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백두대간길에 무엇이 있었지? - 깃대봉(영취산에서 육십령 직전)
깃대봉의 상징인 깃대봉이 있는 깃대봉(함양.장수)
옛날 임금님이 신하나 백성들 중에 나라를 위해 공을 세운 사람들에게 땅을 하사했는데,
이를 사패지(賜牌地)라 했고,
이 땅에는 누구의 사패지라고 하는 깃대를 꽂아 놓은 데서 깃대봉이라는 이름이 유래되었다고 한다.
우리가 잘아는 서울의 도봉산에 있는 사패산도 선조(宣祖)의 여섯째 딸인 정휘옹주(貞徽翁主)가
유정량(柳廷亮)에게 시집올 때 선조가 하사한 산이라 해서 사패산이라 불려지고 있다
여기 깃대봉은 특히 가을의 억새와 구절초 향으로 유명하다.
몇년 전에 들렸을 때까지 유일하게 깃대봉이라는 표시가 있었는데 이것마저 지워져 버렸다
깃대봉은 덕유산 남쪽을 조망할 수 있는 최고의 명소로 알려져 있다. 이곳은 삼국시대 신라와 백제의 국경지역으로,
두 나라 영토에 주둔하던 병사들이 번갈아 기를 꽂았던 전략적 요충지이기도 하다.
깃대봉 동쪽 물은 추상천을 지나 낙동강으로, 서쪽 물은 장계천을 따라 금강으로 향한다.
그런데 2006년 깃대봉이란 지명은 구시봉으로 바뀌었다.
어떤 풍수가가 이곳에 올라 산세를 짚어보니 구시형이라서 그리 변경했다는 게 비석에 새겨진 설명이다.
구시(소나돼지등의 먹이를 담는 그릇)가 말구유를 뜻한다면,
아마도 이 지명은 깃대봉과 그 아래쪽의 제2 깃대봉을 잇는 안부를 염두에 두고 붙인 이름이 아닐까 싶다
자료 : 한겨레21 http://h21.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24998.html
산림청이 이렇게 유래가 많은 역사적인 깃대봉을 굳이 구시봉으로 바꾼 연유가 적혀 있다
장수군의 깃대봉은 일제가 깃대를 꽂아 우리 국토를 측량한 데서 ‘깃대봉’으로 바뀌었다는 예기도 전하고
깃대봉에는 봉수대가 있다고 했는데 아마도 이 깃대봉 봉수대가 장수 가야의 중심 봉수일 것이다.
군산대학교 사학과 곽장근 교수의 논문에 따르면, 깃대봉 봉수대를 중심으로 전북, 충남 일원까지 봉수가 방사선으로 모양으로 뻗어 나갔다고 한다.
대가야 자료 : http://blog.daum.net/cielfoi/6605136 하늘도깨비님- 대가야 동서루트를 따라서...
깃대봉에서 조금 내려오면 샘터가 있다
어찌 됐던지 이렇게 많은 유래를 가지고 있는 깃대봉이라는 이름은
원래 주인인 깃대봉은 어디에서도 흔적을 찾아 볼 수 없게 되었다
구시봉 정상석 뒷면에 깃대봉의 흔적이 쓰여져 있지만내가 경험하기로는 뒷면의 설명까지 읽는 산우님들이 몇이나 될까?
산림청에서 이해 할 수 없는 한 풍수가의 말을 근거로
아까운 국민의 세금을 들여 이렇게 이정석을 세웠고
우리는 울며 겨자 먹듯이 이렇게 인증사진으로 남길 수 밖에 없는 현실...
이런 역사적 유래가 강한 "깃대봉"이란 이름에 집착하고픈 맘이
잘못된 판단일까?
그나마 유일하게 전일상호신용금고에서 세운 이정표에 남겨저 있던
깃대봉 표시마저 지워져 버렸으니...
원래 주인인 깃대봉임을 알릴 수 있는 이정표 하나 쯤 요구된다.
이렇게 대간을 걷고 있는 우리가 관심을 갖지 않으면
훗날 아마 지도에도 구시봉이라는 껍데기만 남게 될 것이다.
역사속의 깃대봉은 정말 역사속으로 사라질지 모를 일이다...
물론 구시봉이나 깃대봉으로 불리면서 혼동을 주고 있는 면도 있지만
살아있는 역사를 덮기에는 뭔가 허전하다는 생각...
혼용해서 써도 유래를 확실히 하면 가능하지 않을까?
지도에 나와 있는 깃대봉이 사라지기 전에...
초보산꾼
'산행기 > 山中山談' 카테고리의 다른 글
추억의 백두대간길에 무엇이 있었지? - 동엽령 옛길 - 고개의 의미를 제대로 깨닫다 (0) | 2017.07.18 |
---|---|
추억의 백두대간길에 무엇이 있었지? - 백두대간의 출발점 지리산 천왕봉 (0) | 2017.04.25 |
대간 대미산 구간을 마치며 - 문경의 고개들 (0) | 2015.11.29 |
함께 만들었기에 더욱 견고한 설국을 완성했음을... (0) | 2015.11.29 |
눈이 내리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싾여있기에 더욱 빛나는 것이다 (0) | 2015.11.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