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과 불행의 간격은 도대체 얼마나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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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과 불행의 간격은 도대체 얼마나 될까?
누군가는 백지 장 하나 차이라고도 하고,
하늘과 땅과 같이 무한하다고 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 차이를 제대로 아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의 마음이 순간순간 변하기 때문이다.
행복을 느끼는 순간이 지금이라면
지금을 지난 순간 과거가 되는 그 우주순환의 이치가
행복과 불행의 간격을 가늠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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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정신의 경계선은 늘 유동하며, 그래서 말하자면
여러 정신들은 서로의 내면 깊숙이 흘러 들어갈 수 있으며,
단일한 정신, 단일한 활력을 창조하거나 드러낼 수 있다.”
예이츠의 말인데,
정신의 경계선이 항상 유동적이라는 말,
그것이 인간 정신을 상승하게도 하고
하강시키기도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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깡디드가 마르땡을 돌아보며 말했다
‘당신은 그 늙은 양반이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하실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는 사물에 다하여 아주 초월한 입장에서 관조觀照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그러나 마르땡이 말했다.
“그렇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그가 지닌 모든 사물관은 오히려 사유思惟하는 것 자체를 지겹게 여기고 있는 것만 같아요. 일찍이 그리스의 철학자 플라톤은 ‘가장 좋은 위胃는 모든 음식물을 폐물로 만들어 버리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고 얘기했습니다.“
“하지만 사물을 비평하고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곳에서 결점을 찾아내는 것은 유쾌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깡디드가 이렇게 묻자 마르땡이 되물었다.
“그렇다면 기쁨이 없는 곳에 기쁨이 있다는 말입니까?”
깡디드가 대답했다.
“그렇지요. 바로 그 점이란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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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쁨이 있는 곳에 기쁨이 있을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마찬가지로 슬픔이 있는 곳에 슬픔이 없을 수도 있다.
이 세상을 사는 것이 항상 심연 깊숙이 드리운 밧줄을 타는 것과 같이
위험하기도 하고, 그래서 삶이 아슬아슬한 것이
인간을 살아가게 만드는 원동력이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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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도 말했지 않은가?
‘인간의 삶은 정신과 육체가 끊임없이 변해가는 과정의 연속이다‘고
어차피 내가 원하지 않아도 변하고 또 변하는 세상 속에서
너무 계산하지 말고, 살아갈 것,
그렇게 살고자 하지만 그것도 역시 쉽지 않다.
삶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그게 항상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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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6월 20일 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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