 있었다고
인생에 환멸을 느꼈고, 그래서 절에 들어갔다가(출가)
제대로 절에서 자리 잡지도 못하고 눈물을 머금고 하산下山했었다.
그 뒤 나라 곳곳을 이리저리 방랑하다가
오랜 나날을 걷고 또 걸어서 집으로 돌아왔었다.
그리고 임실에서 진안으로 오고 간 수없이 멀고 먼 그 길,
그 때 걸었던 그 길들이 가슴속에 화인처럼 찍혀져
내가 그토록 멀고도 먼 길을 질리지도 않고
걷고 또 걸었는지도 모르겠다.
그 중 청소년 시절, 암울한 절망 속에 갇혀서 지내던 그 시절,
달리 할 일이 없기 때문에 아버지 따라서 수없이 오르내린 고향의 산들,
어떤 날은 아버지 내게 한 마디 말도 하지 않으셨고,
나 역시 한 마디 말도 묻지 않고 산을 오르고 내렸다.
이러 저리 두리번두리번 거리면서 약초를 캐거나 더덕이나 잔대,
그리고 당귀와 천마, 산 작약을 캐며 온 종일 쏘다닌 산들,
그 산 길에서 나는 자연의 소리를 듣고 또 들었었다.
그 때 말없음 속에 아버지는 나에게 어떤 말을 들려주고 싶었을까?
“아이야. 마음에 깊이 새겨 절대로 잊지 말아야 한다.
지금 네가 걷고 있는 삶보다 더 높은 단계의
삶. 무한히 더 높은 단계의 삶이 있다.
그 길은 멀고 험하지만 네 인생을 모두 바쳐서라도
꼭 도달해야할 소중한 길임을 결코 잊지 말아라.“
1851. 9월 12일 소로는 이런 일기를 썼다.
아버지! 내게 차마 말 못하면서, 당신의 고난에 찬 생애와는 다른
이런 삶을 살라고 무언의 신호를 보낸 것은 아니었을까?
그랬다.
새 소리, 물소리 밖에 들리지 않는 적막한 산길을 한 발 한 발 위태롭게 가면서
‘나는 이 산속에서 언제쯤 벗어날까?’
‘내가 내 속에서 어떻게 하면 벗어날 수 있을까.’를 꿈꾸었지만
현실은 그저 암담하기만 해서 마음속으로 흘린 눈물이
토해낸 한숨이 구름이 되고 바람이 되고 시냇물이 되어 흩어져갔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저 얻어지는 것은 없었다. 그 때 그 나날들을 견디면서
나는 가없는 꿈을 꾸고 또 꾸었던 것이다.
그렇게 비틀거리며 넘어지며 걸었던
그 시간들이 소금이 되고 밀알이 되었음을 안다.
그 때 그 길을 걸으며 나는 허황한 꿈을 꾸지 않았고,
내가 감당할 수 있는 것만을 추구했다.
글을 쓰겠다는 것, 이 세상을 내가 할 수 있는 영역 안에서
조금이라도 바꾸겠다는 것, 그래서 시작했던 것이 문화운동이었다.
그것이 오히려 더 크나큰 욕심이었을지는 몰라도
그게 더도 덜도 아닌 내 소망이었기 때문에 지치지도 않고, 물리지도 않고
몇 십 년을 문화운동에 전념할 수 있었고,
그 끝자락에서 글이 쓰여 지기 시작했다.
문화운동을 하면서 나는 오로지 길과 책을 통해서 세상을
배우고자 했고, 그 길에서 내 인생을 다 살았다.
진계유가 <취고당검소>에서 말한 것과 같은
그 의문에 대한 해답을 얻고자 했기 때문이다.
“세상 사람들은 공명만을 꿈꾸고 생산에만 힘쓰면서도
스스로 바른 길을 걷고 있다고 믿는다.
하늘과 땅 사이의 저 좋은 바람과 달, 산과 물,
그 많은 책들에 대해서는 조금도 관심을 두지 않으니,
어찌 일생을 헛되이 낭비함이 아니랴.”
재물도 좋고, 권력도 명예도 필요하다. 하지만 인생에 그것만이 필요할까?
나는 잘 먹고 잘 사는 것보다 잘 놀고 잘 사는 삶을 더 소중하다고 생각한다.
자연 속에서 자연을 관찰하며 자연스레 자연이 되어 노니는 삶,
그런 삶을 살고자 했고, 살았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갈 예정이다.
자연 속에서 자연이 되는 그 경이를 느끼며 살고자 하며
오늘도 내일도 이 땅을 걷고 또 걷다가 돌아가리라,
마음먹으며, 오늘은 그 아름다운 섬진강을 찾아가
강바람 맞으며 휘적휘적 걸어야겠다.
2017년 3월 4일 토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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