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기/山中山談

추억의 백두대간길에 무엇이 있었지? - 동엽령 옛길 - 고개의 의미를 제대로 깨닫다

산중산담 2017. 7. 18. 09:46

 

추억의 백두대간길에 무엇이 있었지? - 동엽령 옛길을 걷다

 

 

 

전북 무주와 장수 그리고 경남 거창과 함양 등 4개 시ㆍ군의 경계에 있는 넉넉한 덕유산은

그만큼 산자락이 넓고 평평해 구한말 의병들에게 은신처를 제공할 수 있었던 것이다

민간신분이였던 의병들이 활동하며 수없이 드나들며 희망과 좌절을 맛봤을 길 

이 곳 안성탐방지원센터에서 동엽령에 이르는 왕복 9㎞의 길을 덕유산 의병길이라 부르는 이유이다

대놓고 활동할 수는 없었을 것이고 야음을 틈타 수없이 이 길을 따라 동엽령을 넘고 넘었을 터...

마침 산행시간도 야음이 짙게 드리워진 새벽길이니 제대로 채험 할 수 있을 것 같다

특히 이 곳 안성지방이 우시장으로 유명했다고 하니 소몰이 심정도 헤아려 보며 함께 들어가 보시죠...

 

 

등엽령 옛길 (청색)

 

 

 

** 두번에 걸쳐 진행했던 자료를 모은 것입니다.  **

 

 

안성탐방지원센터에 도학

 

출발 - 문을 들어서면 바로 좌측으로 계곡을 건너는 다리가 보이는데 거기에 칠연의총이 있다.  넓은 공터에...

그런데 모두 관심이 없는 듯 다 사라져 버리고... 넓은 공터에 큰 무덤이 있으니... 혼자는 넘 무서워서... 다음으로 미루고

칠연의총(七淵義塚)

칠연계곡은 구한말 일본에 항거해 분연히 일어난 의병들의 은신처이자 안식처 였다

칠연폭포를 지나 동엽령까지 이어지는 왕복 9㎞ 길에 붙여진 덕유산 의병길

나라가 위급할 때 즉시 의로써 일어나 조정의 명령을 기다리지 않고 종군해 싸우는 사람들인 의병은 민군이었고

칠연의총에 잠든 의병들도 역시 나라를 위해 스스로 일어선 백성들이었던 것이다

 

칠연폭포 갈림길

칠연의총에서 의병장 신명선을 빼놓고는 얘길 할 수가 없다

1907년 정미7조약이 체결된 후 군대가 해산되자 덕유산을 중심으로 동지들을 규합해 의병장이 됐다.

1908년 4월 장수의 주재소를 습격하고 돌아오다가 칠연계곡에서 전열을 가다듬던 중 일본군 토벌대의 기습을 받아 신명선과 휘하 150여명이 전사하고 말았다.

그 후 살아남은 의병 중 한 명이 마을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유해를 수습, 송정골에 안치한 것이 지금의 칠연의총이다.

 

잠시 칠연폭포에 들러 봅니다. 산우님과 함께 불빛을 비추어 가며 잡은 작품 - 1폭포

 

세상은 모두 잠들어 고요하기만 한데

무슨 사연을 안고 흐르기에 일곱 번의 질곡을 담은 것도 모자라

어둠에 물든 모든 생명의 흐름이 잠시 멈춘 순간에도

멈출 줄 모르는 흐름으로 세상과 교감하고 픈 마음을 무엇일까

 

 

사람은 잠을 자야 내일을 기약할 수 있기에 잠을 청하지만

물의 숙명은 흐름을 멈출 수 없고 계속 윤회를 거듭해야

또 다른 흐름을 만들어 낼 수가 있기에 오늘도 이렇게 흐르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내가 살아 있음을 세상에 알리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것을 알기에

 

 

칠연중 2연 폭포

 

흐름에 지친 물의 잠깐의 휴식을 위해 웅덩이를 만들어 주고

또 다른 물의 흐름을 위해 또 다시 차면 넘치게 하고

자연은 서로 돕고 서로 의지하며 살아 간다는 것을

어둠속 칠연폭포에서 잠깐 느낀 단상이다

칠연폭포가 주는 의미를 담아 서로 돕는 대간산행이 되었으면...

 

 

일본군의 눈을 피해 넘나 들었을 동엽령을 향해 쫏기는 심정으로 오늘은 그 주인공이 되어 오름을 재촉하고  - 동엽령 1.3km지점

 

이 길은 안성 우시장이 유명했으므로 소를 몰고 동엽령을 넘어다녔을 민초들의 삶의 무게를 느끼면서 걷는 기분?

 

동엽령의 이정표

 

경상도와 전라도 지방의 토산품을 교역하기 위해 넘나들던 고개였던 동엽령

동엽령(冬葉嶺) 1,320m. 

덕유산의 옛 고개 중 동엽령(冬葉嶺)은 깊은 산중에 있는 덕에 그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그런데 '겨울잎'으로 해석되는 그 이름의 유래에 대해서는 이 일대에서 납득할 만한 설명을 듣기가 어렵다. 

무주와 동엽령을 마주하고 있는 거창군에서 동엽령을 '동업이재'로도 부르는 것을 보면 이런저런 짐작을 해볼 수는 있다. 

동업이재를 넘나들던 나그네를 위해 술을 빚어 팔았다고 하는 주막터가 있을 정도였다는 6차 대간길에서 내려갔던 병곡리 계곡

경상도의 토산품이 그 계곡을 따라 이 동엽령으로 올라왔다면

전라도 안성면은 우시장이 유명했으므로 소를 몰고 동엽령을 넘어다녔을 것이다 

 

동엽령 나무데크 아래로 오늘의 하산지점인 병곡리 방향

 

계속되는 대나무 숲길

 

다리를 건너 계곡소리가 여름임을 알려준다

 

오늘의 날머리이며 뒷풀이 장소인 병곡횟집이 있는 빙기실 계곡

대하골계곡과 상여덤계곡으로부터 내려오는 계곡수가 합쳐져 빙기실(병곡리)계곡을 이루는데,

대하골계곡은 동업이재라고도 불리는 동엽령(1,320m)으로 올라가는 쪽, 상여덤계곡은 상여덤봉(1,445m)으로 올라가는 쪽의 계곡을 말한다.
동엽령은 옛날 경상도와 전라도 지방의 토산품을 교역하기 위해 보부상들이 넘나들던 고개로,

대하골계곡 쪽에는 보부상들에게 술을 빚어 팔던 주막터가 남아 있다고 하는데 확인 할 수는 없다

 

 

병곡횟집에서 하루의 피로를 풀어 본다

 

 

 

우리가 대간길을 걸으면서 언제나 아쉬었던 것의 하나가 고개에 얽힌 애환이다

단지 지나가는 고개에 의미를 부여하고 싶어도 짧은 만남에 언제나 아쉬움

도대체 애환에 얽힌 사연들이 녹녹히 녹아 있을 그들의 걸음 걸음을 음미하기에는

겨우 사진 몇 장 남기는 것이 전부이고 거기에 의미까지 부여하고 있었으니...

 

그런 의미에서 대간 6차와 7차에 걸쳐 걸었던 동엽령冬葉嶺

경상도와 전라도 지방의 특산품을 부지런히 넘나들던

장사꾼들의 거친 숨소리를 함께 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가 된 것 같다

병곡리에 넘나들던 나그네를 위해 술을 빚어 팔던 주막터가 목마름과 애환을 얘기하고

안성시장에서 소를 몰고 동엽령을 넘고

칠연의총七淵義塚의 아픔을 안고 있는 나라를 위해 목숨까지 아끼지 않았던

일본군의 눈을 피해 살기위해 넘나들지 않으면 안되었던 민병의 거친 숨소리까지 함께하니

그 길은 그대로 인데 넘나드는 사람만이 바뀌었을 뿐 이지만

역사를 그대로 안고 있고 또 상상의 나래를 펴며 걸었던 동엽령

아마 영원히 잊지 못할 대간길에서의 한편의 역사 이야기가 될 것 같다

고개에 서서 눈길 한 번 주고 고개를 논할 수 밖에 없는 맥잇기 산행의 한계 

대간길을 걸으면서도 흔치 않은 경험을 했던 구간으로 기억된다

 

 

                                 초보산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