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법인 우리땅 걷기 /신정일 대표님 글 모음13

옷 집게를 배낭에 덜렁거리면서 도심거리를 활보했다

산중산담 2017. 4. 10. 15:20

 

옷 집게를 배낭에 덜렁거리면서 도심거리를 활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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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에 시내에 볼 일이 있어 나갔다가

헌 책 서점에 들었다.

한 때는 예닐곱 개의 헌 책 서점이 줄을 지어 있었다.

하지만 세월의 흐름 속에 다 사라져 버리고

지금은 한가서점일신서점두 개만 남아 있을 뿐이다.

굳이 책을 살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고

문득 추억을 찾아 떠난 나그네처럼 잠시 두리번거리다가

돌아오는 곳이 바로 헌책 서점이다.

언제나 그렇듯이 작은 배낭하나 메고 서점을 들렀다가

문구점에 들렀고,

좀 더 걷자는 생각에 충경로를 지나고 객사거리를 거쳐,

영화의 거리를 스치듯 지나서 중앙시장을 관통해서

집으로 돌아와서 배낭을 내려놓았다.

그런데, 나의 배낭 아래에 붉은 색의 옷 집게가 매달려 있는 것이 아닌가?

이럴 수가? 생각해보니 배낭을 세탁해서

옷을 말리는 진열대에 걸을 때 그 집게에다 걸고

무심코 외출할 때 그대로 배낭을 메고 나갔다가

돌아 온 것이다.

배낭에 다는 장식물도 아니고, 리본도 아닌데,

그 빨간 옷 집게를 덜렁거리며 걷고 있는 나를

사람들은 어떻게 보았을까?

옛날의 그 남루한 개똥철학자도 아니고,

그렇다고 머리가 이상한 사람도 아니면서

그런 이상한 장식물을 배낭에 달고

시내를 활보하고 돌아다녔으니,

앞으로 나는 또 어떤 우세를 떨면서 그런 줄도 모르고

이 땅을 떠돌 것인가?

생각하니 한심하기도 하고, 저절로 쓴 웃음이 나기도 했다.

그 긴 시간 동안 시내버스에서, 혹은 서점에서, 길에서

나의 그 모습을 본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했었을까?

어쩌면 아무도 나의 그런 모습을 눈 여겨 본 사람이 없었을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나 아닌 타인에 대해 관심이 없는 시대가 이 시대이기 때문이다.

가끔씩 생각한다.

아는 온전한 사람인가? 아니다.

나 역시 어딘가 비어 있거나

어딘가 이상한 데가 많은 사람이다. 그래서 헤르만 헤세의

다음의 말에 공감할 때가 많이 있다.

정신병원 바깥의 세상도

그 안의 세상에 못지않게 우스꽝스럽지요.”

헤세의 <편지> 에 실린 글이다.

알면서도 못하지만 모르는 일에는

주저도, 가책도 없이 행해서 세상에 해악을 끼치는 일들이

이 세상에는 얼마나 많은가?

이렇게 살건 저렇게 살건, 삶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그게 바로 삶이다.

내가 누구인지 제대로 아는 사람이 있기나 한가?

내가 누군지도 모르고 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도

모르는 채로

다만 순간에서 순간으로 존재하면서 사는 것,

그것이 어쩌면 가장 행복한 삶일지도 모르겠다.

비어 있는, 그것도 텅 빈 채로,

내가 무엇을 입었고, 내 배낭에 무엇이 달렸던 개의치 않고

그렇게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만

그러나 그렇게 산다면 나를 기다리는 것은

정신병원이거나 노숙자 쉼터가 될지도 모르겠다.

그렇다고 할지라도,

나는 가끔씩 의도하지 않은, 생각하지도 않은

그러한 상황에 처하는 일들이

저절로 이루어지는 그러한 일탈을 꿈꾼다.

나는 과연 어떤 사람인가?

 

 

201739일 목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