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글이 사람들의 마음을 이롭게 하는 글인가?
<!--[if !supportEmptyParas]--> <!--[endif]-->
쓰면 쓸수록 어려운 것이 글이다.
그냥 신변잡기身邊雜記를 쓰는 것이 아닌
인생의 희노애락喜怒哀樂과 세상의 크고 작은 이야기를
누군가의 강요가 아니고, 자기 스스로가 원해서 쓴 글이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글을 쓴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 이 세상에서 작가(인문학을 다 포함 하는 것)로 살면서
제 정신을 유지하고, 그 나름대로의 품위를 지니고
삶을 살아간다는 것이 어렵다는 것이다.
<!--[if !supportEmptyParas]--> <!--[endif]-->
“......어떤 사람의 그 내부를 들려다보면
인생이란 전혀 ‘그러하지 않은’ 듯이 보인다.
평범한 어느 날의 평범한 사람의 정신을 검토하여 보라.
인간의 정신은 시시하고, 환상적이고, 시시각각으로 변모하고
또 강철 같이 예리한 것으로 조각된 억만 가지의 인상印象을 받는다.
이 인상들은 사방으로부터 밀어닥치고,
비 오듯 쏟아지는 이 인상의 미립자들이 월요일,
그리고 화요일이라는 형체를 구성할 때
예전과는 다른 강조점을 가지게 된다.
요긴한 시기는 저기가 아니라 여기에 일어난다.
그래서 작가가 노예가 아니라 자유인이라면,
강요된 것을 쓰는 사람이 아니라 자기가 원하는 것을 쓰는 사람이라면,
인습이 아니라 자기 스스로의 느낌에 근거하여 글을 쓸 수 있다면,
종래從來의 유형類型인 플롯, 희극, 비극, 연애사건이나
파국 따위는 있을 수 없는 것이고,
본드가의 양복점에서 달아주는 식式의 단추는 하나도 그 속에 끼어들 수 없다.
인생이란 균형 있게 배열된 마차등馬車燈이 아니다.
인생이란 의식의 첫머리부터 끄트머리까지
우리를 감싸고 있는 반투명체半透明體의 휘황한 달무리 같은 것이다.
그렇다면 작가의 사명은 이 변화무쌍變化無雙하고,
미지未知의, 그리고 명확히 경계 지을 수 없는 이 정신을,
제 아무리 복잡하더라도, 가능한 한 잡스럽고 외적인 요소를
가미시키지 말고 전달傳達해야 옳은 것이 아닐까?“
버지니아 울프의 <등대로>에 일부분이다.
<!--[if !supportEmptyParas]--> <!--[endif]-->
이런 글을 쓰는 사람이 그리 흔치 않다. 도스토예프스키를 비롯하여
고전 작가들이 그렇고, 나머지 베스트셀러를 꿈꾸는 사람들은
이런 글을 쓸 수도 없을뿐더러 그런 글을 쓸 꿈도 꾸지 않는다.
작가도, 작가 나름이다. 지금 살고 있는 이 시대에
반짝거리는 휘황찬란한 불빛처럼 반짝 거리다가 사라져서
훗날 다음 세대에서는 그 작가의 그림자도 나타나지 않는 사람이 있는 반면,
살아생전에는 문명을 떨치지 못하다가 작고한 뒤 그 문명을 떨치는 사람도 있다.
어느 편이 잘 살았는지 누구도 가름을 할 수는 없다.
하지만 겉만 번드레한 작가들, 스스로 작가라고 일컫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은 것이 지금의 시대다.
걸러 낼 수도 없이 온갖 유형의 작가들이 우후죽순과 같이 범람하는 시대에
버지니아 울프가 말한 대로
‘우리를 감싸고 있는 반투명체半透明體의 휘황한 달무리 같은 것’을
보여주면서, 새로운 길을 열어주는 작가가 많이 나타난다면
얼마나 좋을까?
<!--[if !supportEmptyParas]--> <!--[endif]-->
2017년 6월 2일, 금요일
'사단법인 우리땅 걷기 > 신정일 대표님 글 모음14' 카테고리의 다른 글
당신은, 지혜, 명예, 이득 중 어떤 것을 더 사랑하는가? (0) | 2017.07.24 |
---|---|
관매도와 조도에서 돌아와 느끼는 소회 (0) | 2017.07.24 |
하늘도 칭찬을 좋아한다. (0) | 2017.07.24 |
마음 편히 살다가 가는 삶이 복 받은 삶이다. (0) | 2017.07.24 |
나이가 들수록 아름다움은 내면을 파고든다. (0) | 2017.07.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