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법인 우리땅 걷기 /신정일 대표님 글 모음13

모든 만물을 다 내 몸과 같다고 여긴다면 얼마나 좋을까?

산중산담 2017. 7. 24. 14:03

 

모든 만물을 다 내 몸과 같다고 여긴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나의 일이 매듭지어졌다.

아직 수습해야 할 것이 많이 남았지만

바람이 있다면 다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으면 좋겠다.

그러나 세상의 일은 거듭 반복되는 것이라서

다시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것은 예로부터 한 사람이 한 사람을 편애하거나

집단을 좋아하는 일, 그러한 일이 예로부터 끊이지 않고 일어난 것을

역사가 증명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멀지 않은 조선의 역사에서 그 예를 살펴보자

고종 임금은 노론으로 자처하였으며, 신하들을 대할 때 세 가지 당색黨色으로 구별하여, 대우하고 배척함에 있어서 차등을 두었다.

예컨대 참하관參下官에서 출륙(出六. 벼슬아치가 정 7품에서 6급으로 진급하는 것을 말함)을 하기까지 극히 청화淸華한 자리로 노론은 대교待敎, 소론은 한림翰林, 남인과 북인은 주서(注書. 승정원 정 7)를 주어 이것으로 높낮이를 두었으며, 다른 관직도 마찬가지였다. 매양 대과 합격자의 이름을 임금이 호명하여 들어올 수 있게 보고를 받을 경우, ‘노론이면 친구라 하고, ‘소론이면저쪽이라 하고 남인이나 북인이면 그놈이라고 하였다.“

매천 황현의 <매천야록> 1고종의 당색구별에 실린 글이다.

한 나라의 임금이거나 대통령이라면 모든 사람을 끌어안아야 하는데, 임금이

대통령이 자기와 생각이 같으면 동지나 친구이고, 자기와 생각이 다른 당파를 두고는 그놈이거나 종북이라고 평하는 사회, 그 사회가

봉건군주시대에는 가능했다. 하지만 오늘의 시대에는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몰랐기 때문에 작금의 사태가 일어난 것인데 우리나라에서만 그런 일이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인간은 세상을 둘로 나누길 좋아한다. 우리, 그들, 좋은 놈, 나쁜 놈, 남자, 여저, 서양식 사고방식은 이분법을 강조한다. 인간 삶에 있어서도 많은 문제들을 쓸데없이 이것, 아니면 저것으로 구분한다.”

캐럴 태브리스라는 사람의 글이다.

또 하나 재미있는 이야기가 조선 왕조의 마지막 르네상스를 일구었던 정조에 대한

이야기다.

정조正租는 송시열宋時烈을 지극히 존숭하여 그 문집을 가리켜 <송자대전宋子大全>이라 하였고, <양현전심록兩賢傳心錄>을 몸소 정하였다. 논자들은 혹 지나치다고 여겼지만 비록 더욱 추존하고자 해도 다시 더 붙일 말이 없었다.

이에 송근수는 그 전집을 발췌해 한 마디의 말과 한 가지의 행위를 가려 뽑아 책을 엮고는 <송자언행록宋子言行錄>이라 했다.

또 이승우李勝宇와 의론을 주고받아 <송서백선宋書百選>을 편집하여 정조가 친히 찬정한 <주서백선朱書百選>을 비견하고자 하였다.

우암 송시열을 회옹悔翁고 나란히 할 수 있는지의 여부는 알지 못하겠지만, 다른 사람이 한다면 당파에 따라 편들어 수호하는 습속에 불과하다 할 것이다.“

황현의 <매천야록>중 송근수宋近洙에 대해 실린 글이다.

정조 임금 자신도 노론’ ‘소론’ ‘남인등의 당색 때문에 큰 피해를 입었던 사람이다. 그런데 그 당색의 중심에서 당색을 심화시켰던 송시열을 존경하였고, 송시열을 공자맹자’ ‘순자나 마찬가지라고 여겨서 그의 문집을 <송자대전>이라고 치켜세웠으니, 그 당시 노론들의 콧대나 위세가 얼마나 높았겠는가?

이 나라 이 땅의 파벌의 문제는 정암 조광조가 <군자소인지변君子小人支辨>에서 말한 나하고 생각이 같으면 군자고, 나하고 생각이 다르면 소인이다.“ 라는 말에서 더도 덜도 아니다.

다가오는 시대엔 내편도 없고, 네 편도 없는 모두가 내 몸 구석구석을 사랑하듯 신뢰하고 보듬어 주는 그런 시대가 온다면 얼마나 좋을까?

 

2017310일 목요일. 오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