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법인 우리땅 걷기 /신정일 대표님 글 모음14

영월에서 보낸 하루를 회상하며

산중산담 2017. 7. 24. 14:39

 

영월에서 보낸 하루를 회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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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도 불지 않으면서 날은 맑았다.

영월의 청령포,

배 멀미 약이나 키미테를 붙이지 않아도 건널 수 있는 서강,

그 강을 건넌 소나무 숲 가운데에서

두 어 달 동안 지냈던 단종의 자취를 찾는 사람들,

오고 가는 사람들의 마음과 마음,

그게 역사고 그게 바로 인간의 삶이다.

봄이라고 제대로 느끼기도 전에 금세 가는 계절,

가는 세월의 귀퉁이에서 나는 청령포를 바람처럼 다녀간

매월당 김시습의 낭랑한 목소리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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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누구냐, 이도 아니고 저도 아니다.

미친 듯이 소리쳐 옛 사람에 물어보자.

옛사람도 이랬더냐 이게 아니더냐.

산아! 네 말 물어보자 나는 대체 누구란 말이냐.

그림자는 돌아다봤자 외로울 따름이고

갈림길에서 눈물 흘렸던 것은 길이 막혔던 탓

삶이란 그 날 그날 주어지는 것이었으며

살아생전의 희비애락은 물 위의 물결 같은 것.

그리하여 말하지 않았던가.

이룩한 미완성 하나가 여기 있노라고

혼이여 돌아가자 어디인들 있을 데 없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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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매월당이라고 해도

그 마음이었을 것이다.

강물은 흐르지, 찾아간 사람은 이미 옛 사람이지,

흐르는 구름이, 불고 지나가는 바람이

온갖 회한을 다 불러일으키지 않았을까?

그래서 매월당은 남은 생애를 더 책에 침잠했을 것이다.

매월당 김시습만 그러했던 것이 아니고

<군주론>의 저자인 마키아벨리 역시 그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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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이 찾아오면 나는 집으로 돌아와 서재로 간다.

서재 문 앞에서 흙과 땀이 묻은 작업복을 벗고,

궁정에 들어갈 때 입는 옷으로 갈아입는다.

이렇게 엄숙한 차림으로 고대인들이 모여 있는 궁정에 들어서면

그들은 나를 반갑게 맞이한다.

그곳에서 나는 온전히 나만의 것이며, 내가 태어난 이유인 음식을 맛본다.

고대의 성현들에게 삶의 동기가 무엇이냐고 물으면, 그들은 친절하게 답해준다.

이렇게 서재에서 네 시간쯤 보내다보면 세상사를 잊고,

짜증나는 일도 모두 잊는다. 가난도 더 이상 무섭지 않고,

죽음에 대한 두려움으로 떨리던 마음도 편해진다.“

마키아벨리가 프란체스코 베토리에게

15131210일에 보낸 편지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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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문득 싫어지고 지겨워 질 때 기댈 데는

오로지 산천과 책뿐일 때가 있다.

누가 뭐래도 아랑곳 하지 않고 다 받아주고

배반을 모르며 지켜주는 책,

그게 바로 산천이고,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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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물리지도 않고 산천에서 노니는 것은

내가 진실로 사랑하는 것들이 자연 속에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어제 보았던 선돌, 한반도 마을

요선정 일대의 무릉도원과 법흥사 일대는

언제나 가도 나를 받아주는 좋은 친구이자 스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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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51일 월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